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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쉽게 될 것을..." '간첩 누명 53년' 김양진 무죄 선고

박정희 계엄 시절 간첩으로 조작된 김양진 17일 재심서 무죄

등록 2025.01.19 14:59수정 2025.01.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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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7일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95세의 김양진이 가족들 도움을 받으며 서울형사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13년 동안 그를 감옥에 가둬두었던 간첩 혐의에 대한 재심 판결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날 검찰은 그의 간첩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인정하며 무죄를 구형했고 판사 역시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하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를 받은 김양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쉽게 될 것이었는데."

짧은 시간에 내려진 무죄 판결은 갑자기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서 보낸 13년의 시간과 가장 없이 보낸 가족들의 고통, 출소 후에도 빨간 줄이 그어진 40년의 긴 시간을 되돌려줄 수 없었다.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 13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

조작간첩 피해자 김양진과 그의 부인 김설형 2022년 7월 오도롱 자택에서
▲조작간첩 피해자 김양진과 그의 부인 김설형 2022년 7월 오도롱 자택에서 김순애

제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인, 아이 셋과 평범한 삶을 살아갔던 그의 인생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 것은 박정희가 계엄을 선포한 1972년이었다. 박정희는 남북간 긴장과 경제위기로 인한 "국가 위기"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1972년 10월 17일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포고 1호는 '모든 정치 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의무, 각 대학의 휴교 조치, 직장이탈이나 태업 행위 금지,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 금지, 야간통행금지, 포고령 위반자는 영장 없이 수색, 구속'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72년 계엄포고 제 1호
1972년 계엄포고 제 1호 국가기록원

김양진은 계엄이 선포되기 직전 8월,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에게 끌려갔다. 그를 잡아 가두기 위한 영장도 없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온 부인 김설형은 남편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남편의 행방을 찾아 헤맸다.

"그때 눈오름에 있는 촐밭(목초밭)에 촐하러 갔었어. 일곱 살 된 큰애를 고사리 손이라도 보태려고 데리고 갔어. 촐을 리어카에 싣고 내려올 때 뒤에서 밀게 하려고. 부지런히 걸어가면 1시간 거리였는데 거기 갔다가 와보니 남편이 사라져 버린 거라. 아무도 모르게 잡아갔지. 그때 둘째가 세 살, 막내가 두 살이었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체 있다가 10월에 감옥 갔다고 하고 12월에 면회 오라고 편지가 왔어. 면회 가려고 다 준비했다가 동네에 길 넓히는 일에 동네 사람들 나오라고 해서 일하다가 흙더미에 파묻혀서 나도 죽다 살아났지."


그가 간첩 혐의로 잡혀갔다는 것을 알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무죄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지만 서슬 퍼런 유신 시대에 이웃들의 호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김양진은 1973년 2월 2일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자격 정지 15년 형이 확정되었다.

1953년 한국전쟁에 대한 휴전 협정이 맺어졌지만 남과 북은 상대방 진영에 많은 간첩들을 침투시켰다. 특히 전쟁 직후에는 육로나 해상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많은 간첩들이 들어왔다. 한홍구에 따르면 1950년 대와 1960년 대에 각각 1600여 명의 간첩들이 적발되었는데 휴전선이나 해안선을 통해 남파되는 무장공작원이나 정치공작원들이 대다수였다. 북한은 1970년 조선로동당 제5차 당대회 이후 "남조선 혁명은 남조선 인민의 힘으로", "우리는 남조선 혁명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사실상 대남공작원의 파견을 중단했다.

1951~1999 간첩 검거 현황 출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편(VI)',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에서 재인용
▲1951~1999 간첩 검거 현황 출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편(VI)',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에서 재인용 김순애

1960년대에 비해 그 숫자가 크게 줄었지만 간첩 검거 소식은 툭하면 터져 나왔고 1970년대에 그 수는 681건에 달했다. 검거되는 간첩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는데 남파간첩은 거의 없고 재일동포 유학생이나 사업가 등 일본과 연관 있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2007년 발간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70~1980년대 일본 관련 간첩 사건은 총 319건이다.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재일한국인 정치범을 구원하는 가족· 교포회'가 추산하여 제출한 자료를 통해 1970~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는 16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재일한국인 정치범을 구원하는 가족· 교포회'가 추산하고 있는 피해자 160여 명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김양진은 1930년 제주 오도롱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에는 1931년 출생으로 신고되었다. 다섯 살 즈음 어머니와 형을 따라 배를 타고 아버지와 누나가 있는 일본으로 갔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히로시마에 있었던 그는 어머니와 동생 둘을 잃었다. 그 역시 피폭되어 한동안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야 하는 후유증에 시달렸고 그 후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가 제주도 돌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일본에서 부모를 모두 잃은 후 자신을 양아들로 삼겠다는 제주도 친척을 모시기 위해 제주행을 결심한 것이다. 4.3사건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어 사라진 제주에서 살아남은 후손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친척들 중에 살아남은 이들을 수소문해서 양자로 들이는 일들이 빈번했다.

제주에 오자마자 이웃동네에 사는 열한 살 터울의 김형설과 결혼해서 자식 셋을 낳았고 농사를 지으며 삶을 일구어 가고 있었다. 평범한 농부이자 남편, 아버지, 마을 주민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가 간첩 사건에 연루된 것은 일본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강철순이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해 그의 이름을 꺼냈기 때문이다.

유신 시절 경찰, 중앙정보부, 보안사 등 공안기관들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실적을 올리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실적 경쟁으로 김양진이 잡혀가자 제주 오도롱 집에는 부인 김설형과 걷지 못 하는 양어머니, 그리고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큰 딸과 어린 아들 둘이 남았다.

"남편은 감옥에 있고 남아있는 아이들 보면 눈물만 났지. 시어머니는 아파서 거의 걷지 못 하고 집 안에서도 기어 다녔어. 내가 없으면 아이들이 굶어죽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지. 동네 농사일은 다 도우러 다니고 나중에는 탑동에 있는 유창 산업에 들어갔어. 밤에는 야간작업하고 주말에는 촐밭에 가서 촐 베고. 돈 10원 한 장 도움 받을 데도 없고 죽어라고 살았지. 시어머니도 기저귀를 채워야 했는데 두 살, 세 살 자식 둘과 시어머니까지 세 명 기저귀를 매일 빨아야 했어."

그렇게 김형설은 한눈 팔지 않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아이들을 키웠다. 배고프다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과 삶의 무게가 버거웠지만 내던질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기죽을까봐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큰 딸은 걸스카웃도 시켰고 부녀회장부터 총무 등 마을 일도 가리지 않고 맡아 했다.

"이제는 아들 이름도 확 생각 안 날 때가 있어. 그러다 생각나면 달력 빈 데다 이름 써보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는 손도 마비되어서 글을 쓰지 못 하겠고 젓가락질도 안돼."

이제 무죄 판결이 났다. 김양진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국가는 김양진과 그의 가족들이 받았던 고통의 무게와 시간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 참고자료
김동춘, '간첩 만들기'의 전쟁정치: 지배질서로서 유신체제,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1호, 2012.
조영선,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 그 인권회복을 위한 여정, 역사와 책임 9호, 2016.
한홍구, 국가폭력으로서의 간첩 조작 사건, 대한민국인권근현대사2, 2019.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김양진 #재심 #조작간첩 #유신계엄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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