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사이버네틱스'로 인간화한 '전자로봇'

'아카이브전(Human tech for future)' 두손갤러리(구세군 역사박물관)에서 2025년 2월 28일까지

등록 2025.02.08 14:44수정 2025.02.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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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 전자로봇 아카이브전' 열리는 정동 '두손갤러리'(구세군 역사박물관) 입구
'백남준 전자로봇 아카이브전' 열리는 정동 '두손갤러리'(구세군 역사박물관) 입구 김형순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Human tech for future)>이 '두손갤러리'(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130, 구세군 역사박물관)에서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1980~1990년대 제작한 전자 로봇을 촬영한 사진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서울에선 처음이다. 지난해 부산 '도모헌'에서 백남준 아카이브전이 일부 공개됐다. 이 전시는 3월 5일부터 두 달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순회전으로 또 열린다.


이번 전시의 두 공로자

 백남준 추모 10주년에 서울을 방문한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교수, 그는 백남준 기술 어시스턴트였다. 왼쪽은 백남준과 친구였던 홍가이 전 MIT교수
백남준 추모 10주년에 서울을 방문한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교수, 그는 백남준 기술 어시스턴트였다. 왼쪽은 백남준과 친구였던 홍가이 전 MIT교수 김형순

이번 전시는 백남준 기술 전문가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의 공로다. 그는 1980년대부터 미국 '신시네티' 시에 있는 칼 솔웨이 갤러리 내 백남준 공장(Paik's Factory)에서 작업해왔다. 이분은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작품만 아니라 백남준 로봇 제작과 관련된 수백 점의 구상 스케치와 설계 도면까지 꼼꼼히 수집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공로자는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이다. 이 전시기획자는 백남준과 경기고 동문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뉴욕으로 건너가 90년대 대안공간 '스페이스 언타이틀드'를 열었다. 또 미디어 전문공간 '뉴욕 미디어아트센터'를 운영했다. 그런 과정에서 백남준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백남준이 김 관장을 모델로 한 로봇 작품도 있다. 제목이 '김양수군 경기따라지(1997년)'다. 한가운데 백남준이 미국에서 고가 모델료를 들여 만든 누드 영상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백남준의 장난기는 발동한다. "자넨 늘 저런 것만 생각하지"라며 놀려댄다. 김 관장은 이 작품을 10년 후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에 기증했다.

 백남준 I '김양수군 경기따라지' 사진 1997. 가운데 속살이 드러난 누드 영상도 보인다
백남준 I '김양수군 경기따라지' 사진 1997. 가운데 속살이 드러난 누드 영상도 보인다 김형순

김 관장은 199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과 가까워지면서 그의 작업 과정도 꼼꼼히 살폈다. 당시 백남준의 대표 연작 '파우스트(13개)'를 보고 반했다. '환경, 통신, 예술' 등 표제어가 붙은 이 작품에 담긴 예지 넘치는 문명 해석학에 심취했다.


어떻게든 이 작품을 김 관장은 한국에 소개하려 했다. 미국 소장자 '칼 솔웨이'에게 물었더니 100만 달러를 요구해, 그중 4분의 1만 먼저 지급하고 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92년 여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갑전 '비디오때·비디오땅'에 이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로는 놀라운 기획이자 과감한 투자였다.

다행히 이 연작은 '삼성·대우·효성·한솔' 등 대기업 컬렉터에게 팔려나갔다. 이런 그의 범상치 않는 백남준 전시에 대한 기여로 두 분은 이후 더 가까워졌다.


사이버네틱스와 전자아트

 백남준 I '전자로봇 로봇(K-456)'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 이 작품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에 소개, 그때 받은 자료
백남준 I '전자로봇 로봇(K-456)'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 이 작품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에 소개, 그때 받은 자료 Tate Modern

이번 전시가 아카이브전이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는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소개한다. 이건 미국의 '위버(Nobert Wieber, 1894~1964)'가 창안한 것이다. 그는 18세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전설적인 수학자다.

이런 분위기에서 백남준은 1964년 일본 기술자 '아베'와 함께 '전자로봇(K-456)'을 만들었다. 백남준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 의하면 남준은 학창시절부터 물리학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단다.

이 로봇은 백남준의 분신처럼 보인다. 길을 걷다 리모컨을 작동하면 사람의 배설물인 똥처럼 콩이 떨어진다. 또 모차르트 '협주곡' K-456도 연주한다. 존 에프 케네디 연설도 한다. '휴먼테크'의 전형이다.

이렇듯 백남준은 뉴턴 물리학과 다른 위버가 창안한 '사이버네틱스'를 좋아했다.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 물리학자가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하면 약함(software)이 강함(hardware)을 이긴다는 '제3의'의 물리학이다.

 백남준이 만든 사이버네틱스 '다이어그램' 공식
백남준이 만든 사이버네틱스 '다이어그램' 공식 김형순

1965년 11월 뉴욕 '보비노갤러리'에서 백남준 '전자아트전'이 열렸다. 여기 전시도록에 사이버네틱스 '다이어그램(공식)'을 그려넣었다. 예술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게 포인트다. 백남준은 만물의 상호 관계에서 '기계·인간·자연(우주)의 위상을 동급으로 봤다. 기술의 인간화를 넘어 기술의 예술화까지도 추구했다.

위 공식을 보면, 왼쪽 'me'는 예술가, 't=you는 t(TIME 시간)=you(관객), ∞ 위에 3은 세상의 3요소가 무한대로 이어진다고. 또 'dt(델타시간)'의 값과 '사이버세계의 dx(델타 X)의 값'으로 로그인하면 답이 나온다(?). 쉽게 말해 예술가는 관객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관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엔 '위너', '케이지', '맥루언' 등 인명도 등장한다. '케이지(예술의 창의성)'에서 루트 '맥루언(미디어의 확장성)'을 빼고, 다시 '위너(사이버네틱스의 친화성)'로 나누면 기술과 예술은 사람 간 소통을 위해 존재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다.

