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넝쿨 대웅전 뒷담에 얽히고설킨 담쟁이 넝쿨
허관
대웅전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눈발이 날렸기 때문이다. 눈이 쌓인다고 하여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눈은 핑계였고 나는 속세에 길든 사람이기에 산속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어디서 왔는가?"
대웅전 아래 황하정사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얼른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스님이었다. 나는 스님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나의 주민등록 주소 지는 경기도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충남 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건 서산이건 아무 곳이나 말해도 되는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고 다리야."
내가 침묵하자 스님은 돌아서더니, 쪼그려 앉았다. 잠시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던 스님은 다시 일어났다. 그제야 나는 서산에서 왔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런저런 걸 물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선적이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24년간 공직에 있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고. 그리고 이런저런 작품이 있다고.
노스님도 이곳저곳 떠돌던 이야기를 간간이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노스님의 과거와 나의 과거가 강원도 오대산에서 만났다. 나는 오대산 상원사를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로 등단했고, 노스님은 오대산 암자(중대암인지 서대암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에서 지냈다는 거였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오대산 속에서 한참을 돌아다녔다.
"잘했어. 정말 잘한 선택이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스님은 다시 대웅전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노스님의 발걸음과는 다르게 목소리만은 또렷했다. 뭐를 잘했다는 걸까? 의문이 생겼지만, 이미 등을 보인 채 멀어져가는 노스님이었다.
나는 일주문을 향해 내려오면서 생각해 봤다. 삭막한 겨울 수덕사에 온 걸 잘했다는 걸까. 아니면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작가가 된 걸 말하는 걸까.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 고향으로 내려온 걸 잘했다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그동안의 내 선택 모든 게 잘했다는 걸까. 그러다가 일주문을 나서면서 알았다. 알았다기보다는 그때의 그 혼란스러움 속에 느꼈던 불안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옳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직장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었다. 나는 공직이라는 온실을 떠나 안개가 짙게 낀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더군다나 글쓰기로 먹고 산다니? 나는 타고난 겁쟁이다. 당연히 공직이란 온실에서 야생으로 나온 나에게 공포와 불안이 수시로 밀려왔다. 내가 그 혼돈의 시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건, 글쓰기였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은 불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의 선택에 주변 사람들 열이면 열 모두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제는 나의 선택을 잘했다고 하면서 부러워한다. 이제는 그때의 불안을 보듬어도 되는데도, 나는 여전히 멀리했던 거였다. 과거 공포와 불안도 나의 일부다. 그 공포와 불안이 없었다면 내가 치열하게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의 성공도 없었다.
살다 보면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선택은 항상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내가 글쓰기를 선택하고 안전한 직장을 포기한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도다 선택의 결과가 모두 좋은 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1월 15일 13시) 하늘은 어제보다 맑지만, 대한민국은 짙은 안개가 덮은 것처럼 혼란스럽다. 이 또한 우리가 선택한 결과다. 일부 국민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했다. 더 많은 선택을 받는 사람에게 마땅한 권력을 주기로 말이다. 그리고 또 약속했다. 막강한 권력이 국민을 위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면 권력의 주인인 국민은 다시 권력을 되찾아 올 수 있다고 말이다.

▲수덕사 내 작은 건물의 문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굳게 문이 닫혀있다.
허관
벚꽃도, 백일홍도, 단풍도, 흘러내린 땀을 식힐 시원한 나무 그늘도 없는 삭막한 겨울 수덕사에 왜 갔는지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그리고 내 불안의 실체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 노스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잘했어. 정말 잘한 선택이야."
나는 집에 오자마자 책장에 꽂혀있는 나의 첫 책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집어 들었다. 노스님과 인연을 맺어준 작품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만지지 않았는지 먼지가 소복했다. 책에게 미안했다. 작가의 말을 읽어 보았다.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보고 용서에 대해 고민했다. ..중략.. (하지만)용서는 이해를 전제로, 이해는 앎(知)을 전제로 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전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전부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은 마음속 깊이 용서할 능력이 애당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상당군(한명회)처럼, 영의정(신숙주)처럼, 동봉(김시습)처럼, 임금(세조)처럼. 그들 각자 자신의 삶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다...
15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용서의 완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살아가려면 반드시 마주쳐야 하는 선택의 순간마다 세조를 떠올렸다는 점이다. 세조는 잘 알려진 것처럼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피부병과 정신병에 시달렸다. 살고 싶어 유교 국가에서 부처에게 매달렸다.
끝내는 한양에서 그 머나먼 강원도 오대산 산속까지 행차하여 상원사를 충창했다. 하지만, 원담스님의 말씀처럼 ''바로 네가 너를 찾는 법이 불교라고 하더라'는 걸 깨닫지 못한 세조였다. 오대산 원행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조는 그를 괴롭히던 피부병과 정신병으로 죽었다. 세조가 죽은 지 5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픈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아무튼 선택의 결과를 겨울 추위보다 더 혹독하게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먼 미래 현 대한민국 상황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를 조금만 고심해 본다면 우리의 선택은 좀 더 명확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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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작『남극 펭귄 생포 작전』(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85)은 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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