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함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필요한가? 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맹자의 "좋은 말씀"을 읽고 "삶의 지혜"를 얻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며 새로운 관점과 이론을 내놓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각 시대는 그 나름대로 문제들을 갖고 있기에, 그 문제들에 대해 새롭게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고, 그러한 고민에 기반을 둔 대답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전공자가 병행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과거의 인문학 이론들을 섭렵하면서도,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수정하고 비판하여 이 시대에 새로 생겨나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할 역량을 갖춘 전문 연구자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전공하는 분야를 예로 들어보겠다. 내 세부 전공은 철학 내에서도 과학철학이라는,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분야다. 과학철학에서는 과학 지식이 정말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가치와 무관한지 묻는 가치중립성 문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구획 문제, 과학적 증거란 무엇이며 증거가 가설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묻는 입증의 문제 등을 다룬다. 이 문제들은 과학철학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지만, 우리 시대에 새롭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AI의 편향성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부도덕한 사용자들의 문제일 뿐인가? '기후위기 부정론'도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하는가?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내놓는 증거는 정말로 부정이 저질러졌음을 입증하는가? 더 넓게는, 과학과 기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의는 무엇인지 물음으로써 기업이 원해서 자연과학과 공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윤석열식의 개발주의·물질주의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는 지금, 이런 주제들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전문적인 과학철학 연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른 인문학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계엄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선동적인 구호를 내뱉고, "백골단"을 자처하는 극우 단체가 버젓이 국회에 등장하는가 하면, 윤석열씨의 극렬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현재 상황에서 인문학 각 분야의 연구자들은 중요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계엄이 어떤 의미였는지, 시민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는지, 그동안 시위 문화는 어떤 점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변화해 갔는지, 각종 문학 및 예술 작품이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재현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했는지 등, 수많은 질문이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각 분야 전공자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연구들이 모여 우리 삶과 사회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갈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좋은 사회란 무엇인지,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맹목적이고 관성적인 삶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계기로 오히려 잘 알게 됐다
나는 12·3 사태 직후에 인문학 연구자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오히려 이 사태가 인문학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천천히 우리 생각을 바꾸고 있는, 인문학계라는 또 다른 광장에 참여한 하나의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광장에서든 학계라는 광장에서든, 나 혼자 대단한 역할을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에 빠져 있을 필요도 없다. 광장에 나선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반대로 그것이 작은 일이라고 내팽개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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