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의 문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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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간 곳은 포스코가 펼쳐 나갈 우리나라의 미래를 표현한 관이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영상이 송출되었는데, 반짝거리는 철로 만들어진 높은 빌딩숲과 그 속에서 편리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자동화된 모든 환경이 그들을 도왔다. 심지어 캐리어 두 개가 그 가족을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슬쩍 아이들의 표정을 봤다. 오락기 화면을 처음 본 코흘리개 아이들처럼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영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줄기차게 희망찬 음악과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저런 사회가 인류에게 금세 도래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값진 미래일 것이라는 메시지가 쭉쭉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날 밤 일매듭 시간에 나의 발언 차례가 와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마냥 편하게 말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실제 말은 조금 더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까 포스코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영상 기억하나요? 철의 미래라는 주제였죠. 참 편리하고 멋있는 세상이 펼쳐지는 모습이었어요. 그렇죠? 그런데 선생님은 어떤 측면에서는 꽤나 염려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 학교 현장에도 AI가 도입되네 마네 말들이 많죠? 많은 과제를 AI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벌써 왔어요. 그런데 과연 그게 좋은 세상일까 의문스러워요. 적어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처럼 어느 정도 커버린 사람에게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특히, 어린 아이가 세상을 처음 만날 때는 최대한 원시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세상을 물리적으로 경험하고, 감각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이지.
그런데 혹자가 그리는 미래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만 같아요. 영상으로 자연을 접하고, 자동화되고 요약되어 버린 경험만 하게 되면 과연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가 제대로 된 두뇌 발달이 가능할까요? 가장 좋은 교육 도구인 자연과 수작업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영상 교구와 최첨단 장난감을 개발하는 모순이 발생할 거예요. AI교과서 도입 과정을 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많은 아이들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학생도 있었고, 확연히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포스코가 보여준 미래 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비판적인 생각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왕산을 걸으며 얻은 것
점심은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에서 해결했다. 전국 5대 전통시장에 들어가는 죽도시장의 광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다채로운 수산물까지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께서 먹성 좋은 고등학생의 위장을 서비스 그릇으로 충분히 채워주셨다.

▲ "우와. 신기하다"를 연발하며 시장 구경 중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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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칼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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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한 시간 이십 여분 지방도를 달리면 주왕산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위치 추적 앱으로 두 차의 위치를 공유하였는데, 다른 차가 한참을 어딘가에 머무르는 듯하여 전화를 했더니 청송 사과를 사러 잠시 멈췄다고 했다. 길도 서로 다르게 선택한 고로 우여곡절 끝에 오후 세시 반이 되어서야 대전사 앞에서 일행이 합쳐졌다.
주왕산은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협곡에 비해 등산로가 매우 편하다. 접근성이 좋다고 하기에는 산의 위치 자체가 멀어서 애매하긴 하지만 평지를 산책하는 느낌으로 두 시간 정도만 걸으면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코스도 다양해서 난이도 조절도 가능하다.
당연히 뒤 따라오는 사람을 봐가면서 걸어갈 줄 알고 딱히 반환점을 일러주지 않았더니 선두에 선 학생이 너무 멀리 가버렸다. 국립공원은 길만 벗어나지 않으면 통신두절이 되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다. 전화를 받은 학생은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냐며 끊더니 30분이 지나서야 얼굴을 보였다.

▲ 대전사와 주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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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편한 주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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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매듭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멀리 가버린 이유에 대해 밝혔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부터 제가 뭘 해야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고, 대학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좀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아요. 특히 걸으면서 2024년도에 제 모습이 다 스쳐 지나가고, 친구들과 행복했던 것, 괴로웠던 것, 다 스쳐 지나가면서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과열됐는데 땅만 보고 걸었어요.
그러다가 폭포가 눈앞에 딱 나타났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맑아지면서 2025년도에는 어떻게 살아야겠다 다짐을 하고, 언니 전화받고 다시 가던 길 돌아서 한참 가니까 선생님이랑 언니들 만난 거예요."
사춘기를 한창 지나고 있는 아이들과 교육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은 이런 희열이 있다. 숲 속에서, 굽이치는 계곡과 파도 앞에서, 잠시 교실과 가정을 떠난 아이들은 누가 굳이 고삐를 끌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만난다. 그 순간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는 것이다.
일매듭 시간에 서로의 모습을 보고 가장 감격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함께 고생한 수석 교사였다. 그분의 발언 중 일부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체험이라는 것, 특히 지식과 결부된 체험은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고의 자산이 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이 교육 여행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는 것과는 굉장히 달라요. 그렇게 힐링 차원으로 놀러 가는 것도 당연히 좋지만, 교육적인 요소를 함께 가지고 가는 여정은 우리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여행이에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모든 친구들에게 이런 혜택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인데, 전체에게 못 한다고 부분도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몇 명에게라도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이런 기회를 만들 거예요. 여러분은 현재 한마디로 꽃봉오리 같은 시기예요. 어떤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모양새로 피어날 수 있어요."
이날 밤의 일매듭은, 씻지도 않고 양치도 안 한 상태에서 최대한 간단히 끝낼 요량이었지만, 다 함께 이야기한 시간만 한 시간을 가득 채웠다. 게다가 네 명은 내 방에 계속 남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과자 다섯 봉지를 비우고 게임 벌칙으로 팔뚝을 서로 신나게 두드린 다음에야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안동으로 갔다가 다시 전주로 운전해서 가야 하는 일정이 남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엔도르핀 같은 무언가가 마음을 뜨겁게 하여 나의 기력을 보충해 주는 것만 같았다.
돌아가는 길은 추풍령에서부터 폭설이 내려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주었다. 윈터타이어로 단단히 무장한 두 대의 차량은 아이들을 싣고 3일 전 출발했던 곳으로 안전하고도 황홀하게 무사히 도착했다.

▲ 도산서원에서 선비와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진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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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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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의 교육 여행, 인솔 교사가 감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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