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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속 음식이 주인공인 책, 제가 냈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음식 덕후 키덜트'인 내가 <내 책갈피 속 봉봉>을 내기까지

등록 2025.01.06 17:15수정 2025.01.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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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혹은 편집자도 시민기자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기자말]
"옛날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

조상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했다는 말이다. 옛이야기와 가난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 필자, 즉 글쓴이 본인이라서 왠지 뜨끔해지곤 한다.


그 시절 옛날이야기란 아마도 저잣거리에 떠도는 가담항설이나 한글로 쓴 이야기 책들을 말할 것이다. 사서삼경을 암기하고 과거를 준비해야 하는 양반집 도련님들에게 이런 글들은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의 전형인 셈이다.

나 또한 비슷했다. 어린 시절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 했고, 이야기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다. 계몽사 50권 동화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먼 외국의 전설, 민담들은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는 동시에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세계 동화나 명작에 과몰입하면서 좀 생뚱맞은 분야에 꽂히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바로 이름조차 낯선 작품 속 음식들이다. 파이, 푸딩, 봉봉 같은 양과자가 실제로 어떤 음식인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열대과일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짧은 여행을 갈 때도 음식에 매우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관련 기사: 직접 갈아 먹는 와사비, '먹부림' 여행 다녀왔습니다 https://omn.kr/2aeev ).

 지난 2022년 9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인근 사탕가게. 향기로운 장미꽃잎에 설탕옷을 입힌 캔디가 시선을 끈다.
지난 2022년 9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인근 사탕가게. 향기로운 장미꽃잎에 설탕옷을 입힌 캔디가 시선을 끈다.정세진

사실, 문학 작품이나 전래동화를 읽을 때 음식 묘사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번역가들 역시 독자에게 전체 내용 흐름을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등장하는 음식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굳이 공을 들일 일은 아니다.


동화 속 음식들의 실체를 하나씩 알아낼 수 있었던 시기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2000년대 이후로 기억한다. 궁금했던 '봉봉'이 사탕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일반명사라는 걸 알았을 때엔 살짝 실망한 적도 있지만, 낯선 음식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은 꽤 즐거웠다.

색다른 시각으로 보는 문학작품의 세계


물론 낯선 음식 찾아내기를 무슨 대형 프로젝트 마냥 대대적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읽어온 세계명작들 중 상당수가 일본판 중역이었다는 것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안 그래도 생소한 음식명을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바꾸니 더욱 정체가 불분명해진 것.

나의 소소한 탐정놀이에는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어린이·청소년 권장 도서를 학교에서 꾸역꾸역 읽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모든 작품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디테일로 등장하는 음식들이 당시의 시대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흰 빵과 검은 빵이 빈부격차를 반영한다는 것, 무인도에 표류된 '영국인' 소년들이 생필품도 아닌 차를 발견하고 기뻐했던 것 같은 에피소드들은 문학작품이나 전래동화를 보다 색다른 시점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내 책갈피 속 봉봉 지난달 30일 출간된 초판 표지
내 책갈피 속 봉봉지난달 30일 출간된 초판 표지정세진

두 권 음식 에세이를 낸 프리랜서 작가로서, 내가 '쓸데없는 옛날이야기에 탐닉한' 결과가 단행본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디자인 21'에서 지난해 12월 30일 나온 신간 <내 책갈피 속 봉봉>이 그것이다(부제는 '세계명작에 숨어있던 맛있는 이야기'이다). 2023년 7월 7일 전자책 플랫폼 '북이오'에서 기 출간됐던 내용을 종이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다.

'<내 책갈피 속 봉봉>은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갔던 고전 창작물 속 음식들이 주인공이다. 저자가 가장 먼저 호기심을 가졌던 유럽의 음식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맛과 문화를 탐색한다.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들이 접하는 외국 문학이 대부분 서구권 작품이다 보니 지역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몇몇 글들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리고 끝으로는 한국으로 돌아와 고전과 근현대 문학 속에 등장하는 우리 옛 음식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익숙한 문학 작품 속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음식 묘사와 함께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탐정 놀이의 즐거움을 여러분께 선사하고 싶다.' (출판사 책 소개 중)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시작으로 계몽사 시리즈 중 북유럽 동화와 독일 동화, 루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등을 소재로 삼았다. 내용이 유럽 음식 위주다 보니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인도, 베트남, 아프리카 등을 다룰 때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작품들도 추가했다.

"옛날이야기에 탐닉하고 기꺼이 가난해지겠다"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된 것이 나의 작가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기왕이면 많은 분들이, 이 '쓸데없으나 재미는 있는'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한다.

[이전 기사]
지인이 "충격적이었다"던 찬 국밥, 먹어봤습니다 https://omn.kr/2aa1q
노벨상 만찬회, 한강 작가 위한 잔칫상 살펴보니 https://omn.kr/2beop

내 책갈피 속 봉봉 - 세계명작에 숨어있던 맛있는 이야기

정세진 (지은이),
디자인21, 2024


#음식 #세계 #명작 #에세이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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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서 국제경제, 유통, 산업 등 여러 부서를 거치다 현재 프리랜서 음식 작가로 활동중입니다. 두 권의 음식 단행본을 출간했으며 역사와 음식, 기타 잡지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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