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창원마산에서 열린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제막식. 김필두 어르신.
윤성효
올해 여든아홉인 김필두 어르신은 표지석을 안고 눈물을 보였다. 7일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 옆에서 열린 '백마탄 여장군,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제막식에서다.
김필두 어르신은 "(김명시 장군의 외삼촌인) 아버지께서는 늘 '명시 누나를 잊지 말라'고 하셨다. 그 소원을 이제사 들어드린 것 같다.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다. 김필두 어르신은 "명시 누나의 삼형제 모두 독립운동가였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의 항일독립투쟁 사실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잊혀지다시피했다. 그러다가 2019년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국가보훈처에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하면서 알려졌다.
이 단체가 벌인 "김명시 장군의 친인척을 찾습니다"라는 광고와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를 본 친인척들이 연락해 찾게 되었고, 김필두 어르신을 비롯한 친인척들과 함께 생가터를 확인하기도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가 낸 포상신청에 대해 2019년 11월 국가보훈처는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 불분명'이라는 사유로 당시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이에 이 단체는 자료를 보완해 재신청했다. 그러다가 윤석열정부 때인 2022년 8월 15일 국가보훈처는 광복절 때 김명시 장군에 대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생가터 표지석은 2020년 8월 14일 설치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바래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에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창원시에 2024년 5월 생가터 표지판 교체를 요구했다. 이에 창원시가 새 표지판을 제작해 세웠고 이날 제막식이 열린 것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작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희생한 분들을 애도하는 기간을 지나면서 오늘에야 김명시 장군 표지석 제막식을 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김명시 장군 생가터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백마탄 여장군,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건국훈장 애국장-
백마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金命時1907~1949)는 중국대륙에서 대일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다.
어머니 김인석은 3.1운동으로 심한 고초를 당했고, 오빠 김형선(1904~1950)과 동생 김형윤(1910~ )까지 온 가족이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들 삼 남매가 일제 감옥에 갇힌 기간이 무려 25년이나 된다.
김명시는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 16회)를 졸업했다. 1925년 18세 때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으로 유학, 1927년 재학 중 중국으로 파견되어 치열한 항일전을 전개했다.
25세 때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다시 중국으로 탈출, 조선의용군에 참가했다. 일본군 점령지에서 적구공작 책임자로 활동했고, 귀국 직전에는 여성부대 지휘관(7장군)이었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와 조선부녀총동맹의 핵심 간부로 맹활약했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매진하다 1949년 10월 부천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2년 8월 15일 김명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창원특례시.

▲ 7일 창원마산에서 열린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제막식.
윤성효

▲ 7일 창원마산에서 열린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제막식.
윤성효

▲ 7일 창원마산에서 열린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제막식.
윤성효

▲ 창원마산에 있는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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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독립운동" 새로 세워진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생가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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