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다음날인 30일 오후, 참사 현장인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안현주
내란 사건 이후 마음 한편은 늘 긴장과 불안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매주 상담을 해주시는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내가 우울증과 불안 증상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싶어서다.
선생님께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12월 3일 이후, 자신을 찾는 내담자들의 대부분이 나와 같이 해당 사건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괴롭고 무서운 마음이 드는 건 상담사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선생님의 설명은 이러했다. 국가적인 재난이나 큰 사건이 일어나면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아주 예민한 성격이라서 혹은 나처럼 마음을 치료하는 과정에 있어서가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충분히 이런 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안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이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비통함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괴로웠다.
이럴 때의 슬픔은 나누면 나눌수록 줄어들지 못하고 배로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저녁 아내와 나누는 대화의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부부 관계에 문제가 없음에도 이번 달의 두 사건은 나와 아내의 대화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실상 내란 사태가 아직 종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연말을 조용하게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주말에 일어난 황망한 여객기 참사를 보면서 더 확실하게 마음이 굳어졌다. 오래전 약속해서 취소하기 어려운 만남이 아니라면 가급적 모임은 자제하려 한다.
글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아니 사실 너무 힘겹다.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이 무거워 좀처럼 뻗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쓰는 걸 멈추지 않으려 애써왔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 쓰는 것 자체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은커녕 나에게 조차 위로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꾸역꾸역 문장을 완성해 갈수록 내 존재의 작음과 연약함만 느껴질 뿐이다.
올해의 마지막 날 써내는 글이 이렇게 우울한 글이 될 줄 몰랐다. 내가 쓰는 이 공간이 민주주의를 위해 외치는 작은 광장이 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참혹한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무거운 손가락을 놀려 뭐라도 써내야 하지 않을까. 공동체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대단한 글은 아닐지라도. 내 글의 어느 한 문장이라도 누군가에게 동산에 부는 바람처럼 다가갈 수 있다면 말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글이 된다면 좋겠다. 폭력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크나 큰 상실과 아픔으로부터의 자유. 아주 작은 한 자락이라도 좋으니 우리 모두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아픔으로부터 점점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 같은 거 말이다.
비록 종말 같은 분위기로 보내는 연말이지만, 새롭게 맞이하는 2025년은 올해보다 덜 아픈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어제보다 나은 우리의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부터 용기를 내어 현실로부터 숨거나 도망치지 말아야지. 내일은 가까운 합동 분향소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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