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종 일본어 통번역을 합니다. 일본어 관련 학과를 나온 것은 아니고, 예전에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있어서 열심히 익혀 두었더니 그 이후로는 어느 정도 쓰고 말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워낙 안 쓰다 보니 통번역도 그저 아마추어 단계에 불과하지만, 관광객 통역이나 소설 번역 등 일본어 혹은 한국어로 표현되는 것들을 서로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저에게는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통역가를 꿈꾼 적도 있습니다. 일본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언어를 배우면서 그 언어가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단어 하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알아가는 것이 저에게는 큰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통역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 통역(通譯)이란,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각자 다른 문화권에서 발생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말로 바꾸는 것을 통역, 글자로 바꾸는 것을 번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노동법률상담을 할 때 일본어 통역할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단어와 흔히 쓰는 '노동자'는 무엇이 다른지, '금품청산'과 '임금채권'의 시효란 무슨 뜻인지, 같은 해고이지만 '해고예고수당'과 '해고의 정당성'은 어떻게 다르고 그 요건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설명할 때 그러합니다. 이 내용은 전부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지만 같은 법률을 보고 있더라도 누군가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통역처럼, 노동법과 노동자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저는 '임금'보다 '돈'이라는 말을, '진정'이라는 단어보다 '신고'를, '갈음한다'는 법률용어보다 '대신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의 표현은 법률용어와 의미가 다릅니다. 특히 법률용어는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로 해석에 아주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용어 사용에 매우 유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의 표현은 정확한 설명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통역할 때 용어의 정확성보다는 뜻이 통하도록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하나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복합적으로 엮여 있고 그렇게 형성된 언어가 한 개인을 통해 드디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깊은 과정을 완전히 통역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어를 통역하는 것과 노동법을 통역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나마 노동법의 경우 같은 언어 안에서 통역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언어를 쓰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법을 통역할 때는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합니다. 이주노동자 노동법률상담의 경우 제가 우선 한국어로 노동법을 통역하고 통역가님께서 그 내용을 다양한 언어로 이주노동자에게 통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근로기준법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주노동자도 있지만, 자라온 문화가 다른 경우에는 우선 법체계를 이해하는 것부터 막힐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서로의 말을 열심히 통역하여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노동법을 통역하다 보니, 문득 사람들이 좀 더 법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법의 언어를 바꿔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법을 어렵게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법률을 보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으며, 나아가 법률 전문가만의 소유물이라고 여겨지는 법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도 한국어로 되어 있는 노동법을 그저 자기 언어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뜻이 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에세이 속 Q&A]
Q. 근로자와 노동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근로(勤勞)란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에서는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의미하며,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동(勞動)은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뜻입니다. 노동자는 근로자와 달리 법률용어는 아닙니다. 하지만 부지런히 일하지 않아도 우리는 직장, 사회, 가정 그 어디에서나 몸을 움직여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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