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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섬 사람들의 '영원한 버스기사' 고 조재일 씨

한산도서 태어나 평생 섬살이... 1989년 버스 들여와 30년 가까이 운행한 주민들의 '발'

등록 2025.01.31 12:11수정 2025.01.3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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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호(왼쪽) 씨와 조재환 씨가 지난 21일 통영 한산도를 운행하는 버스 안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박신 기자
조윤호(왼쪽) 씨와 조재환 씨가 지난 21일 통영 한산도를 운행하는 버스 안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박신 기자 경남도민일보

파란 와이셔츠에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맨 두 남성이 각자 몰고 온 마을버스를 능숙하게 차고지에 댔다. 하얀 장갑을 낀 채 내린 이들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악수를 청했다. 조재환(69)·조윤호(52) 씨를 만난 곳은 통영시 한산면사무소 인근 버스 차고지.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조재일(향년 82세) 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고인은 재환 씨 형이자 윤호 씨 아버지다. 한산도에 버스를 처음 들여온 사람이기도 하다. 고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개척자가 돼야 했던 소년 = 조재일 씨는 1942년 한산도 야소마을에서 태어났다. 한산도 지명 대다수가 그렇듯 야소마을도 이순신 장군과 연관이 깊다. 임진왜란 당시 각종 병장기를 생산하던 대장간이 있던 곳으로, 한자 야(冶)는 풀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조 씨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머구리(잠수를 전문으로 하는 남성)였던 아버지를 따라 물질도 곧잘 했다. 손재주가 그의 생계가 된 것은 아버지 별세 직후다. 조 씨 아버지는 물질을 해서 해산물을 부산에 내다 팔았다. 그날도 작업을 마치고 부산으로 이동 중이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해산물을 실은 배는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집혔다. 조 씨는 이 사고로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버지 나이 40대 초반, 조 씨는 고작 17살이었다.

평범했던 조 씨네 가족은 아버지 죽음으로 풍비박산 났다. 얼마 없던 재산은 보상금 명목으로 아버지 배에 탔던 이들 가족에게 돌아갔다. 어머니는 당장 삼남매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맏이 조 씨도 생계에 뛰어들었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목수부터 양봉업, 보일러 수리업, 양계업, 블록 시멘트 생산업까지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조 씨는 한산도에 없는 직종을 골랐다. 조 씨 동생 재환 씨는 14살 위 형의 듬직한 파트너였다.

"형님이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섬이다 보니까 육지보다 불편하기도 하고 없는 게 많거든요. 형님은 항상 그런 것들을 먼저 발견했어요. 거기다가 워낙 손재주가 좋으니까 자기가 직접 하려고 했지요."

여러 사업을 전전한 끝에 발붙인 일은 버스 사업이다. 1989년 당시 45인승 버스 한 대를 섬으로 가져왔다. 그해 10월 행정에서 허가가 떨어지기 전까지 무상으로 운행했다.


"형님은 항상 섬에 무언가를 남기려고 했어요. 섬에 버스도 차도 없다 보니 다들 불편해했거든요. 육지 문명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2012년 8월 16일 방영된 KBS다큐멘터리 '모자이크-나는 섬마을 버스운전사' 한 장면. 고 조재일(왼쪽) 씨와 동생 재환 씨가 밥을 먹고 있다. /KBS다큐 유튜브 갈무리
2012년 8월 16일 방영된 KBS다큐멘터리 '모자이크-나는 섬마을 버스운전사' 한 장면. 고 조재일(왼쪽) 씨와 동생 재환 씨가 밥을 먹고 있다. /KBS다큐 유튜브 갈무리 KBS

우당탕 섬마을 버스 기사 = 어렵사리 들여왔지만 버스가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비만 오면 땅이 파이기 일쑤였고, 수시로 고장 나도 변변찮은 정비소가 없었다. 조 씨와 동생 재환 씨는 버스 기사이자 정비사였다.


재환 씨는 '무식하게 일한 시절'이라며 입을 뗐다.

"섬에 버스가 우리밖에 없으니까 사람이 좀 많이 탑니까. 거기다가 도로는 다 비포장이지, 차가 남아나질 않았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타이어가 터졌어요. 오르막길 가다가 차가 멈추면 승객들이 내려서 밀기도 했지요."

