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도착우재인
'오늘 작업량이 만만치 않겠군.'
놀고 있던 어린 조카에게 인사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이미 그녀의 공장은 돌아가고 있었다.
"빨리 좀 오라니까."
뭔가 심기가 살짝 불편해 보였다. 감자를 깎고 물기를 빼고 있는 그녀를 애써 모른 척했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의 여유만은 즐기고 싶었다.
"조카~ 이모 커피 한 잔 내려 줘."
이미 이모에게 익숙해져 있던 초1 조카가 커피 한 잔을 말아왔다. 폭탄주 말 듯, 커피 추출액과 미지근한 물을 적당히 섞어서 말이다. 커피 한 잔을 스읍하고 동생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작업해야 할 게 뭔데?"
동생이 감자를 손에서 내려놓고 거실로 왔다.
"집에서 맨날 찔끔찔끔 요리하는 거 너무 귀찮고 시간도 뺏기고. 오늘 한 달 치 먹을 것 다 만들어서 냉동실에 쟁여놔야겠어."
"넌 맨날 뭘 그리 쟁여놓냐?"
"왜? 엄청 편해. 오늘 냉동실 터질지도 몰라."
뭔가 작업량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줄행랑을 쳐야 하나 싶었다. 그녀가 오늘 작업할 메뉴를 보여주었다.
_닭 : 닭갈비, 찜닭, 닭곰탕, 닭 크림 스튜
_돼지 : 제육볶음
_소 : 소불고기
_햄 : 부대찌개, 햄 볶음밥
_채소 : 볶음밥, 짜장밥, 카레밥, 김밥, 잡채
_콩류 : 배추된장국
_해조류 : 미역국
저 펼쳐지는 베리에이션(variation)을 보라. 닭 하나로 4가지 요리를 한 번에, 채소를 썰어 오늘은 볶음밥, 내일은 짜장밥, 모레는 카레밥. 생각해 보니 환상적이다.
_무려 15가지 메뉴
_한 달 치 7인(3인 가족 + 4인 가족)의 식사량
이 어마어마한 작업량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언제나 그렇듯 요리를 잘 못하는 나는 후방으로 빠졌다.
"뭐 하면 돼?"
그녀의 작업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감자껍질) 깎으라면 깎고, (양파껍질) 벗기라면 벗기고, (당근) 썰라면 썰고, (양념) 저으라면 저으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