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을 든 사람들 눕혀서 들어 올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현국
이어서 마을 사람이 모치 찹쌀떡, 쌀, 된장, 둥굴레 뿌리가 놓인 쟁반을 들고 방에 들어오자 마을 사람 네 명이 각각 좌우에 서서 쟁반 든 사람을 뒤에서 양팔로 들어올렸습니다.
오코나이를 여는 방 안 불상 좌우는 모치바나 꽃떡으로 꾸몄습니다. 대나무를 길게 쪼개서 가지를 늘어뜨리고 마름모로 자른 모치 찹쌀떡, 다시마, 밀감, 곶감을 모아서 꽂았습니다. 대나무 가지 하나에 모치 찹쌀떡을 다섯 개 정도 꽂았습니다.
모치바나 꽃 떡 옆에서는 둥글게 만든 모치 찹쌀떡을 열 십 자로 나무에 고정하여 거꾸로 매달아 두었습니다. 이 모치 찹쌀떡도 좌우로 두 개를 만들어서 장식해 놓았습니다.

▲ '창코'라고 하여 매달아 꾸며 놓은 모치 찹쌀떡을 맞대거나 비비기도 했습니다.
박현국
버드나무 가지를 방바닥에 두드리던 '라이즈'가 끝난 뒤 이 두 모치 찹쌀떡을 두 사람이 들고 서로 비비는 행동들 보였습니다. 이것을 '창코'라고 불렀습니다. 암 모치 찰떡과 수 모치 찰떡을 비비며 생산을 기원하는 행위입니다.
불상 앞에서 기원하는 의식이나 여러 행동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제물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모치바나 '꽃떡'을 모두 모아서 종이에 싸고, 제물로 사용되었던 모치 찹쌀떡을 모두 40등분해서 종이에 쌌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을 두드리던 버드나무 가지에는 동명사라고 쓰인 부적을 접어서 가지에 묶었습니다.

▲ 모치 찹쌀떡, 다시마, 밀감, 곶감을 꽂아서 만든 ‘꽃떡’입니다. 오코나이 축제가 끝나고 모두 흰종이에 싸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박현국
이렇게 마련된 모치바나 '꽃떡'과 부적을 묶은 버드나무 가지를 축제 참가자를 비롯하여 마을 각 집에 하나씩 나누어 줍니다. 이것으로 오코나이 축제는 모두 마쳤습니다. 한때 정월에서 3월까지 시가현 비와코 호수 동쪽에서 열리는 축제는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제 시가현에서 오코나이 축제를 여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코나이 축제는 모치바나 '꽃떡'으로 꾸미고, 스님이 부처에게 복을 기원하고 경전을 외우고, 여러 가지 주술적 행위를 하면서 복을 빌었습니다. 소마나카 마을 사람 가운데 38가구가 참가하여 열었습니다. 원래 남자들만 참가했지만 이제 고령화와 소자화들로 여자들도 참가합니다.
모치 찹쌀떡은 일본 축제나 잔치의 필수품입니다. 찰진 찰떡이 왜 제물로 사용되는지 확실한 정답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코나이 축제에서 꽃 찰떡은 남여 결합을 상징하며 풍요와 자손번영을 상징했습니다.

▲ 모찌찰떡을 수떡과 암떡으로 나누어서 잘랐습니다. '창코'를 마친뒤 모치 찰떡을 암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집집마다 나누어 줍니다.
박현국
참고문헌> 福田アジオ외 편저, 『日本の年中行事事典』, 吉川弘文館、2012.
찾아가는 법> 시가현고난초소마나가(滋賀県甲賀市甲南町杣中) 마을은 JR오사카나 교토역에서 비와코센 전차를 타고 구사츠역(草津駅)까지 간 다음 구사츠 선으로 갈아타고 기부가와(貴生川) 역에서 내려서 갑니다. 역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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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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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떡' 만들어서 풍년과 건강, 자손 번영 기원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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