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1.28 11:55수정 2025.01.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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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되면 시골집은 온 식구들로 북적였다. 방은 고작 안방과 작은방 두 개뿐이었지만, 부엌과 연결된 거실까지 빈틈 하나 없이 사람들로 빼곡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모여들어 하루, 이틀, 사흘 동안 명절 연휴 내내 시끌벅적한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 시절, 나는 서른의 시집 못 간 노처녀로, 명절이면 아버지의 잔소리와 오빠들의 궁시렁거림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세 명의 올케언니들까지 훈수를 두곤 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작은 조카들이 올망졸망 모여 세배를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쌈짓돈을 꺼내 손주들에게 용돈을 건네며 "큰 사람 되라"는 말씀을 하시는 모습은 그 자체로 따뜻하고 웃음 짓게 하는 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다. 대학 졸업 전 꽃다발을 받는 취업에 성공한 아들을 데리고 넷째 오빠네 가족이 어제(27일) 엄마를 만나러 광주에 들렀다. 오늘은 산소에 다녀오기 위해 눈길을 헤치며 시골로 길을 나섰다. 어제는 아들을 결혼시키고 새며느리를 맞이한 셋째 오빠네 가족이 산소와 시골집에 들렀다. 둘째 오빠는 주말에 가장 먼저 다녀갔다고 했다.
처음 엄마가 시골집을 비우던, 그해 명절은 여전히 시골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냈다. 하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언제나 설 음식을 준비하고 자식들을 맞이하던 엄마의 손길이 사라진 시골집은 어딘가 허전했다. 주인은 사라졌지만, 엄마의 살림살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며느리들이 그 공간에서 음식을 준비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지만, 모든 것을 손수 준비하던 엄마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 시골 풍경 휑한 시골 풍경
정현정
그해 이후로, 형제들은 점점 시골집으로 내려오지 않게 되었다. 한때는 서울과 경기에서, 다도해 완도의 작은 섬에서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이면 빠짐없이 모였던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어린 조카들도 성인이 되어 각자의 세상 속으로 떠나게 되고, 더 이상 시골집은 모두가 모이는 중심지가 되지 못했다.
지금도 시골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장소가 되었다. 깔깔대며 웃어대던 아이들의 목소리,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던 오빠들의 통 큰 목소리, 자식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그곳에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데려갔지만, 그 시절의 따뜻했던 순간들만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북적이던 방과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마당, 그리고 가족들로 가득 찬 그 공간의 추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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