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학생들과의 교육 여행, 인솔 교사가 감격한 이유

[포항, 청송, 안동 진로 체험 활동기 ②] 자기 발견의 시간을 가진 학생들

등록 2025.02.01 17:39수정 2025.02.03 17:47
0
원고료로 응원
'대안'이라는 표현하에 경쟁과 입시몰입교육을 지양하고, 자치와 상생을 위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존재들과 좌충우돌하며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하고자 합니다.[기자말]
10여 명의 아이들과 교사 둘이 함께 하고 있는 교육 여행이자 진로 체험 활동의 둘째 날 밤, 모든 인원이 한 데 모였다. '일매듭'이라 이름 지은, 하루의 활동과 느낀 바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매일 만나야 하지만 전날엔 겨울 밤바다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는 것으로 갈음했다.

오전에는 포스코(Park1538), 점심 식사 차 죽도시장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청송으로 향하여 주왕산을 세 시간가량 거닐고 난 후였다. 저녁을 먹고 숙소 로비에 도착하니 몸이 기분 좋게 녹아내린다. 피곤할 만도 하지만 이렇게 모이지 않으면 교육 여행의 의미가 반감되니 나 또한 휴식의 유혹을 떨치느라 아이들 몰래 고심했다.

"여러분. 많이 피곤하죠? 어제 우리가 일매듭을 바다 산책으로 대신했기 때문에 오늘은 꼭 모여야 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씻지 말고 지금 바로 모이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그래. 그게 낫겠다. 모일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선생님 방으로 와. 공간 정리 되면 메신저에 공지할게요."

참 대견한 아이들이다. 단 한 명도 토를 달지 않고 당연히 모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방으로 들어가니 침대 두 대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 다스의 사람이 둘러앉아야 하는데 어쩌나. 침대를 방 한가운데에 붙이고 옹색하게나마 공간을 만들었다. 매트에 턱을 괴고, 전라도 말로 뽀도시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동으로 'ㄷ' 자발적으로 휴대전화를 가운데 모은 채 담소를 나누기 직전, 인증샷에 응하는 모습
▲자동으로 'ㄷ' 자발적으로 휴대전화를 가운데 모은 채 담소를 나누기 직전, 인증샷에 응하는 모습 안사을

Park1538, 포스코 역사관과 홍보관


1538은 철의 녹는점이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견학은 홍보관, 역사관, 제철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홈페이지에서 견학 예약이 가능하다. 한 달의 여유를 두고 예약해야 하며 개인 예약은 6인까지 가능하다. 단체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 전화로 문의하니 학교는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제철소 견학은 하지 못했다. 개인으로 예약하면 포스코 측의 안내 차량을 이용해 진입할 수 있고, 학교 단체라면 전세버스에 한해서 직원이 탑승 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교사 개인 차량 두 대로 갔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아쉬워하는 학생들에게는 우리 지역과 가까운 광양제철소로 개인 견학을 가볼 것을 권유했다.


1월 7일 오전 10시, Park1538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역사관 견학을 시작했다. 안내를 맡은 분께서 매우 능숙한 말투로 창립의 역사, 고로(용광로)의 상황 등을 말씀해 주었다. 아이들은 입을 벌어져 있는지도 모른 채 집중했다. 전쟁 후 가난했던 나라에 철강 산업이 시작된 이야기가 참 흥미진진했다.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뒤로 축소된 고로(용광로)의 모형이 보인다.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뒤로 축소된 고로(용광로)의 모형이 보인다. 안사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임원, 엔지니어, 사무직을 비롯한 모든 사원의 얼굴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세계지도 형상을 만들어 놓은 전시물이었다. 사원의 이름을 넣으면 사진의 위치가 빛으로 표시되고 가까이 가서 얼굴을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거대한 생산 현장에서도 개인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보였다.

