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밤 대통령 관저 앞 한남대로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 등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격자무늬 조명 건물이 1층 홀을 개방한 일신빌딩.
이봉수
기재부 관리의 균형재정 집착은 거의 종교 수준이다. 재정건전성 유지는 좋은 정책목표지만, 긴급상황에서도 복지지출에 인색한 관성은 큰 문제다.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대통령이 첫 비상경제회의에서 "국민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게 최우선"이라고 '읍소'했을 때도 기재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김동연 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에 반발했고 말기에는 홍남기 부총리가 재난지원금 지출을 거부해 윤석열 정부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재정건전성이 신조였다면 새 정부에서도 재난지원금 지출을 거부해야 하는데, 거액의 지원예산을 바로 편성했다. 나는 그런 태도 돌변의 이유를 기재부 관리들이 원래 수구적이어서 진보정권의 탄생을 싫어한 때문이라고 본다.
진보정권 초기에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지만 타협하지 않으면 관료에게 밀려나는 전철을 밟는다. 김태동·이정우·장하성·정태인이 다 그랬다. 진보정권임을 표방하고서도 진보적 가치를 포기하면 정권 창출의 효능감을 상실해 결국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
제주항공 사외이사였던 윤 정부 실세들
기재부에는 행정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성적 최우수자들이 몰려 검찰과 비슷한 엘리트주의 행태를 보인다. 상당수는 혼인 등을 통해 기득권층에 편입되고 퇴직 후에도 노른자위 자리들을 꿰찬다.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될 때는 금융·예산·세제라는 경제정책 3권을 모두 다 장악해 '공룡 재경원 귀 막고 질주'라는 비판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부작용 때문에 분리와 통합을 반복해 왔다.
기재부 출신은 타 부처 장·차관 자리도 과점하고 있고 퇴직 후에는 산하 기관장이나 사외이사 등으로 진출한다. 30대 기업의 사외이사 46%가 관료 출신인데 기재부가 압도적으로 많다. 윤석열 정권에서 검사 출신 약진이 두드러졌지만 검찰과 기재부 출신의 공동정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제주항공만 하더라도 김주현 민정수석은 제주항공 사외이사를 지냈다. 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제주항공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 사외이사로 있었다. 사외이사는 원래 목적인 경영감시 기능은 거의 하지 않고 대개 로비 창구로 활용된다.
기재부에 대거 포진한 서울법대 인맥
기재부에는 이헌재·강경식·강만수·윤증현·김진표 등으로 이어지는 서울법대 인맥이 다수 포진해 있었는데, 최상목은 그 맥을 잇는 인물이다. 그는 국민의힘과는 서울법대 82학번인 나경원·원희룡 등 동기들과 연결되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과 선배다.
그들은 '민생'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서민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안전이나 노동환경 등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데, 보수 정부는 기업을 편들어 규제는 무조건 나쁜 것이란 인식을 심어왔다.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등 부자감세에는 의견을 쉽게 모으지만 양곡관리법 등 농민과 노동자의 소득을 올려주는 일에는 무심하다.

▲ 윤석열 체포와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는 대통령 관저 더 가까운 곳을 차지하고 열렸다.
이봉수
그들은 법조계와 함께 한국사회 기득권충의 최상부를 형성해 혁신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예산편성 과정을 예로 들면 사회정책상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도 조금 깎거나 늘리는 식으로 일한다. 이번에 헌재 재판관 3명 중 진보 성향인 마은혁 후보를 임명하지 않고 1명 깎는 걸 보고 '그러면 그렇지' 했다. 어느 쪽에서도 욕 먹지 않으려는 '예산편성식 임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피아' 행태 답습되면 안전도 복지도 신기루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서로 견제할 때는 그나마 기획원의 혁신성이 재무부의 보수성과 조화를 이루기도 했는데 그건 옛날 이야기다. 지금 윤석열 체포와 탄핵을 추진하는 단체들을 아우르는 이름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다. 퇴진운동을 사회대개혁으로 이어가려면 기재부 출신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기재부 관리들 중에도 특히 젊은 관리들은 유능한 인재들이 많지만 그들이 내놓는 정책들이 기득권을 옹호하는 쪽으로 향한다면 저지돼야 마땅하다. 민주당도 보수정당에 가깝지만, 집권할 경우 다소나마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검찰개혁과 함께 세제 등 재정개혁과 기재부 혁신을 힘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모피아'의 나쁜 행태가 답습된다면 안전선진국도 복지국가도 신기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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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조천읍에 배롱서원 북스테이를 열어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무료 기숙학교로 운영하며, 서울에선 MBC저널리즘스쿨 교수(초대 디렉터)로 일합니다.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 한겨레/경향 시민편집인, KBS 미디어포커스/저널리즘토크쇼J 자문위원, 연합뉴스수용자권익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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