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세렝게티 생크츄어리. 본래 ‘생크츄어리’의 의미는 ‘신성 구역’이다. 지금은 의미가 확장되어 ‘보호구역’을 칭할 때 많이 쓰인다. 2020년 3월 촬영.
신상우
국립공원 제도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872년, 옐로스톤(Yellowstone) 공원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공원법'을 제정 공포하여 같은 해 12월 지리산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미국에서 처음 지정할 때, 그들은 '생크츄어리(sanctuary)' 개념을 사용했다(세련되게 발음하면 [k]음을 부드럽게 넘겨 '생츄어리'라고 하지만, 나는 옛날 사람인지라 그냥 '생크츄어리'로 발음 표기하겠다). 본래 라틴어 'sanctuarium'에서 온 말로서,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성(聖)스러움을 의미하는 '세인트(saint)'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성스러운 곳', '금기의 땅(금단의 땅)', '보호 구역'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음을 알게 된다. 의미 확장이라고는 하지만, 따져 보면 일맥상통한다. '신성한 땅'이기에 잡스러운 것, 삿(邪)된 기운이 미치면 안 된다. 그러니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그 공간의 모든 신성한 존재는 보호받게 된다.
결국 공원 지정의 의미는 이것이다.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것, 그러니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 보호받는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최근에는 '동물보호구역'을 말할 때 '생크츄어리'를 많이 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 지난 18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 평화대공원 부지에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임홍철 도 기후환경국 환경정책과장이 방청석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임 과장은 “평화대공원을 만들면 뭐 하냐. 거길 누가 가냐. 사람들이 안 간다”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조수진
'생크츄어리'가 어쩌다가 '놀이공원'으로
"평화대공원을 만들면 뭐 합니까. 거길 누가 갑니까. 사람들이 안 갑니다. 이 일대 전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록에 실린 만한 귀한(?) 발언이다. 지난 12월 18일 용역 보고회 자리에서 제주도 담당 '과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순간 나는 "뭐지?"라는 말을 조용히 뱉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은다고? 생크츄어리는 사람들을 제한하는 곳인데... 그 공간의 신성함을 알고, 그에 걸맞은 마음 자세를 갖춘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데...'
과장님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 머릿속의 '공원'은 '과천 어린이대공원', '서울대공원' 등의 '공원'이었다. 쉽게 말해 '놀이공원'이다. 그런 공원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아야 한다. 신성함도, 금기도, 보호도 필요 없다. 그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지갑만 열게 하면 그만이다. 기본 자격도 안 되는 스포츠타운이 불쑥 끼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놀이공원은 편리해야 한다. 승용차로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한다. 각종 편의 시설을 만들어 놔야 한다. 상가 조성은 필수다.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놔야 한다. 그래야 돈이 된다.
하지만 생크츄어리는 그 반대다.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주차장은 멀찌감치 설치해 놓게 한다. 자동차 진입은 철저히 금지한다. 상가 역시 밖으로 빼놓는다. 인공물을 최소화하여 원형을 최대한 살린다. 그렇게 금단의 땅이 되어, 신성함이 유지되고 존재가 보호받는다.

▲ 아프리카 세렝게티 생크츄어리. 본래 ‘생크츄어리’의 의미는 ‘신성 구역’이다. 지금은 의미가 확장되어 ‘보호구역’을 칭할 때 많이 쓰인다. 2020년 3월 촬영.
신상우
신성할수록 격이 올라간다. 물론 여기서의 신성함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선다. 지고한 가치를 말함이다. 금기 역시 격을 올린다. 잡된 것을 통제해 주기 때문이다. 보호 역시 그 자체로 품격을 높인다.
그 결과 생크츄어리는 고품격의 명소가 된다.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땅이 된다. 오래 머무르며 그 땅의 진수를 느끼고 싶게 만든다. 그러니 고가의 입장료도 기꺼이 감수한다. 사람들은 이제 감동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갑을 연다. 체류형 관광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처럼 생크츄어리도 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돈을 먼저 앞세우진 않는다. 신성하기에, 통제되어 잘 보호된 공간이기에,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 신성함이 우선이다. 그에 감동하고 공감하여 지갑을 여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반면, 사람들의 외면은 싸구려 관광지라 느낄 때 비롯된다. 싸구려에는 신성함이 없다. 당연히 존경을 기대할 수 없다. 존경은커녕 함부로 대한다. 낮춰 보며 '갑질'한다. '30분 체류형'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송악산 일대 전경.
강정효 작가
송악산은 신성하다, 알뜨르는 신성하다
송악산은 신성하다. 그가 가진 풍광과 생물과 지질은 원초적 힘으로 인간을 고결하게 만든다.
알뜨르는 신성하다. 그에 새겨진 역사와 문화는 평화에 대한 숭고한 가치를 고양한다. 그런 만큼 더욱 금단의 땅이어야 한다. 함부로 출입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송악산과 알뜨르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흠모하는 자만이 자격이 있다는 의미다.
이제 선택은 우리 몫이다. 앞뒤 안 가리고 사람만 끌어모으면 좋다는 '놀이공원'을 만들어서야 쓰겠는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품격을 유지하며 대대손손 이어갈 명품의 '생크츄어리' 공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 필자 소개: 역사교사로 3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제주역사 관련 책 <제주역사기행>, <새로쓰는 제주사>를 쓰고 답사 안내를 하다가 몇 년 전에 명예퇴직하고 제주지역 인터넷 언론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을 맡아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기획] 알뜨르 평화대공원에 스포츠타운을 집어넣겠다는 계획을 보며
①덧셈에만 취해 뺄셈 잊어버린 오영훈 제주도지사 (https://omn.kr/2blmh)
②알뜨르 부지에 세운다는 스포츠타운, 돈은 되겠는가? (https://omn.kr/2bm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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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사로 3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제주역사 관련 책 <제주역사기행>, <새로쓰는 제주사>를 쓰고 답사안내를 하다가 몇 년 전에 명예퇴직하고 제주지역 인터넷 언론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을 맡아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칼럼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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