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영화화된 <에너미 마인>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자미스."
"예, 삼촌?"
"자미스, 넌 드랙이야. 드랙은 한 손에 손가락이 세 개야."
나는 내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들을 흔들었다.
"난 인간이고 손가락이 다섯 개지."
단언하건대, 나는 그때 어린애의 눈에서 눈물이 솟는 것을 보았다. 자미스는 자기 손을 펴서 한동안 바라보더니 머리를 저었다.
"어른이 되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이 생기나요?" - 본문 109쪽 중에서
과연 데이비지가 자미스를 드랙 고향 행성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우주선이 망가진 마당에 행성에서 탈출하거나 구조될 수는 있을까. 아무도 살지 않던 척박한 땅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경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1979년 첫 출간, 1994년 국내 첫 번역 출간 후 30년 만에 다시 번역돼 출간 된 <에너미 마인>은 줄거리 내내 긴장감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또한 데이비지와 제리바, 자미스가 대화를 나누며 차츰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2024년 12월 내란 혐의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2025년 1월 현재 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여 내란 가담자 체포 및 처벌을 요구하며 색색깔의 응원봉과 깃발을 들어올리고 있다. 이 시국에 <에너미 마인>을 많은 이에게 권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타인을 향한 존중이자 이해일 것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여의도-남태령-한강진에 이르기까지, 탄핵 집회 광장 발언대에 오른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탄핵이 이뤄지고 사회가 바뀌길 바란다고 말하는 중이다.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장애인, 고졸, 우울증 병력 등 다양한 정체성과 상황을 얘기하며 시민들은 젠더노소 각계각층에서 내란 사태가 책임자 처벌을 통해 종식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에서는 '탄핵 얘기만 하지, 인권 관련된 이야기는 왜 하느냐'며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발언이 섞인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탄핵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박근혜 탄핵 이후 또다시 탄핵 정국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탄핵 뒤 극우 세력이 여성, 장애인, 노조, 성소수자 혐오를 토양 삼아 세력을 키워 돌아온 결과가 지금의 내란 정국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극우 물결이 한국을 집어삼키는 걸 막자면, 개개인이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쉽게 혐오하지 않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쓴소리는 외면한 윤석열이 극우 유튜브 속 가짜뉴스에 물들어 내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와 반대로 낯선 타인의 말에도 귀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전쟁을 멈출 수 있겠어요?"(139쪽 중)라는 자미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광장에 모인 이들에 조금 더 마음을 열어보면 어떨까.
에너미 마인
배리 B. 롱이어 (지은이), 박상준 (옮긴이),
허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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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다양한 시민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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