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속세를 뒤로 하고 찾은 겨울 수덕사

등록 2025.01.16 15:19수정 2025.01.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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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풍경 수덕사 대웅전 마당에 서 있는 나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데, 한겨울이라 삭막하다.
▲수덕사 풍경 수덕사 대웅전 마당에 서 있는 나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데, 한겨울이라 삭막하다. 허관

지난 14일 오후 수덕사에 다녀왔다. 점심 먹다 갑자기 선택한 수덕사 행이었다. 수덕사로 향하는 중에도 갈등했다. 수덕사 진입로에 화려한 벚꽃도, 미술관 입구의 붉은 백일홍도 피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대웅전까지 올라가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는 호사로움도 느낄 수 없는 삭막한 겨울 수덕사로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삼한(三寒)이 끝나고 사미(四微)가 시작되는 회색 하늘은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수덕사로 향하는 운전대를 돌리지 않았다. 왜일까?


배롱나무 수덕사 입구에 서 있는 배롱나무. 100일 이상 계속 꽃을 피워서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누군가가 나무 껍질을 벗겨놓은 것처럼 속살이 다 드러났다.
▲배롱나무 수덕사 입구에 서 있는 배롱나무. 100일 이상 계속 꽃을 피워서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누군가가 나무 껍질을 벗겨놓은 것처럼 속살이 다 드러났다. 허관

수덕사에 도착하자 발가벗고 서 있는 배롱나무가 나를 맨 먼저 맞이했다. 수덕사엔 유난히 배롱나무가 많다. 수덕사 경내에서 수덕(修德 : 덕을 닦음)하지 못한 배롱나무다. 화무실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모든 꽃은 금방 피었다 진다. 하지만 배롱나무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여름 내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매혹적인 자태로 백 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워 온갖 생명체를 유혹했다. 실오라기 한 가닥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여름에 한 행위에 대한 벌을 받는 배롱나무다.

평일인데도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에 탐방객이 열댓 명은 되었다. 대웅전 부처님과 중요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일주문을 향해 급하게 걸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길가 샛길로 발길을 옮겼다. 길가 숲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부도전은 잔설(殘雪)로 뒤덮였다.

수덕사 부도전 대형 사찰임에도 부도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특이한 건 원담스님(수덕사 3대 방장)의 부도가 2개였다. 부도전 입구에 하나가 있고 부도전에도 있다. 왜일까?
▲수덕사 부도전 대형 사찰임에도 부도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특이한 건 원담스님(수덕사 3대 방장)의 부도가 2개였다. 부도전 입구에 하나가 있고 부도전에도 있다. 왜일까? 허관

수덕사는 우리나라 8대 총림(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예산 수덕사, 장성 백양사, 동래 범어사, 대구 동화사, 하동 쌍계사) 중 한 곳으로 큰 사찰이다. 수덕사의 명성과 맞지 않게 부도전은 소박했다. 눈 위에 새 발자국조차 없는 부도전을 보자 문득 부도에 갇힌 고승들이 심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도 사이를 돌아다니며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찍었다.

세상 사람들이 불교를 인식(認識)하고 있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여기 와서 얘기를 듣고 그중에 여러 가지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도 많이 있습니다만 집에 돌아가서 누가 불교를 묻거들랑 어느 절에 가라고 일러주지도 말고 '바로 네가 너를 찾는 법이 불교라고 하더라.' 는 말 전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수덕사 와서 받아가는 선물입니다.<부토탑에 새겨진 원담스님 말씀>

한참 발자국을 남기고, 부도전에서 나오다가 부도전 입구에 우뚝한 원담스님 부도탑에 새겨진 범어를 보고 알았다. 고승이 심심한 게 아니라, 내가 심심했다는 걸 말이다. 원담스님은 수덕사 3대 방장이었다. 경허와 만공의 법맥을 이은 선지식인으로 2008년 열반에 들어 이곳에 모셔졌다. 원담스님의 부도탑에 반배하고 일주문으로 향했다.

'바로 네가 너를 찾는 법이 불교라고 하더라'는 원담스님의 글귀를 마음속에 새긴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부도전을 빠져나와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일주문을 향해 올라갔다. 나는 영락없는 속되고 속된 호모 사피엔스였다.


