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궁장 개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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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찾아 곡부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7시 45분 공묘 앞에 도착한다. 공묘 앞에 만인궁장(萬仞宮牆)이라 쓰인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 만 길이나 되는 궁궐의 장벽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명나라 때 만들어진 곡부 고성(故城)의 남문이다. 남문의 원래 이름은 앙성문(仰聖門)이었으나, 청나라 건륭제가 만인궁장이라 써 바꿔 새겨넣게 되었다.
공묘 앞 성문을 여는 의식
만인궁장 앞에서는 성문을 여는 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36명이나 되는 악사와 춤꾼이 어울려 팔일무 형식의 춤을 춘다. 춤과 음악을 통해 전통 의식과 예절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10분 정도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은 관광객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문 안으로 입장하면 매표소를 지나 금성옥진(金聲玉振) 석패방에 이르게 된다. 금성옥진은 쇳소리와 옥소리의 떨림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가 학문을 집대성했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어서 반수교(泮水橋)를 넘어 영성문을 지나고 태화원기(太和元氣) 패방을 지나면 성시문(聖時門)에 이르게 된다. 태화원기는 공자의 사상이 태양처럼 위대하고 조화로워 그 기운이 영원할 거라는 뜻이다. 금성옥진, 태화원기, 성시 모두 <맹자> 만장 하편에서 공자를 찬양하는 문구다.

▲공묘 건물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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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벽수교(璧水橋)를 건너야 홍도문(弘道門)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홍도문은 공묘의 세 번째 문이 된다. 이어지는 네 번째 문이 대중문(大中門)이고 다섯 번째 문이 동문문(同文門)이다. 도는 넓히고 중은 키우고 문은 함께 한다는 뜻으로, 공자 유학의 기본개념이다. 동문문을 지나면 커다란 비석 네 개를 좌우에서 만난다. 이것이 명나라 때 세워진 홍무비(洪武碑) 영락비(永樂碑) 성화비(成化碑) 홍치비(弘治碑)다.
홍무비는 태조 주원장이 1371년 처음 세웠고, 1499년 화재로 훼손되어 1503년 다시 세워졌다. 통일대업을 이룬 자신이 천하의 스승인 공자의 도덕과 예의를 바탕으로 통치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1417년 세운 영락비는 왕도를 밝히고 윤리를 바로 세운 공자를 찬양하고 있다.
1468년 세워진 성화비는 공자의 도로 인해 천하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1504년 세운 홍치비에는 금나라와 원나라가 중국의 주인이 되자 이 땅에 도덕(綱常)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문구가 있다. 그 때문에 청나라 건륭제 때 훼손되어 귀부만 남았다.

▲규문각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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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각(奎文閣)은 송나라 때인 1018년 처음 세워져 장서루(藏書樓)라고 불렸다. 금나라 때인 1191년 규문각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현재 걸린 규문각 편액은 청나라 건륭제의 친필이다. 규문은 <효경>에 나오는 '규성이 문장을 주관한다(奎主文章)는 말에서 따왔다. 이후 공자 사당의 도서관은 규문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 역대 제왕의 글과 글씨가 소장되어 있다. 명나라 홍치제 때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7칸의 중층누각으로 폭이 30m나 되고 높이가 23.5m나 된다.
규문각 북쪽 대성문 남쪽에 13 비정(碑亭)이 있다. 금나라 때부터 역대 황제들이 공묘를 방문하고 기록을 남긴 비석이다. 두 줄로 나눠 앞줄에 8기 뒷줄에 5기가 서 있다. 금나라 때 비석 2기, 원나라 때 비석 2기가 앞줄 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청나라 비석이 2기씩 더 있다. 뒷줄에 있는 5기는 모두 청나라 때 비석이다.
그 외에도 당나라 때부터 송나라를 거쳐 청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비석이 무려 57기나 더 있다. 비석의 문자도 한문이 기본이지만, 몽고 문자인 파사파 문자, 만주 문자로 쓰인 비석도 있다.
대성문 안쪽에 공자가 심은 향나무가 있다고?

