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멘탈은 없다

직장에서 받은 정신적고통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이들에게

등록 2025.01.29 10:38수정 2025.01.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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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직장인들은 강철멘탈을 탑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현대 직장인들은 강철멘탈을 탑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homajob on Unsplash

유리멘탈. 정신적 고통에 유독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외부충격과 온도변화에 매우 취약한 유리의 특성을 사람의 기질에 빗댄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개복치', '쿠크다스' 등등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유리는 장점이 많다. 빛을 거의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투과시키는 투광성, 빛을 굴절시키는 굴절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경이나 렌즈 등의 광학소재로 쓰임이 있다. 고온의 온도에서는 자유롭게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예술 공예의 소재로도 사랑받는다. 만약 유리에게도 인격이 있다면 유리멘탈의 부정적 쓰임에 상당히 섭섭할지 모르겠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겪는 관계의 어려움

직장인들에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어디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관계'를 말한다. 상사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후배와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이제는 너무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보통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직장근무를 할 때 일 잘하고 사람들에게 싹싹하고 칭찬이 자자했던 동료의 책상에서 '거절하는 방법', '오늘도 수고했어'와 같은 제목의 자기계발서를 발견했을 때 당황스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받는 고통의 원인이 나의 개인적인 취약성에 기인하는 걸까? 내가 유리멘탈이라서 그런 걸까?

유리멘탈은 근로계약의 본질을 숨기는 용어

만약 직장인이고 자신의 유리멘탈을 탓하며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다면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기를 권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3호에서 정의하는 근로에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포함한다. 또한 근로계약은 다른 계약과 달리 인적종속을 특징으로 한다. 인간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존재라면 본질적으로 근로계약은 일정시간 이러한 자유를 제한하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정신적인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자기 구속적 계약이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면 육체에 탈이 날 수 있는 것처럼, 강도 높은 정신노동을 하다 보면 정신에 탈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리멘탈이라는 말은 근로계약의 본질적 요소를 숨기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유리멘탈'에 대한 사회일반적인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2023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회식강요나 업무배제 같은 유형의 직장내괴롭힘이 3개월간 지속되고 1주에 1회 이상 반복되어야 괴롭힘이 성립한다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기준에 따라 단순 계산 시 노동자들은 직장내괴롭힘을 3개월간 13회 이상 버틸 수 있는 강철멘탈을 기본적으로 탑재해야 한다. 유리멘탈은 산업재해 신청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해자에게 발병한 정신질환과 동일하거나 기전이 유사한 병력을 갖고 있었던 경우에는 개인적 소인이 더 크다는 이유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안법상 사업주의 정신적 스트레스 예방의무 구체화 필요


유리멘탈도 다닐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은 근로계약의 내재적 특성에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지 사업장에 있는지 밝혀내는 작업은 그래서 소모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는 노동자의 정신적 스트레스 또는 직무상의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제거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휴게시설 설치 등 형식적 조치의무에 그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 항목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들을 포함시키도록 하여 사업주의 의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신질환이 발생한 경우에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개인적 소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관련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기왕의 병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업장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된 이상 이와 무관하게 정신질환이 독립적으로 발병하였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던 MBC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노동법과 기관의 지침이 사업주의 의무에 초점을 맞춰 정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까운 날에 직장인들이 서점에서 '당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를 더 이상 찾지 않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직장내괴롭힘 #유리멘탈 #정신질환 #산업재해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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