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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도 발명될 수 있을까? 궁금하면 보세요

[서평] 정혜윤 산문집 <삶의 발명>

등록 2025.01.08 09:16수정 2025.01.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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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삶의 발명> 표지 디자인 입체파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을 통해 생태, 환경의 메시지와 함께 시사, 독서 경험, 통찰의 면으로 구성된 입체적 서사 방식을 암시한다.
▲정혜윤의 <삶의 발명> 표지 디자인 입체파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을 통해 생태, 환경의 메시지와 함께 시사, 독서 경험, 통찰의 면으로 구성된 입체적 서사 방식을 암시한다. 위고출판사

어떤 책은 표지가 열일한다. 정혜윤 산문집 <삶의 발명>의 표지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 화가로 불리는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이다. 새 같기도 하고, 고래 같기도 한 추상적 형태는 책이 담고 있는 생태, 환경의 메시지를 암시하는 듯하다.

큐비즘, 즉 입체파는 사물을 하나의 입체적 도형의 형상으로 표현한다. 저자는 마치 입체파의 표현 방식을 빌린 듯, 시사적인 환경 이슈를 한 면으로, 자신이 감탄한 독서 경험을 또 한 면으로, 자신이 몸으로 얻은 통찰을 또 다른 한 면으로 큐브 형태의 입체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삶의 발명>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일상의 반복을 벗어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삶을 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일상의 반복을 넘어선 새로운 삶의 발명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삶'! 이걸 가지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번잡스러운 선물, '삶'! - 153쪽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지겨우니까.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200쪽

삶 위에 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이 사실을 깨달을 때 필멸자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인간성의 일면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돌이킬 수 없기에 지금 마주하는 이 순간이 소중하고, 이 소중함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기에 더 나은, 더 좋은, 더 새로운 삶을 발명해야 한다. 반복하는 일상의 이야기에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발명해야만 한다.

자신의 성대에서 나오는 지겨운 목소리에 새로운 목소리를 추가해야만 한다. 인간은 절대 자기 홀로 창조적일 수 없고, 사방에 자기뿐인 세계에서 인간은 '나-나-나-나'로 이어지는 가시철조망(170쪽)에 찔려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시철조망 같은 자기중심적 세계로터 일단 자신을 구해낼 관계의 에너지를 발명해야 한다.


새로운 '삶의 발명'에 필요한 재료들

세계에 대한 앎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알았던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중략)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어야 가능성이 태어난다. - 56쪽

삶의 이야기를 뭔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새로운 이야기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무언가를 새로운 삶의 발명에 필요한 재료는 무엇일까. 저자는 앎, 사랑, 관계, 경이로움 등의 재료를 거론한다.


우선, 새로운 앎의 지도, 인식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바보처럼 살고 있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성찰이 새로운 삶의 발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각자를 지배하는 메인 서사의 환상에서 깨어나야(220쪽) 한다고 말한다.

타자가 정해준 행복이라는 길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들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이 보고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뭔가에 의미를 둘 줄 아는 창조성(11쪽)을 가지라는 것이다.

더 큰 세계를 위해 더 큰 사랑을 발명한 유가족들처럼 자신의 경험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로 바꾸라(80쪽)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생과 인간의 끊어진 '실'이 다시 연결되는 회복의 이야기(135쪽)에 동참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발명'이 지향할 곳은?

앞으로는 자연을 빼놓고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는 이야기 속에는 어떤 탈출도 행방도 없다. -213쪽

따개비로 뒤덮인 거대한 고래, 자유를 찾아 날아오른 순천의 흑두루미, 죽은 돌고래를 지키는 시월이, 제주도에서 기적적으로 만난 2번 돌고래 춘삼이, 죽은 배우자 13번을 홀로 기리고 돌아오는 14번 늑대, 꼬리 깃털을 펼치며 펑 하는 소리를 내는 안나 벌새 등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잃어버린 생물학적 생태계를 복원하고자 애쓴다.

르 귄의 말(74쪽)처럼 우리는 세상을 우리 인간들과 우리의 소유물로 축소시킨 그런 세상에 맞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다. 태생적으로 자연과 하나이기에 소유와 비대해진 물적 욕망만 걷어낸다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진실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생태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미래의 문이 닫힌다면, 안일한 대응으로 기후 위기가 심각한 환경 파괴로 이어진다면 우리의 모든 지식이, 제 아무리 풍족하고 체계적으로 구축한 세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많은 하지 않음, 포기를 발명(190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날개의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라는 저자 소개처럼 정혜윤 작가는 입체파의 전략적 모호성을 지향하는 듯 생태, 환경의 이야기들을 자신의 독서 경험과 가치 지향의 색에 버물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매력적인 의미 관계망으로 구축해 입체적으로 펼쳐 놓았다.

<삶의 발명>은 단순한 에세이 형식의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입체적인 삶의 성찰과 실천을 촉구하는, 다면적인 형태의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체는 모두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언젠가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다(9쪽)고 말한다.

저마다의 계획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2025년 새해,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를 꿈꾸고 있는가? 2025년,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가?

삶의 발명 -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정혜윤 (지은이),
위고, 2023


#삶의발명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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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읽고 쓰는 사람과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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