수덕사 금강문 멀리서도 화려하게 보이는 금강문의 단청. 여름에는 울울창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수덕사 금강문 멀리서도 화려하게 보이는 금강문의 단청. 여름에는 울울창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허관

아무튼, 일주문을 통과하자 풍경은 단색으로 변했다. 봄이면 연두(軟豆)로 물들고, 여름이면 초록(草綠)으로 가을이면 홍(紅)이 탐방객을 마음을 홀리다가도, 겨울엔 모든 걸 벗어버리고 꼭 가려야만 할 곳은 솔잎으로 겨우 가린 경내의 숲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금강문과 사천왕문 그리고 황하정루의 단청은 화사했다. 초상집에서 웃고떠드는 술주정뱅이처럼 눈치코치가 눈곱만큼도 없는 단청의 화려함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전경 하늘이 맑으면 저 멀리까지 보인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전경 하늘이 맑으면 저 멀리까지 보인다 허관

황하정루를 지나 곧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부처님은 정말 욕심이 많다. 유명 사찰의 대웅전의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어린아이도 명당이라는 걸 직감할 정도로 우리나라 풍광이 좋은 곳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자리 잡았다. 수덕사 대웅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아직 대한도 지나지 않은 한겨울인데, 봄을 불러들인 부처다. 대웅전 앞 뜰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나무에서는 벌써 꽃망울이 피어났다.


대웅전 앞 나무 대웅전 앞에 꽃망울이 달린 나무가 있다.
▲대웅전 앞 나무 대웅전 앞에 꽃망울이 달린 나무가 있다. 허관

주변 풍광과는 반대로 수덕사 대웅전은 여전히 멋이 없다. 용마루도 수평이고, 용마루에서 비스듬히 떨어지는 서까래도 일직선이다. 당연히 기와 건축물의 백미인 제비 꼬리처럼 날렵한 추녀마루도 없고, 하늘을 한껏 담을 것처럼 아래로 완만하게 굴곡진 용마루의 부드러운 곡선도 없다. 한때 화려했을 단청은 세월에 지워지고,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늙은 노승처럼 이곳저곳이 갈라졌다. 멋없는 멋이 수덕사 대웅전의 진면목이다.

수덕사 대웅전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허관

덕숭산 아래에 수덕사가 자리 잡은 건 백제 위덕왕 때로 추정한다. 위덕왕은 백제의 제27대 국왕으로 554∼598년까지 재위했다. 1,400년 전부터 덕숭산 자락에서 중생의 무거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수덕사다. 수덕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웅전은 1308년에 건립되었다. 대웅전 건물을 지탱하는 배흘림기둥엔 700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웅전 앞 안내판 안내판에 아직도 국보 제49호라고 적혀있다.
▲대웅전 앞 안내판 안내판에 아직도 국보 제49호라고 적혀있다. 허관
수덕사 대웅전은 아직도 국보 49호. 2021. 11. 19. 문화재보호법(현 문화유산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국보에 붙이는 번호를 삭제했다. 국보나 보물 등 국가유산 지정번호는 순서대로 부여했는데, 일부에서 번호를 가치 서열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서 번호를 삭제했다.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이 아니라 '국보 수덕사 대웅전'이 정식 명칭이다.

석가모니는 2600년 전부터 중생에게 말했다. 모든 중생 각자가 부처라고 말이다. 그래서 원담스님도 '바로 네가 너를 찾는 법이 불교니' 굳이 절에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중생은 석가모니가 말한 걸 못 들은 척하며 계속 부처를 찾아 산속으로 들어와 근심을 털어놓았다. 지겹게 말을 듣지 않는 중생이 짜증 날 법도 한데, 부처는 가슴 속에 근심 가득 담고 산을 오르는 중생을 외면하지 않았다.

부처는 그들의 근심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하소연하다가 근심이 풀리면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 부처님도 해결할 수 없는 근심이 천여 년 동안 얽히고설켜 담쟁이넝쿨이 되었다. 나도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하면서 근심을 살짝 내려놓았다. 내가 내려놓은 근심이 담쟁이넝쿨 한 가닥이 되어 뻗어나가겠지.

담쟁이넝쿨 대웅전 뒷담에 얽히고설킨 담쟁이 넝쿨
▲담쟁이넝쿨 대웅전 뒷담에 얽히고설킨 담쟁이 넝쿨 허관

대웅전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눈발이 날렸기 때문이다. 눈이 쌓인다고 하여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눈은 핑계였고 나는 속세에 길든 사람이기에 산속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어디서 왔는가?"

대웅전 아래 황하정사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얼른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스님이었다. 나는 스님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나의 주민등록 주소 지는 경기도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충남 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건 서산이건 아무 곳이나 말해도 되는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고 다리야."

내가 침묵하자 스님은 돌아서더니, 쪼그려 앉았다. 잠시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던 스님은 다시 일어났다. 그제야 나는 서산에서 왔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런저런 걸 물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선적이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24년간 공직에 있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고. 그리고 이런저런 작품이 있다고.

