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교육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
최민혁
개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지금도 배우는 중인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개를 좋아해서 반려견 훈련사가 됐지만, 그 이면의 솔직한 이야기가 개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써보려고 한다.
요즘 '덕업 일치'라는 말이 있다. 취미와 직업이 일치되는 일을 뜻한다. 과거에 비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메시지는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내게 "너는 진짜 덕업 일치의 대표적인 사례야. 부러워"라고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실제로 나는 많은 초, 중, 고등학교에 나가서 진로, 직업 특강도 했고, 좋아하는 일에 대해 꿈을 찾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주며 응원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반려견 훈련사인 나는 개가 취미이자 직업인 셈이다. 어쩌면 그게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표현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쉬는 날에도 개에 대한 자료들을 찾거나, 개와 관련된 지인을 만나거나, 개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수십 년째 가장 즐겁고 재밌는 일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하곤 한다. 나도 반려 인구가 늘어나고 교육이 마침 필요한 시대에 덕업 일치를 하게 돼서 내 상황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내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지낸다. 하지만, 어느 일이든 그 이면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이면은 바로 내가 개를 알게 되고 공부하면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생겨난 것이다.
어릴 땐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닌 곳
나는 어릴 적부터 개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다는 표현으로 부족하고 거의 빠져서 살았다. 개에 대한 책을 수십 권을 모았고, '개박사, 수의사'로 불리곤 했다. 그 당시엔 '반려견 훈련사'라는 직업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학교에 써내는 장래희망엔 개와 함께 하는 것이 항상 내 미래로 그려지곤 했다.
초등학생 5학년이 됐을 무렵, 내가 살던 지역에는 '테마형 애견카페'가 여럿 생기기 시작했다. 상주하는 개들이 여러 마리 있고, 그걸 보며 사람들이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나에게 그곳은 천국이었다. 거의 매일 혼자 가기도 했고, 때로는 친구들을 꼬셔서 함께 가곤 했다. 얼마나 자주 갔는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형, 누나는 내가 항상 시키는 딸기 요구르트 스무디를 알아서 내 자리에 만들어 놓아주시곤 했다. 아마 참 별난 꼬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에 카페에는 내가 키우기에는 엄두가 안 나지만 정말 키워보고 싶은 알래스카 말라뮤트나 골든 레트리버, 그레이트 피레니즈 같은, 내 덩치보다 커다랗고 40~50kg에 육박하는 개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은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비할 바가 없이 나에겐 천국이었다.
그 당시 한편에는 3000원짜리 애견카페 개들 간식용 닭 가슴살 육포가 판매됐고, 오는 손님 중 대부분은 그걸 구매해서 개들에게 '앉아, 손' 같은 개인기도 시키며 먹였던 기억이 난다.

▲단골 애견카페에서 어릴 적 항상 부드럽고 젠틀한 모습으로 날 반겨주던 말라뮤트, 함께 간 친구들(오른쪽)과 함께 찍었던 사진.
최민혁
지금에야 문화 의식 수준이 달라지면서 이런 애견카페는 보기 힘들지만, 그 당시엔 애견카페가 많았다. 대다수의 애견카페들은 동물 체험 사업 같은 느낌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애견카페 개들은 그렇게 간식을 자주 먹고, 애견 카페에 사람이 올 때마다 짖으며 달려 나가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볼 때마다 자주 설사를 하곤 했다.
god 어머님께 가사 속 아들이 어머님이 왜 자장면이 싫다고 했는지 몰랐듯, 그 당시 개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기만 했던 나는 개들이왜 그런지 몰랐다. 거의 매일 그랬기에 설사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개들이 힘들어하는 게 그대로 변에 드러난 것뿐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애견 카페를 본다면 나 또한 스트레스를 받고,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장면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 만약 존재한다면 거기엔 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 개들이 스트레스받는다고 끊임없이 표현하는 언어들이 내 눈엔 이제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들이 좋다고 쉬고 있는데 옆에 붙어 있는 어린 나를 만난다면 "아이고 저 녀석...." 하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될지도 모른다.
어릴 적 그 카페의 개들에게 미안하면서 고마운 게 있다면, 스트레스 받을만한 상황임에도 그 개들이 나에게 한 번도 귀찮다고 표현하거나 성질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들의 언어가 보이는 판도라의 상자
사실, 나는 반려견 훈련사가 된 이후로 개들이 많은 곳을 잘 가질 않는다.

▲개를 알게해 준 시간들 2019년, 일본으로 반려견 훈련 클럽 견학을 갔을 때, 이런 작은 시간들이 모여 개를 알게 됐다.
최민혁
이를테면, 대형 반려견 행사라든지, 불특정 다수의 개들이 한 번에 뒤엉키는 애견카페나 운동장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곳들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일반인들에 비해 보호자의 잘못된 점과 개들의 스트레스 신호가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안경을 이미 써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성이 부족하고 예민한 개들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고 이해하다 보니, 보기 싫어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부분이 강하다. 개의 입장에서 강하게 긴장되어 있는 근육들과 동공, 헐떡임, 짖음 등등을 발견하면, (사람 입장에서야 노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부 개들은 끊임없이 힘들다고 표현하는 걸 대부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은 발견 못한 채 개를 다그치고만 있는 보호자를 보면 더 화룡점정이다. 지켜보기가 힘들다.
나는 그래서 개를 안다는 것은 현재의 아직은 부족한 반려견 문화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보기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많아질 수도 있다. 지식이 부족했을 때 키웠던 이미 먼저 떠나보낸 내 반려견이 있거나, 많은 세월을 부족한 지식으로나마 키워온 내 반려견이 있다면, 이 상자를 여는 순간 후회와 미안함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럼에도 이 상자를 열어서 개들을 더 깊이있게 바라보길 바란다. '어머님이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이유를 아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지만, 그로 인해 어머님께서 아들에게 그 당시 주셨던 최선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듯 말이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함께 사는 반려견이나 반려동물이 있다면, 꼭 그들에 대해 더 공부하고 교육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나의 이면에 있는 스트레스보다 결국 그들을 이해하고 다가가고 소통할 수 있음에 더 감사하고 기뻐해 본 내가 꼭 여러분들께 해드리는 말이니 믿어도 된다.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여는 사람이 많을수록 결국 많은 보호자와 반려견이 행복한 공존을 하는 문화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개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반려견 훈련사 '최민혁'입니다. 그저 개가 좋아 평생을 개와 가까워지려 하다보니 훈련사란 직업을 갖게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제야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려동물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오해하고 모르고 있습니다. 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공유하기
반려견 깊이 알게 된 지금, 더는 여기에 안 갑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