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24년 12월 27일 성남시와의 기후동행카드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1월 페이스북 계정에 <
민주당의 예산 농단, 바로 국정 농단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야당의 예산 삭감을 맹비난했다. 특히 그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포 광역자원회수시설(생활폐기물 소각장) 국비예산 삭감이었다. "예산은 국가 운영의 근간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근엄하게 일갈하면서 "국가적 과제인 자원회수시설을 막는 것이 국회의원이 할 짓입니까"라고 더불어민주당과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판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의 이런 과격한 비난이 무색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월 10일 서울행정법원은 마포 주민들이 낸 추가 소각장 입지결정고시 처분취소소송에서
입지결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소각장 건립은 잠정적으로 중단된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정책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절차적 정의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소각장 위치를 결정하는 입지 선정 과정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을 개정 시행령에 따르지 않고 이전 법에 근거한 점을 위법하다고 봤다.
2020년 12월 10일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소각장 입지선정위원회 위원 정원을 '11명 이내'에서 '11명 이상'으로 바꾸었고 위원 구성도 좀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망라하도록 변경했다. 그런데 서울시는 시행령 개정 이후인 12월 15일 입지선정위원회 위원 위촉을 마무리 지었음에도 이전 시행령을 기준으로 위원을 위촉했다.
서울시는 '위원 위촉 및 1차 회의 개최 계획'을 시행령 개정 이전인 12월 4일에 수립했으므로 구법을 적용하는 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재판부는 해당일에 위촉이 내정되었을 뿐 실제로 위원으로 위촉된 게 아니므로 개정 법률적용이 타당하다고 봤다.
또한 소각장 입지가 타당한지 조사하는 전문연구기관 선정에서도 위법이 있었다. 법령에서는 입지선정위원회가 타당성 조사를 수행하는 전문연구기관을 선정하고 의결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타당성 조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이번 추가 소각장 건에서는 입지선정위원회가 해당 기관을 공개경쟁입찰로 선정하기로 의결했을 뿐 직접 기관을 선정하고 의결하는 절차가 없었다.
심지어 실제로 선정을 수행한 서울시는 공개경쟁입찰로 연구기관을 정하지도 않았다. 한 기관만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해 유찰이 되자, 바로 수의계약 절차로 이행해 버린 것이다. 입지선정위원회가 조사연구기관을 결정한다는 법령의 취지와 완전히 멀어져 버린 셈이니, 재판부가 이런 행태까지 합법으로 인정하기는 난망한 일이었다.
이러한 위법 사항들이, 총사업비 규모가 1조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사업이 '입지결정 취소'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판결로 좌초 위기에 봉착한 결정적 이유다.
무리한 사업추진이 불러온 필연적 패소

▲ 2023년 9월 7일 서울시청 정문 인근에서 열린 마포구소각장백지화투쟁본부 회원들이 마포소각장 결정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결과는 서울시의 단순 실수에서 비롯한 해프닝 같은 일인가? 혹은 재판부가 법령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한 탓인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과 주민들의 의견을 모조리 무시한 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달린 결과다.
마포에는 난지도가 있었다. 1978년부터 서울에서 발생한 모든 종류의 쓰레기가 그대로 파묻혔다. 1993년에 이르러 매립지가 폐쇄되고 공원으로 변모했지만 하루 750톤을 태우는 폐기물 소각장이 그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이제는 여기에다 하루 1000톤 규모 초대형 소각장을 추가로 세우려 한다. 이렇게 되면 상암동에서만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의 절반 이상을 태우게 되는 것이다. 난지도에서부터 추가 소각장까지, 한 번 폐기물 처리 장소로 낙점되면 영속적으로 폐기물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이런 현실을 공익을 위해 감내하라고 강변한들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치와 행정 입장에서는 초대형 소각장을 마포에 밀어 넣는 방식이 편리하다. 괜히 다른 곳에 소각장을 지었다가 새로이 대두할 강력한 반대여론이 두렵다. 자원회수시설이나 전처리시설을 구별로 분산해 건설하면 행정이 상대해야 하는 반발과 관리 역량은 곱절로 불어난다. 매입과 보상 절차라는 재정적 난관도 있다. 그러니 이미 소각장이 있는 지역을 추가 소각장 부지로 점찍어 두고 결론을 향해 절차를 밀어붙이게 된다.
투명한 과정과 충분한 소통으로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해 비용효율성과 행정부담 최소화를 우선하면 사고가 난다. 입지선정위원회에 위원 숫자가 적어야, 소각장 인근 거주민이 없어야 서울시 입장을 관철시키기 유리해진다. 타당성 조사를 수행할 연구기관 선정도 속전속결에 치중하다 보니, 입지선정위원회가 의결한 사항도 아닌 수의계약을 월권으로 이행해도 위법이라는 감각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 아닌가?
상암동 외 다른 후보지가 어디였는지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단독 후보지만 최종적으로 내세운 것도, 고시 당시의 계획이었던 일일 500톤 처리 용량이 입지 선정 과정에서 1000톤으로 늘어난 사실도 서울시의 속도전과 행정지상주의 방침에 부합하는 일이었다. 이런 조치들이 추진 속도를 높일 수 있었을는지 몰라도 주민 신뢰는 급전직하할 수밖에 없었고 적법한 절차와는 멀찍이 떨어져 탈법과 편법의 줄타기에 사업을 올려놓고야 말았다. 아무리 소각장의 공익적 목적이 중하다 강조한들 이런 방식이 1975년도 아닌 2025년의 법치와 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다. 취소 판결은 필연이었다.
더 태우기보다 쓰레기 자체를 줄여야

