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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민족일보 창간사'

[광복80주년명문100선 24] <민족일보>는 창간 때부터 시련이 따랐다

등록 2025.02.01 19:01수정 2025.03.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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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일보 창간호
민족일보 창간호 민족일보

4월혁명 공간에서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언론계의 활성화와 혁신계의 등장이다.

이승만 정권은 언론의 숨통을 조이고 혁신계의 설 땅을 빼앗았다. 진보당 조봉암을 사법살인함으로써 혁신·진보세력을 초토화시켰다. 조용수는 진보·혁신계의 대변지로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현신계 인사들이 정당과 사회단체를 발족할 즈음 서상일·윤길중·김달호·이동화·이종률·송지영·이건호·안신규 등 혁신계 및 진보적인 인사들에 의해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하였다. 그 주역은 조용수였다.

조용수는 자유당 때 국회부의장을 지낸 조경구의 조카이며, 대구 출신으로 대륜중학을 거쳐 연세대학 재학 중 6·25전쟁 와중에 중퇴하고 삼촌의 비서관으로 국회에서 근무했다. 51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에서 수학한 다음 재일거류민단 조직부차장으로 활약, 조총련계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재일교포 북송 때는 앞장서서 반대하기도 했다.

4월혁명을 맞아 귀국한 조용수는 사회대중당으로 경북 청송에서 7·29총선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고, 서상일·윤길중·고정훈·김달호·이동화·송지영·이종률·안신규 등 혁신계 및 진보적 인사들과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신문은 4대 사시를 내걸었다.

민족일보는 민족의 진로를 가르키는 신문
민족일보는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민족일보는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민족일보는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

<민족일보>는 창간 때부터 시련이 따랐다.


진보적 논조 때문이었다. 장면 민주당 정부가 인쇄소 계약을 해지시켜 3일간 휴간한 뒤 3월 6일자로 속간할 수 있었다. 신문은 평화통일론을 주장하고, 민주당 정부 의 2대 악법제정과 부정선거 원흉 등의 재판 지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신문은 61년 2월 8일 체결된 한미경제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혁신계의 주장과 논리를 대변했으나 비교적 온건한 편이었다.
 고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고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민족일보>의 독특한 편집과 진보적인 주장으로 창간 초기부터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갓 창간한 신문이 동아·조선과 비슷한 수준의 5만부를 발행하고, 가판에서는 단연 1위를 달렸다.

<민족일보>는 국민의 호평을 받으며 발행하다가 5.16쿠데타로 된서리를 맞았다. 쿠데타 이틀 후인 18일 조용수 사장을 비롯 간부들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지령 92호로 <민족일보>를 폐간시켰다. 쿠데타 세력의 하수인이 된 검찰은 조용수·안신규·송지영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법원의 사형 판결 후 박정희가 3명 중 조용수만 형을 확인하여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집행하였다. 다시 31세였다. <민족일보> 창간사이다.


민족일보 창간에 즈음하여

이미 허다한 신문들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민족일보라 제호하는 또 하나의 일간신문을 세상에 내놓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에 즈음하여 우리는 이 신문이 발행되는 몇 가지 말씀할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흔히 신문은 경세의 목탁이라고 찬양하는 사람이 있으나 필연 이것은 정당한 평가일런지요. 일부분의 신문은 오늘날 그 소유자들과 집필자들에 의하여 부당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자기의 이익으로 생각하는 신문경영자, 집필자가 몇 사람이나 될런지 이것은 하나의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신문을 또 하나 늘릴 생각은 터럭 끝만치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은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국토의 양단, 민족의 사상적 분열, 생활의 도탄, 사회악의 창궐, 이것을 광정(匡正)하는 것이 이 나라 이 백성의 이익이 되는 것이나, 이 점을 망각하거나 고의로 무관심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지려는 또 하나의 언론기관 민족일보는 이와 같은 현실을 자신의 문제로 확신하고 민족의 봉화가 될 것을 자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일보는 결코 어떤 개인, 어떤 정당정파의 이익을 위하여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이 나라와 이 나라 전 인민의 이익과 행복만을 위하여서만 그 활자 하나하나를 참되게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 민족의 비원인 이 나라의 통일문제는 민족일보가 가장 열렬이 정력을 바치려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민족간에 유혈의 전쟁을 고취하고 평화적 통일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가장 준엄한 비판자가 될 것이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성실히 노력하는 민주적 애국자들에 대해서는 가장 열정적인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이 자주적인 독립국가로서 하루속히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절실히 염원하면서 선구적 구실을 담당할 것을 사양치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민족일보는 명칭 그대로 우리 민족의 대변지가 될 것만은 기도함으로 민족의 이익에 배치되는 모든 부정과 부패에 대하여는 가장 가열한 고발자로서의 입장을 고수할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오도하는 모든 비과학적 신비주의적 주장에 대하여는 예리한 감시자가 될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민족일보는 언제나 비정상적인 것과의 타협을 긍정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즉 민족일보는 혁신적이라고 불리워도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와 같은 각오와 취지가 어떠한 열매를 열게 할 수 있을지 그것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 신문이 본질적으로 여러분의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일보는 우리네 살림살이와 마찬가지로 넉넉지 못합니다. 다만 여러분의 지지와 편달을 얻어 앞날의 발전을 기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광복80주년명문80선 #광복80주년 #명문8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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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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