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특정 출신이 군 요직을 독점하면 그 자체로 폭력이다. 곱씹어 보면 무리한 말이 아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최근 9년간(2015~2023년) 육·해공·해병대 장성 계급별 진급 현황'에 따르면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장성 진출률은 78.4%에 달했다. 반면 비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21.6%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장군 714명 중 비(非)사관학교 출신은 21.6%(154명)에 불과하고, 여군은 1.9%(14명)밖에 안 된다.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한 310명 중 사관학교 출신은 83.2%(258명), 비사관은 16.8%(52명)이었다. 소장에서 중장으로 갈 때 간격은 더 벌어진다. 123명 중 사관학교 출신이 106명(86.2%), 비사관 출신은 17명(13.8%)이다. 여군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극소수다. 같은 기간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한 310명 중 여군은 단 2명(0.6%)뿐이고, 중장·대장까지 도달한 여군은 전무하다.
이렇듯 군이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특정 출신이 독식하고, 모든 기회를 가져가는 구조가야말로 '고질적 폭력'이라 부를 만하다. 12.3 계엄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특정 출신들이 요직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환경 덕분에, 소수의 은밀한 모의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특정 파벌이 군 전체를 좌우할 수 있을 때 어떤 비극적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시사한다. 더 이상 우리 군에서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이러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 구조적 토양을 없앨 제도 장치가 시급하다.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미군은 왜 쿠데타 걱정이 비교적 적을까. 이는 무엇보다 한 집단이 파벌을 만들거나, 특정 출신이 일방적으로 조직 장악을 하기 어렵게 구조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보란 듯이 '사관학교 중심'이라는 오래된 틀이 제도 곳곳에 박혀 있는 한국군과는 다르다. 능력을 검증받는다는 명분 아래, 사실은 사관학교 출신 위주로 '윗길'이 열리는 실태가 계속된다. 능력보다 출신 성분이 앞서는 '진급 공식'이 군 내부에서 대놓고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남성 군인보다 여군의 진급길은 훨씬 더 험난하다. 이는 몇몇 여군 개인의 불이익을 넘어, 군이라는 조직 전체가 다양성과 발전 가능성을 포기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관학교 출신과 남군에 집중된 보상 체계가 왜 폭력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 출신이나 성별을 끊임없이 배제하는 구조는 조직 내에 보이지 않는 분노와 적대를 만든다. 이는 결국 전군의 전투력 약화로 이어진다. 거기에 이번의 12.3 계엄사태 같은 극단적 결과마저 가능케 한다. 국민은 이미 그 위험성을 충분히 목격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미군은 인사권을 포함한 군정(軍政)의 핵심 권한을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쥐고 있다. 국방부 장관과 부장관이 민간인이며 육·해·공 각 군도 민간인 장관과 부장관을 두어 군사 작전은 해당 군 참모총장이 담당하되, 조직 운영과 인사권을 비롯한 최종 의사결정은 민간인이 내린다. 파벌이나 학벌, 성별에 얽힌 이해관계가 개입할 틈을 최소화 해 특정 출신이 모든 요직을 독점하기 어려운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두 번 다시 12.3 내란사태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이 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각 군 참모총장이 군사 작전 계획·실행, 군사력 유지와 준비 상태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인사와 행정 결심은 각 군의 민간인 관료가 책임지는 식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관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길이 막히는 진급체계가 조금이나마 제도적으로 제어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군 내부의 체질 개선을 먼저 촉구해야 한다. 특정 출신의 독점을 가능케 하는 진급 구조부터 과감히 수술하고, 민간인 통제 장치를 명확히 하여 모든 비사관학교 출신 군인의 역량이 온전히 발휘될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언제 또다시 군 내부에서 '은밀한 모의'가 불거질지 모른다. 이제라도 기득권 구조를 부수고, 인사권을 포함한 군정 권한을 특정 출신이 독점하지 못하는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안전하고 올바른 우리 군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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