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힘들게 보냈다. 이제 서서히 2025년의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한 밤중에 비상계엄의 폭탄을 맞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제주항공 참사는 더 큰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말았다. 내가 직접 당한 충격은 아니지만 분하고 억울한 감정으로 힘들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내상을 입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자다가 갑자기 깨거나 뭔지 모를 불안에 시달리고 갑자기 눈물이 나는 증세를 겪고 있다.
아픔을 이기고 견뎌내려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안겨주는 존재가 절실하다. 내게는 그 존재가 외손녀다. 늦은 결혼으로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얻은 아기였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다 그렇겠지만. 현대의학의 힘이 아니었다면 임신도 출산도 힘들만큼 어렵게 건진 아이였으니.
그 아이를 돌봐주면서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맞벌이 부부로 연년생 남매를 키워낸 나의 그것보다 몇 배나 힘들게 느껴졌다. 병원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지켜낸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이미 퇴직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도 내 마음은 늘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가 있다. 수업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공개수업을 하며 분주한 내 모습이 꿈 속에서도 여전하니 어쩌랴! 39년 넘게 섰던 교단이니 내 잠재의식에 뿌리박힌 그 세월을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음이리라.
출생을 장담힐 수 없던 생명체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몇 달을 지낼 때 가슴 졸이던 시간들, 세 살이 넘도록 말이 터지지 않아 또 얼마나 걱정했던가. 육아휴직과 직장맘을 오가며 딸 아이가 감내했던 그 긴 시간이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책 속에 코를 박고 손에는 예쁜 인형 대신 책을 들고 사는 모습이 대견하다. 어쩌면 나 대신 훌륭한 작가의 꿈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중이다(욕심은 금물이지만).
그 아이가 이제 초등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다가도 걱정이 앞선다. 1학년 학생으로 잘 적응할지,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지레 겁부터 먹고 있으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다른 조부모나 부모들도 다 이런 마음일 것이다. 다행히 책을 달고 사니 한 가지 걱정을 덜었지만 곧 만나게 될 선생님에게 부탁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트에 탄 아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물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핀란드 교사들은 단 한 사람의 학생도 배제시키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거나 하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있다. 뒤떨어진 학생을 끌어올리는 것이 고학력의 비결이며 이는 평등한 교육 실시로 보장된다. 잘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 교육은 따로 하지 않는다. 핀란드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상시적으로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 <핀란드 교육의 성공> 중에서
기초·기본학력 정착, 교사의 책무
기초·기본학력 신장은 초·중등교육법 제9조, 동법 시행령 제10조에 명기된 학교와 교사에게 부여된 책무다. 기초․기본학력은 미래핵심역량의 하나인 지적 역량을 키우는 첫 단추이다. 지적 역량은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발휘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며,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다.
공교육이 시작된 이래 기초․기본학력 문제는 끝없이 제기된 난제였다. 국가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크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기초․기본학력 저해 요인은 학습자의 학습부진(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요인을 비롯하여 학교나 교사의 학습결손 요인, 가정의 교육환경(결손, 다문화, 빈곤, 맞벌이 등) 요인도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인지적 요인은 성취도 평가와 같은 국가적 진단을 하지 않고 교사의 관찰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고, 정서적 요인은 학생과 학부모와 심층 면접이나 상담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다. 진단 결과에 따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도방법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기초․기본학력은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을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방법으로 진단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노력형 학습자 또는 천천히 배우는 아이(학습부진아라는 부정적 용어 사용부터 조심해야)에게는 학교와, 부모, 지역사회, 국가가 모두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 중 어느 한 축이라도 빠지면 학습부진의 터널에 빠지게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처방보다 예방 대책이 중요
문제는 진단과 처방의 시기와 방법이다. 기초․기본학력 저해 요인을 파악하는데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의 첫 단추로서 가장 중요한 문자미해득 학생을 초등학교 입학 후에 진단하고 대처하는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현재와 같이 초등학교 생활이 시작된 후에 발견되는 노력형 학습자는 출발부터 또래친구들에 비해 자신감 부족으로 낮은 자존감을 형성한 채 공부 상처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1학년 때 학습부진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아이는 학습무기력증을 유발하는 악순환 속에서 아파한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거나 교우관계까지 나빠지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진단보다는 돌봄이어야 하고, 처방보다는 예방에 힘쓰는 교육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기초․기본학력 정착을 위한 교육적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입학하기 1년 전부터, 최소한 3개월 전에 노력형 학습자를 찾아내고, 흥미와 놀이 중심 프로그램으로 글자를 익히게 하여 1학년 입학 후 자연스럽게 문장 읽기로 연결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현재와 같은 입문기 적응 프로그램만으로는 노력형 학습자에게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입학 후에 진단하여 제공하는 보정프로그램이나 방과 후 특별프로그램은 나머지 공부를 한다는 부정적 자아개념을 심어주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예산 투입 효과도 비효율적이다.
둘째, 예방적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따로 공부하는 방법이 아닌, 수업 중 보조 교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교육선진국 핀란드에서는 노력형 학습자를 돕기 위해 취학 전 학급(6세)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특별학급을 편성하기도 하고, 노력형 학습자가 한 명일 경우라도 주1~3회 전문가인 특별지원교사가 보조 수업을 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16세까지는 시험을 없애 비교와 경쟁 대신 서로 돕는 학습 풍토를 조성하고, 평균 집단보다 부진한 학생을 끌어올리는 데 철저한 결과,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학습자의 성취동기를 자극하여 교육복지국가를 이룩하고 있다.
교사들에게는 부끄러운 일화이지만, 아인슈타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이 아이에게 어떠한 지적 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부모는 전적으로 아들을 신뢰했다. 훗날 그는 "어머니는 나에게 왜 남들처럼 못 하느냐는 꾸지람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떻게 가르치느냐를 아는 것은 교육의 위대한 기술이다."(헨리 F. 아미엘) 필자 의 생각으로는 지도 기술보다 더 좋은 것은 교사의 열정과 격려, 리액션이라고 생각한다.
정년퇴직 하기 전 필자가 맡은 1학년 학급에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학생이 들어왔다. 입학생 면접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과 다문화가정 학생이다. 다행히 난독증은 아니어서 문자해득 시간이 단축될 것 같다.
3월 2일 개학과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입학 전에 그 아이만을 위해 겨울방학 동안 교재를 사고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3월 초부터 실행하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그림과 글자 퍼즐을 맞추며 놀아 중심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하는 중이다.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재미있게, 맛있는 간식을 상품으로 준비해두고 눈을 맞추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왜 가르쳐야 하는지 아는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치면 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제자에 대한 사랑이다. 천천히 배우는 아이를 그대로 진급시키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사랑하라." (조반니 보스코)
2025학년도에 새로 입학할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맡아 고생하실 전국의 모든 선생님께 희망을 건다. 아이들이 귀해진 이 나라의 새싹들이 선생님의 사랑으로 배움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천방지축 나대며 화장실 갈 시간마저도 마음 졸이던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1학기는 정말 고생하실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잘 보듬어 키워주리시라는 것을! 소중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행복한 교실이 되기를 빈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1963년 장성중앙국민학교 1학년 때 담임 '황금만' 선생님! 50명도 넘은 1학년 우리 반을 사랑으로 가르치셨고 특히 예쁜 글씨를 쓰도록 그 많은 친구들 손을 일일이 잡고 필순을 지도해주신 정성, 말없는 저를 한 번도 꾸지람 하지 않고 칭찬으로 격려해주신 그 사랑을 기억한다. 평생학습의 첫 단추를 잘 꿰어주신 은혜를 눈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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