▲ 2022년 8월 17일 당시 서울시는 신규 자원회수시설(생활폐기물 소각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업무시설과 공원을 갖춘 복합문화타운을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한강변 입지 유형의 예.
서울시 제공
1심 재판부가 판단하진 않았지만, 하루 1000톤짜리 초대형 소각장을 서울 어디엔가 추가로 지어야 한다는 전제는 어떤가? 2026년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에 대비해 소각장을 빠르게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익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쓰레기를 더 태우는 데 골몰하는 게 아니라 쓰레기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당면한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립을 소각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행을 위해 2023년 수립한 국가기본계획에서 폐기물 분야의 2030년 목표 감축량은 910만 톤CO₂eq(46.8%)으로 감축률 기준으로 모든 분야 중 가장 높다. 당연히 획기적인 수준의 폐기물 감축 계획이 따라와야 한다.
이에 정부는 2021년 56.7% 수준의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을 2030년 83%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 83%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2년 기준 211만 톤의 폐기물 매립분을 전부 재활용으로 돌리고도 가동하는 소각장 일부까지 폐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내세우고도 환경부의 정책 방침은 초지일관 소각장의 추가 건설이다.
서울시도 자신의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폐기물 원천 감량을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운다. 2018-2022년 평균반입량인 2875톤/일 대비 15% 감축, 33년까지 20%를 감축하겠다고 했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2026년 소각장 반입한도량 목표는 2444톤/일, 2027년은 2415톤/일, 2033년에는 2300톤/일이다.

▲ 서울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 중 생활폐기물 반입량 관리제 추진계획
서울시
그런데 현 서울 시내 4개 소각장(마포·강남·양천·노원)의 총 처리용량은 2850톤/일이다. 즉, 서울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준수한다면 추가 소각장 없이 현존 소각장만으로도 2026년 직매립 금지 이후에도 생활폐기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2033년 반입한도 목표 2300톤/일은 2022년 이미 4개 소각장이 실처리하고 있는 2275톤/일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현 마포 소각장 폐쇄를 염두에 둔다 해도 1000톤/일 규모의 소각장은 지나치게 비대하다. 90% 가동률을 상정해도 500톤/일 규모면 충분하다. 정리하자면 탄소중립 국가기본계획의 차원에서도, 서울시 기본계획의 차원에서도 초대형 소각장을 추가로 지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쓰레기 자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정책 역시 다수 이해관계자의 반대를 돌파해야 한다. 기피시설로 간주되는 분류시설과 전처리시설을 지어야 하고, 지자체들은 생활폐기물 소각장 반입비용을 세게 물어야 하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강화로 기업들은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고, 봉툿값 인상·일회용품 금지·분리배출 강화로 시민들은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기후재난이 불러올 파멸로 향하는 길은 아니며, 잘 설계된 정책으로 뒷받침한다면 성장한 자원순환 산업과 늘어난 일자리가 그 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난관보다도 더욱 확실한 것은 수도권 전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30곳에 달하는 소각장 신설 및 증설 사업이 단 한 군데도 2026년 직매립 금지 시점에 맞출 수 없다는 참담한 현실이다. 모두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와 부적절한 행정절차가 불러온 기약 없는 연기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연 반발하는 주민들을 모조리 지역이기주의로만 매도하며 소각장을 밀어붙이고 결과적으로 직매립 금지는 주구장창 연기하는 해법이 현실적 폐기물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소비생활을 영위하면서 '쓰레기 대란'의 책임을 피할 수만 있다면, 심화된 기후위기로 황폐화된 정주 여건과 만신창이가 된 경제와 분쟁이 일상화된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도 상관없다고 믿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초대형 소각장을 짓는 일이 오세훈 시장의 표현처럼 '국가적 과제', '책임 있는 정치'일 수는 있겠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불러일으킨 정치 위기로 대한민국 체제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또 한편에서는 서울시의 초대형 소각장 건립 사업이 '재정과 행정의 공정하고 현명하며 민주적인 배분'이라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에 도전하고 있다. 마포 주민에게 유감 표명 한마디 없는 오세훈 시장의 항소 결정은 그 반대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선택임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 시민들은 험난함을 감수하면서도 지혜로운 해결책으로 종국에 나아갈 수 있을까. 정치세력이 진정한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격전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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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운운 오세훈 시장의 패배... 법원의 유례없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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