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세탁수선.
월간 옥이네
이후로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부지런히 일하며 세탁하고 옷을 수선하고 있다. 그 사이 입소문이 나면서 인근 지엘아파트, 계룡리슈빌, 가화현대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단지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옥천군 문화관광과) 등의 공공기관에서도 세탁물 수거·배달 의뢰를 받고 있다고. 현대세탁수선의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김만호씨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찾아온 이들의 옷을 살피며 수선하는 그의 손길은 마냥 경쾌하다.
"다른 것보다 이 일이 제 적성에 잘 맞으니까요. 이 일은 제 마지막 선택지이고 앞으로도 바늘귀에 실 못 꿸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죠."
양복점에서 봉제공장, 다시 손에 잡은 실
김만호씨가 처음 실을 손에 잡은 것은 17세 무렵. 무엇이라도 기술을 배워보라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당시 옥천읍에 있던 양복점에 들어갔다.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출근하면 연탄불부터 갈고 심부름하던 것을 시작으로 몇 개월간 어깨너머로 재단 일을 배웠다.
"힘들긴 했어도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잘 재단해서 마네킹에 딱 맞게 옷을 완성하고 나면 좋았어요. 적성에 맞는다고 느꼈지."
이때 배운 기술을 씨앗 삼아 그는 서울 봉제공장에 40년간 몸담으며 공장을 운영했다.

▲김만호 씨가 소장하고 있는 '한강실업' 라벨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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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봉구에 '한강실업'이라는 곳이었어요. 티셔츠, 코트, 정장... 옷이라면 안 만드는 것이 없는 섬유제조업체였고 직원은 18명 정도 있었죠. 기성복 샘플이 주어지면 그대로 만드는 식이었고요."
잘 운영되던 공장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개성공단이 생겨나 여러 봉제공장이 그곳에 입주하고, 중국·베트남 등 해외로 공장이 이전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저렴한 인건비로 운영되는 공장과 국내생산 공장이 경쟁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공장이 서서히 어려워져 김만호씨 역시 한강실업 문을 닫게 됐다. 고향인 옥천으로 돌아온 것은 그 이후였다.
"그래도 고향이니까, 타지 생활하며 내내 옥천이 많이 생각이 났었죠. 공장 정리하면서 어떻게 되든 고향에 돌아가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세탁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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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돌아온 옥천에서 유년시절 처음 실을 잡던 순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지금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세탁소에는 과거 그가 한강실업에서 사용하던 기계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지난 생활을 증명하고 추억하게 하는 물건일 테다.
"평생 옷 만드는 일을 했지요. 어릴 적 양복점 일부터 봉제공장 있을 때도, 지금도... 수선이나 오염 세탁, 다림질은 제게 어려울 것 전혀 없는 일이에요. 아내와 자녀들 옷도 이야기만 하면 내가 만들어주고 이제까지 다 키웠으니 후회할 것 없어요. 내 자리가 생겨 참 다행이죠."

▲현대세탁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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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세탁수선 / 주소 옥천읍 금장로 11 운영 평일 아침 7시 30분~저녁 6시 30분(일요일 휴무) / 문의 043-731-4971
월간옥이네 통권 91호(2025년 1월호)
글 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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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 실 못 꿸 때까지, 내 자리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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