홍보관은 더욱 볼거리가 화려했다. 크게 나누면 세 개의 상영관이 있는데, '철의 문명'관에서는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여러 개의 영사기가 바닥과 벽면에 영상을 비추었다. 철의 기원, 온도의 표현 등 화려한 영상과 음향이 돋보였다. '철의 현재'관에서는 포항제철 공장의 구조와 공정을, 미니어처 위에 영사기로 빛을 비추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예약 단체명과 함께 환대의 메시지가. 저곳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어준다.
예약 단체명과 함께 환대의 메시지가. 저곳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어준다. 안사을

 철의 문명관
철의 문명관 안사을

마지막으로 간 곳은 포스코가 펼쳐 나갈 우리나라의 미래를 표현한 관이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영상이 송출되었는데, 반짝거리는 철로 만들어진 높은 빌딩숲과 그 속에서 편리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자동화된 모든 환경이 그들을 도왔다. 심지어 캐리어 두 개가 그 가족을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슬쩍 아이들의 표정을 봤다. 오락기 화면을 처음 본 코흘리개 아이들처럼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영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줄기차게 희망찬 음악과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저런 사회가 인류에게 금세 도래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값진 미래일 것이라는 메시지가 쭉쭉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날 밤 일매듭 시간에 나의 발언 차례가 와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마냥 편하게 말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실제 말은 조금 더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까 포스코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영상 기억하나요? 철의 미래라는 주제였죠. 참 편리하고 멋있는 세상이 펼쳐지는 모습이었어요. 그렇죠? 그런데 선생님은 어떤 측면에서는 꽤나 염려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 학교 현장에도 AI가 도입되네 마네 말들이 많죠? 많은 과제를 AI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벌써 왔어요. 그런데 과연 그게 좋은 세상일까 의문스러워요. 적어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처럼 어느 정도 커버린 사람에게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특히, 어린 아이가 세상을 처음 만날 때는 최대한 원시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세상을 물리적으로 경험하고, 감각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이지.

그런데 혹자가 그리는 미래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만 같아요. 영상으로 자연을 접하고, 자동화되고 요약되어 버린 경험만 하게 되면 과연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가 제대로 된 두뇌 발달이 가능할까요? 가장 좋은 교육 도구인 자연과 수작업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영상 교구와 최첨단 장난감을 개발하는 모순이 발생할 거예요. AI교과서 도입 과정을 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많은 아이들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학생도 있었고, 확연히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포스코가 보여준 미래 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비판적인 생각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왕산을 걸으며 얻은 것

점심은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에서 해결했다. 전국 5대 전통시장에 들어가는 죽도시장의 광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다채로운 수산물까지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께서 먹성 좋은 고등학생의 위장을 서비스 그릇으로 충분히 채워주셨다.

 "우와. 신기하다"를 연발하며 시장 구경 중인 아이들
"우와. 신기하다"를 연발하며 시장 구경 중인 아이들 안사을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칼제비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칼제비 안사을

포항에서 한 시간 이십 여분 지방도를 달리면 주왕산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위치 추적 앱으로 두 차의 위치를 공유하였는데, 다른 차가 한참을 어딘가에 머무르는 듯하여 전화를 했더니 청송 사과를 사러 잠시 멈췄다고 했다. 길도 서로 다르게 선택한 고로 우여곡절 끝에 오후 세시 반이 되어서야 대전사 앞에서 일행이 합쳐졌다.

주왕산은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협곡에 비해 등산로가 매우 편하다. 접근성이 좋다고 하기에는 산의 위치 자체가 멀어서 애매하긴 하지만 평지를 산책하는 느낌으로 두 시간 정도만 걸으면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코스도 다양해서 난이도 조절도 가능하다.

