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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이 "별 필요 없다"던 이것, 역설적으로 왜 필요한지 그가 알려줬다

    [계엄 때문에 가려진 우리의 일상: 4주차] 인문학의 쓸모 알려준 12.3 사태

    등록 2025.01.25 17:50수정 2025.01.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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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는 앞으로 매주 1번 "계엄 때문에 가려진 우리의 일상"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계엄 이후로도 이어지고 있는, 또는 그 전부터 이어져온 수많은 일상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가능한 다양한 필자를 모심으로써,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글을 전하고 싶다면, 익명도 좋으니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개별 필자의 의견이 본 위원회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글쓴이는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정의당원 강규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철학 전공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합니다.[기자말]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 계엄 때문에 가려진 우리의 일상 4주차: 계엄 이후 인문학 연구의 가치
    ▲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 계엄 때문에 가려진 우리의 일상 4주차: 계엄 이후 인문학 연구의 가치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

    2021년 9월,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윤석열씨는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각종 망언을 쏟아냈다.

    육체노동 비하, 타국 비하 등 문제가 될 발언이 많았는데(이미 보도가 많이 나왔다), 그중에는 인문학에 대한 비하도 있었다. 대학생들은 기업에서 원하는 분야, 즉 공학이나 자연과학을 공부해야 하며, 인문학은 그런 걸 공부하며 병행하면 되지 대학 혹은 그 이후 대학원 과정에서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인문학이라는 건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등 발언이었다(2021.9.16일자 <한국경제>보도 참조).

    나는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서, 그의 인문학에 대한 저열한 인식과 그 배후에 있는 개발주의·물질주의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인문학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말에 반박하려면 끝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우리에게 인문학 공부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 한 마디를 더 얹지는 않으려고 한다. 여기서는 범위를 조금 좁혀서, 왜 전문적인 인문학 "연구"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대학원이 교육 기관인 동시에 연구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학원까지 가며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윤석열씨의 말에는 전문적인 인문학 연구가 필요 없다는 함의가 들어가 있다. 왜 그의 말대로, 인문학을 다른 분야를 전공하면서 같이 배우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전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더 절실해진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 모든 부문을 뒤흔드는 초유의 사태를 목격하고도, 즉각적인 효용이 없는 인문학을 왜 연구해야 하는가?


    인문학의 쓸모,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고민으로 우울했던 시기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들이 투입되는 모습.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들이 투입되는 모습. 유성호

    사실 인문학을 왜 연구해야 하냐는 질문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스스로 많이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문학 전공자가 학부 시절 및 대학원 수업 과정을 지나 본격적으로 자기 연구를 시작하면, 점점 매우 한정된 영역의 작은 연구 주제에 매달리게 된다.


    직접적인 효용이 적다고 간주되는 인문학에서, 그 안의 좁은 세부 분과에서, 그 안의 무척 자잘한 주제를 다루다 보면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기여하기는 하는 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더더욱 이런 회의감에 휩싸여 있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를 하고 있기보다는 세상을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연구라는 것 자체를 때려치우고 매일매일 집회에 나가고, 광장의 목소리를 듣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온 시간을 바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의존하고 있던 사회의 기반이 이토록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는데도 안락한 연구실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자리에 앉아 원래 하던 연구를 차분히 해보려 해도, 심란한 마음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 우울하고, 책이 손에 잡히지 않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집회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광장에 나가 있을 때는 무척 좋았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 한 사람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내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아주 작게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 하나 더 집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세상이 확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커다란 물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 그 물줄기는 윤석열씨를 규탄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각기 힘든 투쟁을 이어가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가 닿았다.

    사회의 곳곳에 억압 있었구나... 찾았다, 광장과 연구의 공통점

    화난 시민들의 행진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이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앞에서 윤석열퇴진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응원봉 불빛을 밝히며 명동입구까지 행진하고 있다.
    ▲화난 시민들의 행진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이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앞에서 윤석열퇴진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응원봉 불빛을 밝히며 명동입구까지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이번 계기를 통해 나와 다른 생각·정체성·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내가 당연시하고 살아가던 이 사회의 곳곳이 억압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러한 광장의 모습이 인문학 연구에 대한 의문에 하나의 빛을 비춰주었다. 광장과 연구가 중요한 면에서 닮아 보였다. 광장에 나가 있을 때처럼 인문학 연구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적지만, 수많은 연구가 모이면 삶과 윤리와 가치와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는다.

    광장에서 그동안 몰랐던 여러 가지를 배운 것처럼, 인문학 연구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연구를 위해 깊게 파고들면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내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배우게 된다.

    광장과 연구 사이의 이러한 유비가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광장에서든 학계에서든,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의 기여를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함께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함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필요한가? 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맹자의 "좋은 말씀"을 읽고 "삶의 지혜"를 얻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며 새로운 관점과 이론을 내놓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각 시대는 그 나름대로 문제들을 갖고 있기에, 그 문제들에 대해 새롭게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고, 그러한 고민에 기반을 둔 대답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전공자가 병행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과거의 인문학 이론들을 섭렵하면서도,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수정하고 비판하여 이 시대에 새로 생겨나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할 역량을 갖춘 전문 연구자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전공하는 분야를 예로 들어보겠다. 내 세부 전공은 철학 내에서도 과학철학이라는,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분야다. 과학철학에서는 과학 지식이 정말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가치와 무관한지 묻는 가치중립성 문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구획 문제, 과학적 증거란 무엇이며 증거가 가설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묻는 입증의 문제 등을 다룬다. 이 문제들은 과학철학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지만, 우리 시대에 새롭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AI의 편향성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부도덕한 사용자들의 문제일 뿐인가? '기후위기 부정론'도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하는가?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내놓는 증거는 정말로 부정이 저질러졌음을 입증하는가? 더 넓게는, 과학과 기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의는 무엇인지 물음으로써 기업이 원해서 자연과학과 공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윤석열식의 개발주의·물질주의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는 지금, 이런 주제들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전문적인 과학철학 연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른 인문학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계엄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선동적인 구호를 내뱉고, "백골단"을 자처하는 극우 단체가 버젓이 국회에 등장하는가 하면, 윤석열씨의 극렬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현재 상황에서 인문학 각 분야의 연구자들은 중요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계엄이 어떤 의미였는지, 시민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는지, 그동안 시위 문화는 어떤 점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변화해 갔는지, 각종 문학 및 예술 작품이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재현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했는지 등, 수많은 질문이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각 분야 전공자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연구들이 모여 우리 삶과 사회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갈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좋은 사회란 무엇인지,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맹목적이고 관성적인 삶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계기로 오히려 잘 알게 됐다

    나는 12·3 사태 직후에 인문학 연구자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오히려 이 사태가 인문학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천천히 우리 생각을 바꾸고 있는, 인문학계라는 또 다른 광장에 참여한 하나의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광장에서든 학계라는 광장에서든, 나 혼자 대단한 역할을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에 빠져 있을 필요도 없다. 광장에 나선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반대로 그것이 작은 일이라고 내팽개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의 역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 블로그(https://justice21youthseoul.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인문학 #연구자 #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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