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1999 간첩 검거 현황 출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편(VI)',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에서 재인용
김순애
1960년대에 비해 그 숫자가 크게 줄었지만 간첩 검거 소식은 툭하면 터져 나왔고 1970년대에 그 수는 681건에 달했다. 검거되는 간첩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는데 남파간첩은 거의 없고 재일동포 유학생이나 사업가 등 일본과 연관 있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2007년 발간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70~1980년대 일본 관련 간첩 사건은 총 319건이다.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재일한국인 정치범을 구원하는 가족· 교포회'가 추산하여 제출한 자료를 통해 1970~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는 16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재일한국인 정치범을 구원하는 가족· 교포회'가 추산하고 있는 피해자 160여 명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김양진은 1930년 제주 오도롱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에는 1931년 출생으로 신고되었다. 다섯 살 즈음 어머니와 형을 따라 배를 타고 아버지와 누나가 있는 일본으로 갔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히로시마에 있었던 그는 어머니와 동생 둘을 잃었다. 그 역시 피폭되어 한동안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야 하는 후유증에 시달렸고 그 후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가 제주도 돌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일본에서 부모를 모두 잃은 후 자신을 양아들로 삼겠다는 제주도 친척을 모시기 위해 제주행을 결심한 것이다. 4.3사건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어 사라진 제주에서 살아남은 후손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친척들 중에 살아남은 이들을 수소문해서 양자로 들이는 일들이 빈번했다.
제주에 오자마자 이웃동네에 사는 열한 살 터울의 김형설과 결혼해서 자식 셋을 낳았고 농사를 지으며 삶을 일구어 가고 있었다. 평범한 농부이자 남편, 아버지, 마을 주민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가 간첩 사건에 연루된 것은 일본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강철순이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해 그의 이름을 꺼냈기 때문이다.
유신 시절 경찰, 중앙정보부, 보안사 등 공안기관들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실적을 올리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실적 경쟁으로 김양진이 잡혀가자 제주 오도롱 집에는 부인 김설형과 걷지 못 하는 양어머니, 그리고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큰 딸과 어린 아들 둘이 남았다.
"남편은 감옥에 있고 남아있는 아이들 보면 눈물만 났지. 시어머니는 아파서 거의 걷지 못 하고 집 안에서도 기어 다녔어. 내가 없으면 아이들이 굶어죽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지. 동네 농사일은 다 도우러 다니고 나중에는 탑동에 있는 유창 산업에 들어갔어. 밤에는 야간작업하고 주말에는 촐밭에 가서 촐 베고. 돈 10원 한 장 도움 받을 데도 없고 죽어라고 살았지. 시어머니도 기저귀를 채워야 했는데 두 살, 세 살 자식 둘과 시어머니까지 세 명 기저귀를 매일 빨아야 했어."
그렇게 김형설은 한눈 팔지 않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아이들을 키웠다. 배고프다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과 삶의 무게가 버거웠지만 내던질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기죽을까봐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큰 딸은 걸스카웃도 시켰고 부녀회장부터 총무 등 마을 일도 가리지 않고 맡아 했다.
"이제는 아들 이름도 확 생각 안 날 때가 있어. 그러다 생각나면 달력 빈 데다 이름 써보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는 손도 마비되어서 글을 쓰지 못 하겠고 젓가락질도 안돼."
이제 무죄 판결이 났다. 김양진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국가는 김양진과 그의 가족들이 받았던 고통의 무게와 시간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 참고자료
김동춘, '간첩 만들기'의 전쟁정치: 지배질서로서 유신체제,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1호, 2012.
조영선,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 그 인권회복을 위한 여정, 역사와 책임 9호, 2016.
한홍구, 국가폭력으로서의 간첩 조작 사건, 대한민국인권근현대사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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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쉽게 될 것을..." '간첩 누명 53년' 김양진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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