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사 활터 건너편에 세워진 과녁 (2025.1.1)
김경준
1572년(선조 5년) 28살 청년 이순신은 무과시험을 치르던 중 낙마하여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낙방 후 다시 활터에 선 청년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이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 백세토록 한민족의 존경을 받는 성웅(聖雄)이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당장 다음 무과시험에 합격할 자신이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곳 활터에서 매일 같이 활쏘기를 연마하며 노력한 끝에 4년 뒤 32살의 나이로 식년시(式年試) 무과에 병과(丙科) 4등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족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내 나이도 어느덧 33살이다.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한 나이를 넘어섰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전업 대학원생으로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남들은 다 취직하여 자리잡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나이에, 나는 여전히 '언제쯤 졸업할 수 있을지', '졸업 후 취직은 어떻게 할지' 기약 없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해 첫날, 청년 이순신의 활터에 서서 다짐해 보았다. 온갖 시련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나아가 마침내 영웅이 된 이순신처럼, 나 역시 스스로를 믿고 더 열심히 정진하리라. 그 순간 청년 이순신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 현충사 활터에서 빈 활을 당겨보다
김경준
충무공 정신을 계승하는 아산 충무정
현충사를 나온 뒤 마지막 일정으로, 충남 온양온천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충무정(忠武亭)'을 찾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충무정은 아산 출신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자 세워진 활터이다. 1970년 남산(南山) 기슭에 과녁 하나 세운 채 활을 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이후 회원 감소 등으로 잠시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1981년부터 그 맥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으며 1984년 마침내 대한궁도협회에 등록함으로써 정식 활터로 승격했다. 1992년 성웅이순신축제 기념 제1회 전국남녀궁도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 아산 충무정 풍경 (2025.1.1)
김경준
충무정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 사무실 안에 모셔진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상무정신(尙武精神: 무예 중시)을 계승하는 활터다운 모습이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회원들은 열심히 활쏘기를 연마하고 있었다.
"새해 첫날을 맞아 현충사에 참배하고 활을 쏘러 왔다"고 하니 충무정 회원들 모두 따뜻한 환대로 맞아주었다. 그렇게 함께 어울려 활을 4순(20발)을 냈다. 새해 첫날, 충무공의 고향에서 활을 내니, 이 또한 참으로 낭만적인 새해 맞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산 충무정 사무실에 걸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 (2025.1.1)
김경준
충무정에서 한 발, 한 발 활을 내는 동안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올해는 학업에 있어 큰 성취가 있기를'
'올해는 모두가 건강하고 나라에 큰 위기가 없기를'
'올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반드시 승리하기를'
'올해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한걸음 더 발전하기를'
힘차게 날아가 과녁판을 힘 있게 때리는 저 화살처럼, 이러한 바람이 모두 실현되기를 간절히 빌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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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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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새해 첫날 다녀온 특별한 장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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