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란, 조경국 작가<경상의 말들> 출간 후 서점 미팅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병진
<경상의 말들>(유유, 2024)은 "다양한 정서를 품은 유서 깊은 말, 오래 기억하고 함께 쓰고 싶은 사투리 표현을 모아 우리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살핀다"는 출판사의 기획에서 출발한 '사투리의 말들' 중 한 권으로 나왔다.
마을과 문화, 사람을 톺아보며 지역의 이야기를 여러 매체를 통해 써 온 권영란 작가와 지역 헌책방을 운영하며 책과 글을 통해 독자를 만나 온 조경국 작가, 두 사람이 함께 '새빠지게' 경상도의 말을 썼다.
서울, 충청, 전라의 말들과 함께 경상의 말들도 나온 것인데, 문학작품이나 영화, 여러 매체 등에 쓰인 그 지역의 사투리 100개를 그러모으고 거기에 단상을 덧붙인 책이다. 노상 쓰는 말인데도 문자로 옮겨놓으니 잊은 지도 모르고 잊고 있던 말들도 보이고, 같은 경상도라고 생각했지만 낯선 말도 보이고, 무엇보다 여기엔 이런 정서가 흐르네, 저곳엔 저런 문화를 품고 있네, 하는 뜻밖의 생각을 수시로 하며 일했다. 다양하게 말맛을 즐긴 건 덤이다.
다른 '사투리 시리즈'와 달리 <경상의 말들>은 두 명의 저자가 작업해서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경남 창원이 연고지인 프로야구 구단 엔씨 다이노스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두 사람 모두 거론한다든가 하는 지역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고, 혹은 같은 말을 두고도 약간은 다른 정서로 인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아는' 작가님들이라는 이점을 백분 이용해 바로 카톡이나 전화로 묻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느 때는 나 또한 경상도 편집자라는 이점을 살려 "이건 이런 뜻이라기보다는 저런 경우에 쓰이는 것 아닌지?"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토박이말에서 만나는 이웃,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처음 듣는 토박이말도 여럿 만났는데 개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이 '줌치'였다. 문학작품이나 여러 매체 등에 쓰인 인용문이 아니라 권영란 작가가 실생활에서 직접 들은 말인데 그 말 사연이 퍽 아파서 기억에 남았다.
"돈이 요물인기라. 줌치를 열래야 열 줌치가 없대이"
줌치는 '호주머니'를 이르는 경남 지역의 사투리다.
어쩌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 저자는 거동이 불편한 '할매(할머니)' 다섯 분과 몇 주를 함께 지내게 됐다. 입원실에서 제일 기세등등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고, 먹을거리 인심 좋은 사람이 그 병실에서 제일 기세등등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중 한 할매는 유독 다른 할매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겉도셨다. 인용한 말은 몇 번 말을 걸고 주전부리를 드리며 꾸준히 다가갔더니 그나마 속을 살짝 내보이신 할매가 하신 말씀이다. 과일 한 조각, 음료수 한 병, 얻어먹고 마시면 나도 줌치를 열어 베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돈은 요물이 맞다. 돈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마냥 퍼주고 싶은 것이 되기도 한다. 남에게 한 푼이라도 뺏길세라 주머니를 여미기도 하지만, 인심을 나누고 속 깊은 정을 나누려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열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럴 때 '열래야 열 줌치'가 없는 아득한 마음이라니.
필요할 때 없는 마음도 절박하고, 나누고 싶을 때 당최 나눌 수 없는 마음도 퍽 애잔하다 싶어 가슴 한쪽이 따끔따끔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노년도 그럴까, 저절로 걱정도 되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