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심마니마음은 원이로되 현실은 냉정하다. 큰 양동이를 양 손에 들고 있지만, 엄마는 한 뿌리도 못 캐셨다.
김은아
나는 사실 지금도 냉이를 구별할 줄 모른다. 먹거리에 빠삭한 언니 눈에는 온 천지가 냉이로 보이는 것 같다. 둘만 밭에 내보낸 엄마가 마음이 불편했는지 나오신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엄마 눈이나 내 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어찌 자 눈에는 그렇게 냉이가 잘 보이나 몰라."
냉이를 모를 리 없는 엄마라고 확신은 하지만, 엄마는 한 뿌리도 못 캐셨다. 언니는 아무리 뒤져도 안 보이는 냉이를 참 잘도 찾는다. 역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얻으려 해야 얻는다.
수고해야만 얻는, 봄 날의 푸른 보석
24절기만큼이나 맛도 쓰임도 변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은 냉이를 캐고, 또 지금이 가장 약성이 좋다며 조릿대를 꺾어다 차로 마신다. 감기에 조릿대차만한 게 없고, 봄 오는 길목에 냉이만한 나물이 없다는 것이다. 다듬고, 씻어서 끓여 먹으려면 참으로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세상사 그냥 얻어지는 것이 있나. 그 정도 수고는 당연지사다.

▲눈 속의 조릿대겨울철 숲에 있는 조릿대를 꺾어다 차로 마시면 열도 내려가고 목도 가라앉는다. 맛도 참 좋다. 오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한 눈 맛'같다.
김은아
물가는 너무 오르고, 세상도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때는 소리 없이 와서 할 일을 다 하고 유유히 떠나간다. 세월이라는 기차가 봄 역에 다 와 간다. 땅속에서도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식물들도 나무들도 봄 소리를 낸다. 바람이 불건, 눈보라가 치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땅에 뿌리를 깊게 내려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냉이 뿌리다. 몸집에 비해 뿌리가 정말 크고 곧다. 못처럼 긴 뿌리로 땅에 견고히 설 수 있었나보다.
김은아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꽃을 피우려고 이 모진 눈보라 속에서 정신줄 붙잡고 뿌리를 뻗고 있는 것일까. 기다리는 이 하나 없어도 보일 듯 말 듯한 냉이꽃 한 송이 피우겠다고 그리도 몸부림했을 냉이. 언제는 알아주어 꽃을 피웠나. 잎을 있는 대로 펼쳐 묵묵히 언 땅을 데우며 봄이 오는 소리를 눈으로 듣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아무 길 위나 척박한 환경에서 살지만 심지만은 대못처럼 굳건하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한 그 몸짓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한편으론 잡초로 밟혀 죽는 것보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가서 그의 통통한 살이 되어주는 것이 냉이의 보람일지도 모른다.
낭만은 그때, 그 순간
마트에 가면 편히 구할 수 있는 냉이. 그러나 캐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밭에 쭈그려 앉아 냉이를 캐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인지도 모른다. 캐보지 않고서 어찌 냉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지금 캐는 것은 냉이가 아닌 냉이의 삶이다. 잎부터 뿌리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야물딱지게 한입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냉이는 그러고 보면 속도 참 좋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기회는 항상 그때, 그 순간이다. 도심 속 번잡한 삶으로 돌아가면 누릴 수 없는 축복이다. 낭만이라는 것이 버스 터미널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다…. 아는 자만이 낭만도 누릴 수가 있나 보다. 잠시 멈춰선 버스에 올라타야만 하니 말이다.

▲냉이꽃날이 풀리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울 것이다. 이름 없는 들꽃이 아니다. 냉이꽃.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는 꽃말도 가지고 있는 고고한 식물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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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공간구성을 위해 어떠한 경험과 감성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저의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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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을 바칩니다" 이러니 몸에 좋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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