당연히 뒤 따라오는 사람을 봐가면서 걸어갈 줄 알고 딱히 반환점을 일러주지 않았더니 선두에 선 학생이 너무 멀리 가버렸다. 국립공원은 길만 벗어나지 않으면 통신두절이 되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다. 전화를 받은 학생은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냐며 끊더니 30분이 지나서야 얼굴을 보였다.
 대전사와 주왕산
대전사와 주왕산 안사을

 걷기 편한 주왕산
걷기 편한 주왕산 안사을

그는 일매듭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멀리 가버린 이유에 대해 밝혔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부터 제가 뭘 해야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고, 대학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좀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아요. 특히 걸으면서 2024년도에 제 모습이 다 스쳐 지나가고, 친구들과 행복했던 것, 괴로웠던 것, 다 스쳐 지나가면서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과열됐는데 땅만 보고 걸었어요.

그러다가 폭포가 눈앞에 딱 나타났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맑아지면서 2025년도에는 어떻게 살아야겠다 다짐을 하고, 언니 전화받고 다시 가던 길 돌아서 한참 가니까 선생님이랑 언니들 만난 거예요."

사춘기를 한창 지나고 있는 아이들과 교육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은 이런 희열이 있다. 숲 속에서, 굽이치는 계곡과 파도 앞에서, 잠시 교실과 가정을 떠난 아이들은 누가 굳이 고삐를 끌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만난다. 그 순간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는 것이다.

일매듭 시간에 서로의 모습을 보고 가장 감격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함께 고생한 수석 교사였다. 그분의 발언 중 일부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체험이라는 것, 특히 지식과 결부된 체험은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고의 자산이 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이 교육 여행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는 것과는 굉장히 달라요. 그렇게 힐링 차원으로 놀러 가는 것도 당연히 좋지만, 교육적인 요소를 함께 가지고 가는 여정은 우리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여행이에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모든 친구들에게 이런 혜택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인데, 전체에게 못 한다고 부분도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몇 명에게라도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이런 기회를 만들 거예요. 여러분은 현재 한마디로 꽃봉오리 같은 시기예요. 어떤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모양새로 피어날 수 있어요."

이날 밤의 일매듭은, 씻지도 않고 양치도 안 한 상태에서 최대한 간단히 끝낼 요량이었지만, 다 함께 이야기한 시간만 한 시간을 가득 채웠다. 게다가 네 명은 내 방에 계속 남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과자 다섯 봉지를 비우고 게임 벌칙으로 팔뚝을 서로 신나게 두드린 다음에야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안동으로 갔다가 다시 전주로 운전해서 가야 하는 일정이 남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엔도르핀 같은 무언가가 마음을 뜨겁게 하여 나의 기력을 보충해 주는 것만 같았다.

돌아가는 길은 추풍령에서부터 폭설이 내려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주었다. 윈터타이어로 단단히 무장한 두 대의 차량은 아이들을 싣고 3일 전 출발했던 곳으로 안전하고도 황홀하게 무사히 도착했다.

 도산서원에서 선비와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진 자매
도산서원에서 선비와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진 자매 안사을
#대안교육 #교육여행 #포스코 #주왕산 #도산서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퇴직 후 평온한 사람들의 공통점, '많이 가진 자' 아니더라
  2. 2 '윤석열 사형' 구형에 논평 한 줄 못내는 국민의힘의 속사정 '윤석열 사형' 구형에 논평 한 줄 못내는 국민의힘의 속사정
  3. 3 윤석열 사형 구형에 세계가 주목... "정치적 자살 행위로 몰락한 스타 검사" 윤석열 사형 구형에 세계가 주목... "정치적 자살 행위로 몰락한 스타 검사"
  4. 4 [단독] 박정훈 재판서 "VIP 격노 못 들어"... 해병대 2인자, '모해위증' 고발 당해 [단독] 박정훈 재판서 "VIP 격노 못 들어"... 해병대 2인자, '모해위증' 고발 당해
  5. 5 용인 반도체 공장 부지, 직접 보면 놀란다...대통령도 후회한 이유 용인 반도체 공장 부지, 직접 보면 놀란다...대통령도 후회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