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 2022년 발표한 '제주평화대공원 조성사업의 주민수용성 제고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내 실린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조감도.
제주특별자치도
둘 다 '생크츄어리(세련되게 발음하면 [k]음을 부드럽게 넘겨 '생츄어리'라고 하지만, 나는 옛날 사람인지라 그냥 '생크츄어리'로 발음 표기하겠다. 국립공원 지정의 기본 개념으로 신성한 땅, 금단의 땅, 보호 구역을 의미한다. 생크츄어리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자세히 다뤘다)적' 관점이 많이 부족했다. 전문가 없이 진행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전문가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토건, 조경 전문가였다. 인문 사회학 전공도 없지는 않았으나 미미했다.
그래서인가, 제주도가 추구하는 '평화'의 개념은 무엇인지, 그 '평화'라는 신성성을 담기 위해 어떤 인문학적 가치들이 추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토건 조경 전문가답게, 산책로는 어느 쪽에, 그리고 공연장은 어디에, 동선을 어떻게 짜고. 배수로는 어느 쪽에 놓을 것인가, 뭐 이런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러니 자연스레 시설물로 가득 찬 '놀이공원'으로 귀결될 수밖에.
생크츄어리 관점을 생각한다면 평화전시관, 공연장 등 대규모 인공시설은 모두 밖으로 빼내야 한다. 역사 현장은 가급적 원형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평화전시관(역사 전시관)이라고 해서 꼭 그 안에 있을 필요가 없다. 전시관 역시 현장의 원형을 해치기 때문이다.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 그 전투가 있었던 마라톤 평원에는 안내 표지판 하나밖에 없다. 마라톤 전쟁의 영웅 '밀티아데스'의 동상은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입구에 있다. 기념관 역시 그렇다. 최대한 원형을 해치지 않는 배치다.
명품에는 스토리가 따른다
역사 전시관도 빼고, 편의 시설도 빼고, 주차장도 빼고, 차량 진입도 막는다면 도대체 알뜨르 너른 벌판에 무엇을 놓자는 말인가? 나의 답은 스토리다. 상상력이다. 그걸 집어넣어야 한다.
이때부터는 집단지성이다.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모여 토론하고 다듬어야 한다. 특출한 기획자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행정은 뒤에서 도와주기만 해야 한다. 예산 지원, 행정 절차 등을 챙겨주기만 하면 된다.
행정이 나서서 졸속으로 진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할 사례가 있다. 142년째 짓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대성당이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정) 대성당이다. 1882년에 시작해서 지금도 짓고 있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1992년 시작해서 지금도 짓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2023년 촬영.
이영권
일단 건축물 자체가 빼어나다. 그런데 그와 함께 스토리가 넘친다. 여러 조각상에 대한 스토리도 모두 흥밋거리지만, 우선 140년 넘는 세월 자체가 관심거리다. '도대체 어떤 건축물이기에'라며 찾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스토리가 구성된다. 현장에 도착하면 우선 특이한 건축물에 끌린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지난 140여 년 동안의 역사와 변화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연구진들의 작업 장면도 그대로 보여준다. 모든 게 스토리다.
요즘은 자그마한 오두막이라고 해도 감동의 스토리만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간다. 과거처럼 하드웨어가 아니다. 시설만 잔뜩 지어 놓고, 스토리가 없으면 흉물이 되기 쉽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연구실. 건축물만이 아니라 이 성당의 건설 과정 역시 스토리다. 건축가들의 연구 작업실도 공개한다. 2023년 촬영.
이영권
알뜨르 평화대공원도 가우디 성당처럼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스토리를 만들면서. 알뜨르는 일본 제국주의와 관련 있는 유적지다. 그러니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을 완공 시점으로 잡으면 어떨까?
20년 동안의 조성 사업, 그 자체가 스토리를 이룬다. 광복 100주년이라는 것도 주목을 끌 수 있다.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20년에 걸쳐 만든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된다. 20년 동안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토론 결과를 반영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그 사업 결과에 대해 반성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반영하여 다시 만들어가는 것 말이다. 그 자체가 스토리다. 그 자체가 상품이 된다. 싸구려 관광지에는 없는 상품들이다.
평화가 흐르게 하라
너무 막연한 이야기라 비판할 수 있겠다. 스토리? 상상력? 집단지성? 맞다. 나 역시 완벽한 그림을 그리진 못한다. 그러니 이제 나와 비슷한 나이의 '콘크리트 하드웨어' 세대는 물러서야 할 것이다. '남태령 신인류'와 같은 새로운 상상력의 세대가 앞에 나서야 한다.
다만 그동안의 고민 흔적들은 꺼내고 싶다. 우선은 현재의 풍광을 해치지 않았으면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각종 시설물은 알뜨르 밖에 지었으면 좋겠다. 기념관보다 농사짓는 지금의 모습이 훨씬 평화에 가깝다. 잘 난 건축물보다 '비어 있음'이 더 큰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해마다 평화 축제를 열었으면 좋겠다. 먼저 평화공원 건설의 진척 상황을 보고하고 평가하는 행사가 필요하다. 꼭 학자들만 참여할 필요는 없다. 평화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다. 알뜨르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환영이다.
축제에는 예술가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다. 알뜨르에 시(詩)가 흐르면 좋겠다. 시각 예술이 만개하면 좋겠다. 선율도 함께해야 축제가 풍성해진다. 깃발이 땅을 덮을 수도 있겠고, 조형물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반길 수도 있겠다. '평화 영화제'는 당연히 함께 할 것이다. 그 모든 예술 활동이 평화를 불러온다. 이쯤이면 장터는 자연스레 들어설 것이다.

▲ 알뜨르비행장 전경.
강정효 작가
흘러야 한다. 흐르지 않고 형식이 정해지면 갑갑해진다. 그러니 해마다 틀도 자유롭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서 행정은 예산 지원만 하고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행정이 관여하면 정해진 틀대로 간다. 생명이 없는 죽은 축제가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역시 반복한다. 공간을 비워라. 더 이상 하드웨어는 아니다. 콘크리트는 안 된다. 건물, 거대한 시설, 기념탑 등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런 방식은 퇴행일 뿐이다. 꼭 필요하다면 알뜨르 밖에 설치해야 한다. 행사 시설도 고정형은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 고정형이 아닌 유동형, 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 그 빈 공간의 흘러감 속에서 집단지성은 평화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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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사로 3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제주역사 관련 책 <제주역사기행>, <새로쓰는 제주사>를 쓰고 답사안내를 하다가 몇 년 전에 명예퇴직하고 제주지역 인터넷 언론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을 맡아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칼럼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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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평화대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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