▲행단: 공자가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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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은 사당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처음 세워졌을 때 의문(儀門)이라 불렀고, 송나라 때인 1104년 대성문이 되었다. 처음엔 3문이었으나 원나라 때인 1302년 중건하면서 5문으로 확장되었다. 대성문에서부터는 3로의 형식을 취한다. 가운데 중로에 행단 대성전 침전이 이어진다. 동쪽 동로에 승성문(承聖門)이 있고 숭성사(崇聖祠) 가묘(家廟)로 이어진다. 서쪽에 계성문(啓聖門)이 있고 계성전 계성침전으로 이어진다.
대성문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향나무가 나타난다. 공자가 손수 심은 향나무(先師手植檜)라 쓰인 표지석이 있다. 명나라 만력제 때인 1600년 세운 비석인데,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 공자가 심은 향나무 세 그루는 진(晉)나라 때인 309년 고사했다고 한다. 2대 향나무가 수나라 때 심어 당나라 때 고사했다.
3대 향나무가 송나라 때 심어 금나라 때 병화로 죽었다. 4대 향나무가 원나라 때 심어 명나라 때 불로 훼손되었다. 그 후 청나라 때 다시 가지를 뻗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때문에 재생 향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대성전 앞에는 1024년 처음 세워진 행단(杏壇)이 있다. 2층 누각 형태로 지어졌으며, 공자가 72명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행단 안에는 금나라 때 쓴 행단 표지석과 청나라 건륭제가 쓴 행단찬(杏壇贊) 비석이 세워져 있다. 행단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장자(莊子)> 어부(漁父) 편에 나온다.
"공자가 치유의 숲(緇帷之林)에서 놀고, 행단 위(杏壇之上)에서 앉아 쉬었다. 제자들은 독서하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면서 북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弦歌鼓琴)."
'만세의 스승' 공자 사당에 들어가다

▲대성전: 공자를 모신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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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은 공묘의 본전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중층누각으로 높이가 32m나 된다. 당나라 때 처음 지어질 때는 5칸의 문선왕전(文宣王殿)이었다. 송나라 진종 때인 1021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7칸으로 확장되었다. 휘종 때인 1104년 공자가 학문을 집대성했다는 맹자의 문구를 인용, 대성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청나라 옹정제 때인 1724년 화재로 소실되어, 1730년 황궁의 규모로 중건하면서 현재와 같은 9칸의 2층 누각 형태로 지었다. 그때 황제가 대성전이라는 어필을 내려 편액을 만들었다.
대성전에는 수 많은 어필이 있다. 가운데 문밖 위쪽에 옹정제가 쓴 생민미유(生民未有)가 있다. <맹자>「공손축(公孫丑)」에 나오는 말이다.
"백성이 생겨난 이래 공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다(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
공자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전각 안 한 가운데 공자의 조상이 모셔져 있고, 그 아래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신위라는 위패가 있다. 공자상 위로 강희제의 만세사표(萬歲師表)와 광서제의 사문재자(斯文在玆)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 외에도 건륭제의 여천지참(與天地参) 등 모두 10개의 어필이 걸려 있다.

▲대성전 내부: 공자상, 편액, 주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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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또한 공자의 학문을 이은 유교의 성인 네 명이 좌우에서 공자를 보필하고 있다. 그들이 복성 안자, 종성 증자, 술성 자사, 아성 맹자다. 그 바깥으로 안자와 증자에 버금가는 제자 11명과 송나라 때 주자가, 양쪽으로 여섯 명씩 배향되어 있다. 공자상 앞에는 제례에 필요한 공안(供案) 향안(香案) 제기(祭器) 등이 놓여 있다. 제례상 양쪽으로는 제례악에 필요한 악기들이 놓여 있다. 편종과 편경, 금과 슬(琴瑟), 북과 피리와 생황(鼓簫笙)이 양쪽으로 한 쌍씩 배열되어 있다.
대성전 동쪽의 동로(東路)에는 시례당(詩禮堂), 옛 우물(故井)과 노벽(魯壁), 숭성사(崇聖祠)가 있다. 시례당은 공자가 아들에게 시와 예를 가르치던 곳이라 하는데, 현재는 예기(禮器)와 제기를 보관하고 있다. 고정은 공자 때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한다. 노벽은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때 공자 가문의 중요한 경전과 서책을 보관하던 벽장이다. 한나라 때 유학이 부흥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숭성사는 공자의 집안 사당으로 5대조까지 모시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대사라고 불렀다.

▲노벽(魯壁):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공자의 서책을 보관하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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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뒤쪽에는 침전(寢殿)이 있다. 공자의 부인 기관(亓官)씨의 사당으로 조소상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침전 뒤쪽에는 공자의 일생을 120폭의 석각으로 표현한 성적전(聖蹟殿)이 있다. 이 그림은 원래 목각이었는데, 현재 석각으로 바뀌었다.
대성전 서쪽에는 금사당(金絲唐) 계성왕전(啓聖王殿) 계성왕 침전이 있다. 금사당은 고문서 등이 보관된 장서각이다. 계성왕전은 공자를 키운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을 모신 사당이다. 계성침전은 어머니 안징재(顔徵在)를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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