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조명한 이순신의 난중일기 32일치

인간적인 면모 강조

등록 2025.01.21 16:46수정 2025.01.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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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난중일기(亂中日記)>는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작성된 진중(陣中) 일기이다. 이순신이 남해의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고 전사한 후 아들과 조카, 부하들이 수습하여 전쟁을 마무리하였다. 그후 이순신의 친필 초고본 <난중일기>는 그 후손들이 가보로 여기고 관리하면서 대대로 충무공 종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순신에 대한 현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난중일기>에 대한 관심도도 이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1600년에 선조의 명으로 여수에 충민사(忠愍祠)가 건립되고, 1603년에 정사준(鄭思竣) 등이 이순신을 추모하기 위해 여수 고소대 안에 타루비(墮漏碑)를 세웠으며, 1604년에 이순신이 선무공신 1등에 책록되고, 1606년에 통영에 사당이 건립되었다. 1614년에 음봉 어라산으로 이순신의 묘소를 이장하였고, 1643년에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658년에 남해에 이순신의 사우가 창건되고, 1663년 통영과 남해의 사당에 '충렬(忠烈)'이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이러한 현창분위기에 부응하여 1693년 경에는 성명 미상의 이순신 후손이 이순신의 사적을 적은 문헌기록을 정리하여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를 초서(草書)로 필사하였다. 이 책은 2007년 필자가 완역하여 국가유산청 현충사에서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초고본 <난중일기>에서 발췌한 <일기초(日記抄)>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여기에 현재 분실되어 없는 초고본의 <을미일기>와 <병신일기>, <무술일기>를 합한 총 32일치의 새로운 일기가 수록되어 있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이 32일치는 1795년 유득공과 윤행임이 간행한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에 실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이순신을 새롭게 알 수 있는 내용이므로, 세간에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일기 중에서 특히 을미년 1월 12일자는 이순신이 꿈에 부친을 만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삼경(三更)에 꿈을 꾸니 선군(先君)께서 와서 분부하기를 "13일에 회(薈)가 혼례하여 장가보내는 것이 알맞지 않는 것 같구나. 비록일 뒤에 보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완전히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 <일기초> 을미년 1월 12일,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역주)

부친에 대한 이야기가 기존의 <난중일기>에는 없는데, 이 일기에 유일하게 실려 있다. 이때 쯤 맏아들 이회(李薈)가 혼사를 치를 예정이었는데, 꿈속에서 만난 부친은 이순신에게 맏아들 이회의 혼례를 4일 뒤로 미루라고 당부하였다. 꿈에서 깬 이순신은 평소 때와 같은 부친의 모습을 생각하여 그리운 마음에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후 1월 21일에 이회의 혼례가 치러졌는데, 이순신이 부친의 당부대로 날짜를 미룬 것으로 보인다. 비록 꿈이지만, 부친의 당부 말씀을 따른 이순신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그후 을미년 2월 9일 이순신은 화룡(畵龍)에 대한 특이한 꿈을 꾸고 일기에 적었다.

꿈을 꾸니 서남방 사이에 붉고 푸른 용이 한쪽에 걸렸는데, 그 형상이 굽어 있었다. 내가 홀로 보다가 이를 가리키며 남들도 보게 했지만, 남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사이에 벽 사이로 들어와 화룡(畵龍)이 되어 있었고, 내가 한참동안 어루만지며 완상(玩賞)하는데 그 빛과 형상의 움직임이 특이하고 웅장하다고 할만 했다. 특이한 상서로움이 많기에 이에 적었다.

- <일기초> 을미년 2월 9일,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역주)

예로부터 용은 길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 일기는 기존의 <난중일기>에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이순신에게만 보인 붉고 푸른 용이 잠깐 사이 벽 사이의 화룡이 되어 있었고, 이를 어루만지며 구경했는데, 그 형색이 특이하고 웅장했다. 이순신은 이 형상이 길조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일기에 적었다. 이순신은 평소에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사례가 많았는데, 이 꿈은 이순신이 위인이 될 것을 예견한 길몽으로 보인다.


을미년 4월 30일에는 도원수 권율이 조정에 허위보고한 사실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 있다. 이는 실제 권율이 전라도에 은닉하고서 장수들의 전공과 죄과를 정확히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헌부의 추고내용과도 일치한다. 이순신은 "그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앉을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라고 말하며 탄식하였다.

을미년 11월 1일에는 원균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나온다.


흉악한 원씨의 답서를 가져와 바치니,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망(欺罔)하는 말들은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천지 사이에는 이 원씨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

기존의 <난중일기>에는 원균에 대해서 '나를 해하려고 하는 인물'로 언급할 뿐 직접 심하게 비판한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흉악한 원씨", "흉패하고 망령된 이"라고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하여 힐난한 내용들이 있다.

그 외 순천부사 박진(朴晉)의 행동, 사천현감 기직남(奇直男)의 보고내용, 이은신(李殷臣)의 부음을 들은 내용 등이 있다. <일기초>의 분량은 총 38쪽이고 325일치의 일기다. 초고본의 미상 글자나 또는 누락된 글자가 여기에는 정확히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이 32일치의 일기가 수록된 <충무공유사>의 정확성에 대해 간혹 의심하는 이도 있으나 날짜와 내용이 기존의 일기와 연계성이 있고, 기존 일기의 누락된 내용을 부분적이나마 보충해주고 있으므로,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일기초>는 실제 초고본 <난중일기>를 초록한 전사본(轉寫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중 32일치 내용이 왜 전서본에서 삭제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당시 이순신의 후손들이 이순신을 현양하는 데 누가될까봐 고의로 뺐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32일치의 일기는 주로 가족사적 이야기, 상관과 동료에 대한 개인감정을 토로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알게 해준다.
#이순신 #난중일기 #새로운일기32일치 #충무공유사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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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자문위원(난중일기). 역사고증전문가.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여해고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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