노스님도 이곳저곳 떠돌던 이야기를 간간이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노스님의 과거와 나의 과거가 강원도 오대산에서 만났다. 나는 오대산 상원사를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로 등단했고, 노스님은 오대산 암자(중대암인지 서대암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에서 지냈다는 거였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오대산 속에서 한참을 돌아다녔다.

"잘했어. 정말 잘한 선택이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스님은 다시 대웅전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노스님의 발걸음과는 다르게 목소리만은 또렷했다. 뭐를 잘했다는 걸까? 의문이 생겼지만, 이미 등을 보인 채 멀어져가는 노스님이었다.

나는 일주문을 향해 내려오면서 생각해 봤다. 삭막한 겨울 수덕사에 온 걸 잘했다는 걸까. 아니면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작가가 된 걸 말하는 걸까.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 고향으로 내려온 걸 잘했다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그동안의 내 선택 모든 게 잘했다는 걸까. 그러다가 일주문을 나서면서 알았다. 알았다기보다는 그때의 그 혼란스러움 속에 느꼈던 불안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옳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직장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었다. 나는 공직이라는 온실을 떠나 안개가 짙게 낀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더군다나 글쓰기로 먹고 산다니? 나는 타고난 겁쟁이다. 당연히 공직이란 온실에서 야생으로 나온 나에게 공포와 불안이 수시로 밀려왔다. 내가 그 혼돈의 시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건, 글쓰기였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은 불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의 선택에 주변 사람들 열이면 열 모두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제는 나의 선택을 잘했다고 하면서 부러워한다. 이제는 그때의 불안을 보듬어도 되는데도, 나는 여전히 멀리했던 거였다. 과거 공포와 불안도 나의 일부다. 그 공포와 불안이 없었다면 내가 치열하게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의 성공도 없었다.

살다 보면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선택은 항상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내가 글쓰기를 선택하고 안전한 직장을 포기한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도다 선택의 결과가 모두 좋은 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1월 15일 13시) 하늘은 어제보다 맑지만, 대한민국은 짙은 안개가 덮은 것처럼 혼란스럽다. 이 또한 우리가 선택한 결과다. 일부 국민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했다. 더 많은 선택을 받는 사람에게 마땅한 권력을 주기로 말이다. 그리고 또 약속했다. 막강한 권력이 국민을 위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면 권력의 주인인 국민은 다시 권력을 되찾아 올 수 있다고 말이다.

수덕사 내 작은 건물의 문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굳게 문이 닫혀있다.
▲수덕사 내 작은 건물의 문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굳게 문이 닫혀있다. 허관

벚꽃도, 백일홍도, 단풍도, 흘러내린 땀을 식힐 시원한 나무 그늘도 없는 삭막한 겨울 수덕사에 왜 갔는지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그리고 내 불안의 실체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 노스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잘했어. 정말 잘한 선택이야."

나는 집에 오자마자 책장에 꽂혀있는 나의 첫 책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집어 들었다. 노스님과 인연을 맺어준 작품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만지지 않았는지 먼지가 소복했다. 책에게 미안했다. 작가의 말을 읽어 보았다.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보고 용서에 대해 고민했다. ..중략.. (하지만)용서는 이해를 전제로, 이해는 앎(知)을 전제로 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전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전부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은 마음속 깊이 용서할 능력이 애당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상당군(한명회)처럼, 영의정(신숙주)처럼, 동봉(김시습)처럼, 임금(세조)처럼. 그들 각자 자신의 삶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다...

15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용서의 완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살아가려면 반드시 마주쳐야 하는 선택의 순간마다 세조를 떠올렸다는 점이다. 세조는 잘 알려진 것처럼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피부병과 정신병에 시달렸다. 살고 싶어 유교 국가에서 부처에게 매달렸다.

끝내는 한양에서 그 머나먼 강원도 오대산 산속까지 행차하여 상원사를 충창했다. 하지만, 원담스님의 말씀처럼 ''바로 네가 너를 찾는 법이 불교라고 하더라'는 걸 깨닫지 못한 세조였다. 오대산 원행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조는 그를 괴롭히던 피부병과 정신병으로 죽었다. 세조가 죽은 지 5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픈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아무튼 선택의 결과를 겨울 추위보다 더 혹독하게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먼 미래 현 대한민국 상황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를 조금만 고심해 본다면 우리의 선택은 좀 더 명확해지겠지.
#수덕사 #대웅전 #문없는문으로들어간사람들 #현대문학 #단종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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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작『남극 펭귄 생포 작전』(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85)은 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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