버스가 들어오면서 섬 주민 삶은 보다 윤택해졌다. 1시간 30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를 30분 만에 가게 됐고, 등하교 시간대에는 버스가 학생들로 가득 찼다. 명절마다 섬으로 돌아오는 이들은 '섬에도 버스가 있네'라며 신기해했다.

"겨울에는 해가 일찍 지잖아요. 한번은 설날 저녁에 버스 전조등이 나갔어요. 섬에 가로등이 있나요 뭐가 있나요.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가야지요. 앞자리 승객한테 라이트를 쥐여주고 버스 앞문을 열 테니 좀 비춰달라고 했어요.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 시절에는 별수 없었지요."

도로 환경이 열악했던 탓에 사고도 잦았다. 아들 윤호 씨는 아버지가 몰던 버스가 갯벌에 빠졌던 때를 떠올렸다.

"제가 군대 휴가 나왔을 때였는데, 버스가 물에 빠졌다는 겁니다. 놀라서 보니까 버스가 갯벌에 빠져 있더라고요. 다행히 빈 버스여서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지금이야 가드레일도 있고 도로도 잘 포장돼 있지만 3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2012년 8월 16일 방영된 KBS다큐멘터리 '모자이크-나는 섬마을 버스운전사' 한 장면. 고 조재일(맨 왼쪽) 씨 가족이 함께한 모습. /KBS다큐 유튜브 갈무리
2012년 8월 16일 방영된 KBS다큐멘터리 '모자이크-나는 섬마을 버스운전사' 한 장면. 고 조재일(맨 왼쪽) 씨 가족이 함께한 모습. /KBS다큐 유튜브 갈무리 KBS

마지막 섬 나들이 = 조 씨가 30년 가까이 이어오던 버스 사업은 섬 주민이 줄면서 수익도 악화했다. 결국 2010년 무렵 운송업체에 사업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운전대를 놓은 뒤로는 조 씨 건강도 나날이 나빠졌다. 2018년에는 위암 수술까지 받았다.

이후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지난해 4월 섬을 떠나 통영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요양병원 생활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조 씨는 불현듯 아들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한산도로 돌아온 그는 여느 때처럼 아내 김말이(74) 씨와 아들 윤호 씨 곁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상태도 호전되는 듯했다.

오랜만에 되찾은 일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조 씨는 섬에 들어온 바로 다음 날인 7월 6일 점심 무렵 쓰러졌다. 고령인 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으로 신속하게 옮겨야 했다. 하지만 육지에서 구급대가 섬으로 들어오는 데만 20분, 다시 육지로 나가는 데 또 20분, 병원 도착까지 20분, 모두 1시간은 걸렸다. 조 씨가 그 시간을 버티기 쉽지 않아 보였다. 아들 윤호 씨는 섬에 있는 통영소방서 소방정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소방정대는 곧바로 한산도에 정박한 소방정을 이용해 조 씨를 육지 병원으로 옮겼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조 씨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가족들은 임종을 준비했다. 조 씨가 힘겹게 버티는 사이 그의 딸과 아들이 병원에 도착했다. 경기도에 살던 딸을 끝으로 모든 가족이 병실에 모였다. 조 씨는 입원 다음 날 오전 눈을 감았다.

 2012년 8월 16일 방영된 KBS다큐멘터리 '모자이크-나는 섬마을 버스운전사' 한 장면 /KBS다큐 유튜브 갈무리
2012년 8월 16일 방영된 KBS다큐멘터리 '모자이크-나는 섬마을 버스운전사' 한 장면 /KBS다큐 유튜브 갈무리 KBS

"아버지도 얼마 못 살 거라는 것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죽기 전에 섬에 와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잠깐이지만 섬에 오셔서는 상태가 정말 좋았거든요."

윤호 씨는 소방정대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아마 육지에서 구급대가 왔다면 가족들이 임종하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겁니다. 소방정대 대원들 덕분에 가족들이 아버지 가시는 길을 지킬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조 씨는 떠났지만 그가 들여온 마을버스는 오늘도 부지런히 사람들을 태워 나른다. 동생 재환 씨와 아들 윤호 씨가 그의 빈자리를 채웠다. 통영 한산도 공영버스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민들 발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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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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