전쟁 반대와 기술의 인간화

 백남준 I '삼촌과 숙모' 1986. 삼촌과 숙모는 편한 존재, 삼촌은 유머를 숙모는 양손을 펼친다
백남준 I '삼촌과 숙모' 1986. 삼촌과 숙모는 편한 존재, 삼촌은 유머를 숙모는 양손을 펼친다 김형순

백남준 대표작 'TV부처'는 동양사상과 서양기술이 만나야 한다는 주제다. 1963년 첫 전시도 서양 발명품인 'TV'와 동양의 '선' 사상을 결합한 것이다. 백남준은 서양 과학자도 잘 모르는 첨단 과학을 그의 비디오아트에 도입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서양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홍익사상의 합작이 '전자로봇'이다.

이런 백남준 로봇 연작을 만든 동기는 그의 전쟁 트라우마에서 왔다. 그가 7살 때 2차대전이 터졌고, 이후에도 만주사변·태평양전쟁·한국전쟁·베트남전쟁을 겪었다. 백남준은 전쟁 하면 지겨워했다. 그래서 평생 예술로 인류공존과 평화를 추구했다.

80년대 백남준 첫 로봇은 바로 그의 가족과 친족을 소재로 한 <대가족 연작>(1986년)이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터미네이터'와 '스타워즈' 등과는 반대로 갔다. 인류를 전멸하는 듯한 이런 주제를 극히 싫어했다. 그래서 백남준은 우선 부모, 삼촌·숙모, 손자·손녀, 조부·조모 등 부모와 친척을 살갑게 만든 것이다.

 백남준 90년대 미국 신시네티 백남준 공장에서 작업하는 모습(전시장에 전시된 사진)
백남준 90년대 미국 신시네티 백남준 공장에서 작업하는 모습(전시장에 전시된 사진) 김형순

백남준은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칼 솔웨이 갤러리에서 조수들과 함께 전자 로봇 등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대부분 그 당시 작품이다. 작업 현장과 공정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이번 전시가 소중하다.

의인화된 그의 로봇은 10년 이상 이어졌다. 백남준식 전자 '인물화'다. 그 주인공에는 국경이 없다. 허균, 장영실, 선덕여왕, 정약용, 보이스, 무어먼, 케이지, 칭기즈칸, 고흐, 다빈치, 갈릴레오, 콜럼버스, 다윈, 모차르트(아래 슬라이드) 등 끝이 없다.

백남준은 여기서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강조했다.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이에 대항하는 기술로서, 기계와 야합하지 않는 기술로서의 전자 예술을 천명했다.그렇지 않으면 기술이 '자연정복론'이나 '기계지상주의'의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봤다.

1989년 절정기, 프랑스 혁명가 제작

 백남준 I 프랑스혁명 200주년 전자 로봇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왼쪽)와 '장 자크 루소' 1989
백남준 I 프랑스혁명 200주년 전자 로봇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왼쪽)와 '장 자크 루소' 1989 김형순

이런 가운데 1989년 백남준은 로봇 전성기를 맞는다. 마침 그해가 프랑스혁명 200주년이었다. 당시 '미테랑' 정부는 이 경사를 위해 날로 명성이 높아가는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이 전시는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뒤에는 '뒤피(Dufy)' 회화(제목: 전기요정)과 그 앞에는 8명의 프랑스 혁명가(제목: 전자요정)를 선보였다.

혁명가 이름마다 부제가 붙었다. '장-폴 마라'는 <암살>, '루소'는 <노자 자연>, '구주'는 <프랑스 여성>, '당통'은 <웅변>, '디드로'는 <여씨춘추(백과사전)>, '볼테르'는 <이성과 자유>, '다비드'는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다.

8명 혁명가에 대한 백남준의 한 줄 단평이다. '마라'는 온건파에 암살당했고, '루소'는 서양의 노자로 봤고, '구주'는 프랑스 자국인조차 모르는 여성 혁명가로 백남준이 발굴했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 흑인 노예 반대, 여성 이혼권 등을 옹호했다.

 백남준 I '진화 혁명 결의(프랑스혁명 200주년)' 전자 로봇(8개) 석판화로 재제작 1989
백남준 I '진화 혁명 결의(프랑스혁명 200주년)' 전자 로봇(8개) 석판화로 재제작 1989 김형순

웅변가 '당통'은 왕당파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디드로'는 백과사전파다. 그러나 백남준은 중국엔 이미 2000년 전에 백과사전 있었다며 서구 문명의 후진성을 꼬집었다. '다비드'가 설파한 '문화는 예술로서만 꽃피울 수 있다'는 주장엔 동의했다.

특히 '로베스피에르' 위에 백남준이 적은 문구가 눈에 띈다. "혁명이라고 폭력이 다 미화될 수 없다". 세계 민주화의 근간이 되는 자랑스러운 사건인 프랑스대혁명 그러나 백남준은 과연 혁명이라고 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묻는다. 한국은 2016년 '촛불혁명'에서 자랑스러운 비폭력성을 증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마라' 로봇에는 중간중간에 한국의 정치인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 조만식' 등 이름이 적혀 있다. 국내 해방공간 속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죽는다' '바보' 같은 문장과 단어가 뒤섞여있다. 당시 한국 정치의 저속함을 비꼰 것이다.

덧붙이는 글 두손 갤러리 소개 https://dusongallery.com/about.html
#백남준 #김양수 #사이버네틱스 #전자로봇 #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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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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