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2월 16일 한겨레가 보도한 '백골단' 특집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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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어서면서 시위 현장에 하얀색 헬멧을 쓰고 청바지와 청재(카바) 가죽장갑, 짧은 곤봉과 소형 방패를 든 경찰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사복체포조'로 집회와 시위, 농성 현장에서 주동자를 체포하거나 시위대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들은 시위대를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은 물론이고 진압봉 대신 쇠파이프까지 휘두르며 강경 진압과 체포에 앞장섰습니다. 시위대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복체포조를 가리켜 '백골단'이라고 불렀습니다.
1991년 백골단은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를 철근이 들어간 죽도와 쇠파이프로 때렸고, 쓰러진 그를 길거리에 내버려 두고 철수해 숨지게 했습니다. 또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빈소에 쳐들어가 시신을 탈취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들과 관련된 사망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강한 해체요구가 있었을만큼 백골단은 악명을 떨쳤습니다.
1952년 9월 27일 <조선일보>에는 "그 이름도 발칙한 발취(췌) 개헌안이 상정됐을 때 부산시내 여기저기에 '땃벌떼'니 '백골단'이니 '민중자결단'이니 하는 그 이름도 징그러운 단체에서 무수한 벽보를 내붙였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실 백골단의 진짜 시작은 이승만 정권 때였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정치깡패인 백골단을 동원해 내각책임제 개헌을 반대하는 관제데모를 일으켰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비상계엄까지 선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과거 정권의 파수꾼으로 폭력을 휘둘렀던 '백골단'을 조직한 지지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내란을 넘어 다른 것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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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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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지키겠다며 '백골단'까지 조직한 지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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