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어크로스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다정함'이다. 김민섭 작가의 책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일상의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첫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이다>의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사실 김민섭 작가는 꽤 유명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김민섭표 다정함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형편에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는 저자는 일본 여행을 계획했지만,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수술로 갈 수 없게 된다. 충분히 당혹스럽고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그는 티켓을 환불하는 대신 '또 다른 김민섭'에게 티켓을 양도한다. 누군가의 엉뚱하면서도 선한 다정함은 다른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주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니, 이런 사람이 대놓고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니! 책을 펼치기도 전에 마치 내 마음속 '다정포인트'가 상승하는 듯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람일지라도 '다정다감 모드'로 변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의 저자가 말하는 다정함이라는 것이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는 여느 때보다 삭막하고 타인과 연대하기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만,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식구에게 마음의 벽을 느끼기도 한다.
다정함을 높이는 삶
나는 다정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상도 아재이지만 평소 따뜻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화를 내지 않는 편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카톡에 지인의 생일이 뜨면 꼭 축하를 해준다.
그런데 이런 - 사실 남들도 다 하는 - 행동 말고 나도 모르게 다정함을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평'을 쓰는 일이다. 서평이라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고 독후감 정도가 적당 할듯하다. 내용이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책의 내용은 1도 없는, 내 생각과 일상으로 가득한 글을 쓰기도 하니까.
서평, 혹은 독후감을 쓰는 게 다정함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책을 읽은 뒤 글을 쓰는 목적이 작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책의 내용을 더 정확히 기억하고, 작가의 말이 아닌 나의 생각과 언어로 다시 곱씹어보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그런데 책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를 읽으며 책을 읽고 쓰는 글이 다정한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매일 자신의 이름이나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한다고 한다. 혹여나 누가 서평이라도 쓰지는 않았는지 일말의 기대를 품은 채 확인하기 위해.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시대이지만 책정된 금액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들인 시간과 노력, 에너지에 비해 가장 저평가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집필노동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온몸을 불사르며 쓴 글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단돈 1, 2만 원이다.
가격이 1만8000원인 책 1천 부를 팔았을 때 인세가 10% 임을 감안한다면 인세 수입은 180만 원이다. 만약 책을 쓰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면 해당 작가의 연봉은 180만 원이라 할 수 있다. 2025년 올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1달 급여(월 209시간 근무 기준)는 209만 6000원이다. 집필기간 동안 다른 소득이 없다면 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소득은 삶과 직결된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꿋꿋이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쓰기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공을 들여 쓴 글을 누군가가 읽을 때,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평을 남길 때 작가들은 어떤 기분일까.
출간 작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다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까. 1천 시간 이상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만든 책이 나오는 순간은 단순히 하나의 성과물이 나오는 게 아닌, 자기 자식을 세상에 내놓는 심정이 아닐까. 작가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을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의견과 감상은 무엇보다 큰 의미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서평을 남기는 것은 독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책을 읽은 뒤 뭐라도 기록을 남기려 한다. 이렇게 하면 읽을 때 조금이라도 더 집중하게 된다. 글을 씀으로써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떤지, 책을 읽고 난 뒤 주위를 보는 내 시선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유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글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유익한 행위라 할 수 있겠다. 독자는 사고력을 높일 수 있고 작가는 글을 쓸 동력을 얻을 수 있으니. 꼭 전문적인 수준의 서평이 아니라도, 유명한 인플루언서처럼 파급력이 크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이 담긴 글 자체만으로 작가에게는 충분히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쓰는 행위'는 '쓰는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준다.
픽셀
나와 같이 읽고 쓰는 것을 즐기며 K작가들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더 다양한 책을 읽었으면 한다.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이거나 유명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명하지 않는, 이름조차 낯선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누군가의 책이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로 많은 사랑을 받을 때 다른 누군가의 책은 조용히 그 자취를 감춘다.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출판시장 또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책만이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처음 보는 작가, 알지 못했던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다정함이 될 테니.
덧붙여 서점에서 책을 읽을 때는 '간단히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난 뒤 '온전한 새책'의 느낌이 안 나는 책들, 즉 판매가 불가한 책에 대한 부담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라고 한다.
요즘 대형서점은 카페 형태로 되어 있는 곳이 많다. 또한 책을 읽을 공간도 많아 마음만 먹으면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닳고 닳은 책이 팔리지 못해 작가에게 손실이 된다면, 이런 현실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나서 의도치 않게(?) 내가 나름 다정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읽고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내 삶을 통해 누군가는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AI가 작가들을 위협하고 수많은 영상들이 텍스트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K작가들이 지금처럼 꿋꿋이 쓰는 삶을 살기를 응원한다. 더 많은 독자들이 다정함을 갖게 될 때, 앞으로도 더 좋은 글들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 무례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연결에 대하여
김민섭 (지은이),
어크로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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