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김밥
어혜란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깜짝 놀랐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당근이 3개에 5990원이다. 10원을 하나 뺀 뒷자리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당근 하나에 2천 원꼴이라니. 요즘 물가 너무 무섭다. 장보기가 겁난다.
얼마 전 장 보러 갔을 때도, 담은 것도 얼마 없는데 계산이 너무 많이 나왔다. '혹시 계산이 잘못됐나' 하고 영수증을 한참 들여다보고 서 있으니 점원분께서 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계산 맞을 거예요. 요즘 물가가 너무 비싸서 금액이 항상 많이 나오더라고요" 한다. 아마도 나 같은 손님이 많은가 보다.
한창 수확 시기인 당근이 제철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이 가격에 당근을 먹는 것이 맞을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한참을 자리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 금값 당근 한 번 사 먹는다고 우리집 가정 경제가 파탄이야 나겠어!' 하며 호기롭게 한 봉지를 덥석 집어 들었다.
가격표 아래 단정하게 쓰인 '제주 당근'이라는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구좌 당근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제주에서 당근이 가장 많이 재배되는 지역이 구좌읍이니 맞겠지 뭐.
구좌 당근 맛, 나만 몰랐나
구좌 당근의 참맛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떠났던 제주여행에서였다. 우연히 방문했던 세화리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구좌 당근주스를 처음 맛보게 되었다. 세화리는 구좌읍에 속한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담하고 고즈넉한 동네를 이리저리 돌며 산책하다가 시원한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예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바구니에 담긴 깜찍하고 선명한 주홍빛의 당근주스가 눈에 들어왔다. '첨가물 無, 구좌 당근주스'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호기심 많은 이방인은 평소 당근과 친하지 않으면서도 구좌 당근 주스의 맛이 궁금해졌다. '입에 맞을까?' 하는 설렘과 호기심 반으로 주스를 구입했다. 그런데 웬걸!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첨가물 無라는 문구가 의심이 들 만큼 너무너무 달고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단숨에 비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