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한스의 죽음이 던진 질문

등록 2025.01.08 08:20수정 2025.01.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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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아이가 내게 비극으로 끝나는 소설 있냐고 물어봤다. 주인공이 죽으면 더 좋다고 한다. 나는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떠올랐다. 단숨에 읽은 아이는 결말이 마음에 든다는 말 이외에는 딱히 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얼마 후, 아이는 뜬금없이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죽음이 좋다고 했다. 어이없는 사고사도 그의 어설픔을 보여줘서 더 좋단다. 죽음 말고는 한스가 해방할 방법이 없기에 아주 적절한 결말이라나.


한스의 죽음이 한편으로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다. 감정을 정화하는 소설의 역할을 다한다는 점에서 아이의 시각도 존중하고 싶었다. 아이는 이 결말을 통해 한스의 삶과 그가 겪은 고통을 더 깊이 느꼈을 것이다.

그랬어도 나는 어미로서의 해석을 아이에게 권하고 싶었다. 한스가 다른 사람의 기대가 아닌 본인이 원하는 걸 더 깊이 생각했으면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엄마가 아니었어도 이렇게 말했을까 싶어졌다.

한스는 모두가 선망하는 신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하면서 어른들의 기대를 받는다. 그랬어도 학업 중압감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은 한스의 정신과 신체를 피폐하게 만든다.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지은이),김이섭(옮긴이)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지은이),김이섭(옮긴이) 민음사

한스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어른들의 실망 어린 시선과 조롱을 견뎌야 했다. 한스가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촘촘하게 그려진다. 아이도, 나도 그 촘촘함을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하는 건 위선인 것 같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데 아이가 결정적 한방을 날린다.

"교장 선생님, 각 과목별 교사, 아빠까지 합세해서 한스를 가스라이팅 하잖아. 한스는 하일너(신학교에서 만난 한스 친구, 한스와 정반대의 성향, 학교 규칙에 저항하다가 퇴학당한다)처럼 기 센 사람이 아니라 그걸 견딜 수가 없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한스의 상황이라고 상상했을 때 나 역시 피폐해졌을 거 같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키는 노력'을 아이에게 원한다면 내가 너무 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스가 다니던 신학교의 교장은 한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지 모르니까."


'깔리게 될지'라는 표현을 통해 교장은 거대한 제도에 순응해야 함을 암시한다. 그 제도가 개인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관심이 없다. 나도 답을 바꾸기로 했다. 네가 한스같은 선택을 이상적으로 볼까 봐 걱정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는 쿡쿡 웃으며 나를 봤다. 나도 고슴도치 어미인지 그 눈이 참 맑아서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본인이 소설이랑 현실을 구분 못하는 바보가 아니라고 한다. 한스 선생님이나 아빠처럼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이 자기에겐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해주는 아이가 고마웠다.

스스로에게나 남에게나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한 나다움, 그게 그 순간 아이에게 보였다. 물론 아이는 인정하지 않는다. 사춘기 특성이니 너는 그러렴, 나는 한다, 의 마음으로 사랑스럽다, 예쁘다, 잘 될 거다 같은 말을 해준다.

이렇게 오래된 책도 잘 읽는 네가 멋지지 않으면 누가 멋지겠냐고 정색해보기도 한다. 아이는 나쁘지 않은 듯 배시시 웃었다.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나인 것이 그저 편안한 상태, 그걸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폭삭한 극세사 이불을 둘러덮으며 아이를 꼭 안았다. 책으로 남의 고통과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삶에서는 끝내 자기다움을 지켜낼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교과서 같은 말을 나는 중얼거렸다. 아이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냥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한스가 떠난 자리에는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다. 그것은 아이만이 찾을 수 있다. 아이가 책장을 덮고도 오래도록 그 무언가를 품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스의 죽음이 던진 질문은 우리 둘 다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가 우리 사이를 좀더 단단하게, 그러면서 부드럽게 이어줄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 올라갑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민음사, 2001


#반갑다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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