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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4.12.31 10:23수정 2024.12.31 10:2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2학년 딸아이만 생각하면 묵직한 바위가 내 호흡기 어딘가를 짓누르는 것 같이 답답했다. 아이 하교 시간이 무서워서 그 시간에 맞춰 괜히 장 보러 나가기도 했다. 선배 엄마들 말처럼 그저 버티면 될 일 같지 않았다.
우연하게 아이와 잠자리 수다가 시작됐다. 잠자리 수다 한 번에 싸움의 날이 3일씩 지워졌다. 오후 10시부터 졸린 중년 어미는 자정이 넘어도 초롱초롱한 딸아이와의 수다를 위해 버틴다. '그저' 버티는 게 아니라 아이 사이클에 '맞춘' 버티기가 필요함을 배우는 중이다.
잠자리 수다가 열 번 정도 지났을 즈음, 아이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가 되기 위한 조건이었다. 잘 하는 것이 없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는 가치 없는 게 아닌지, 남들은 치열하게 공부할 시간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그만 생각하고 싶은데 자꾸 생각나서 괴롭다고 했다.
나는 일단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가 성장의 증거라 그랬다. 이 나이에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기에 권장할 일이다. 잘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사람은 흔치 않다. 마흔 넘어서도 그거 찾겠다고 돈 쓰는 사람 많으니 열네 살이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아이 눈이 동그래진다. 그걸 알아야 직업을 찾고 먹고 사는 거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귀엽고 대견해서 또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영문 모를 아이가 켁켁 거리기에 나는 킥킥 웃으며 팔을 풀었다.
그런 걱정 자체가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꽉 안았다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사랑스러운 세모 눈으로 나를 곱게 째려봤다. 왠지 마음이 뻐근해졌다.
지금 당장 뭐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려는 자세가 있으면 그만이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말하고 보니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아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단 도망가느라 바빴던 내가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나도 모르게 나를 이끌기도 하나보다. 이 잠자리 수다가 그랬다. 싸우지 않은 어느 날, 어쩌다 보니 같이 누웠고, 바로 잠들지 못해 이야기가 시작됐고, 밤이 주는 나른함에 덩달아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는 걸 알았다. 우연히 찾은 해결의 실마리였다.
아이와 냉전일 때는 지금까지 아이를 키운 모든 시간을 부정 당하는 거 같았다. 아이는 지극히 정상인데 내 이상향에 미치지 못한다고 아이를 닥달 하는 걸 나만 몰랐다.
내 무게 중심을 상상했다. 무게 중심이 안에 있는 행성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안정적인 공전을 한다. 반면에 중심이 밖에 있으면 궤도를 이탈한다고 한다. 내 이상향은 그 중심이 밖에 있었기에 언제 이탈할지 모를 불안한 상태였다. 불안은 분노가 됐다. 외부의 힘이 나를 괴롭히도록 내가 자리를 내어준 꼴이었다.

▲내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안정적인 궤도를 갖고 싶어진다
픽사베이
잠자리 수다로 내가 만든 불안을 하나씩 허물어뜨리는 중이다. 그 자리에 고요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내 고요함이 아이의 안정감이 됐을까. 그래서 스스로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내게 던지는 게 아닐까. 엄마한테 물어봐 주는 게 고맙다고 하니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좋아하는 일이 없어도, 잘하는 걸 모르겠어도 괜찮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지금은 그저 이것저것 해보면서 오늘 하루를 신나게 보내는 것으로,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나눠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아이는 내게 오은영 박사님 같다고 했다. 저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진단다. 그 말이 고마웠다.
내가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길과도 통한다는 걸 깨닫는 날이었다. 아이의 질문과 내 대답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함께 쌓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우리는 같은 궤도 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중심이 우리 안으로 단단히 세워지는 중이다.
아이는 태어나서 세 살까지 양육의 모든 기쁨을 준다는 말은 틀렸다. 열네 살 아이 안에 피어나는 질문을 공유해 주는 기쁨은 세 살 시절의 무해한 기쁨과는 결이 다른 기쁨이다. 그 기쁨을 오래 누리고 싶어서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와의 잠자리 수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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