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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쓰레기 포집 특허 내고 돈 포기한 '이상한 어부'

경남 사천시 실안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 대표 김정판 어부

등록 2025.02.06 11:59수정 2025.02.0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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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행정기관 등에서) 예산이 없어서 못 한다 그래요. 근데 나중에는 돈이 있어도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경남 사천시 실안 바다 죽방렴 어부 김정판(56)씨가 해양 쓰레기 문제에 대해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지역에서 '이상한 어부'로 통한다. 남들 외면하는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에 15년 가까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기에 말이다. 그는 "해안가 쓰레기가 바다로 가삐면 감당이 안 됩니다. 그때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안 돼요"라며 "바닷물 전체를 정화할 수 없다 아입니까?"라고 말한다.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 어구 유실과 육지 기인 쓰레기들이 해안가에 쌓이고 있다. 오래 방치될 수록 풍화작용에 따라 미세플라스틱이 더 많이 발생한다.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어구 유실과 육지 기인 쓰레기들이 해안가에 쌓이고 있다. 오래 방치될 수록 풍화작용에 따라 미세플라스틱이 더 많이 발생한다.이철재

그는 "만조 해수면 위쪽에 쌓인 쓰레기가 풍화되면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하고 있어요"라며 "사람이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정도 (미세플라스틱을) 흡수한다는데, 내가 먼저 해양 쓰레기 하나라도 줄이면 그만큼 미세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밝혔다.

이런 그를 지역의 한 방송사는 '쓰레기 잡는 어부'로 소개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22년이었다. 지역에서 해양 쓰레기에 꽂혀 매일 쓰레기를 수거하고 쓰레기 성상과 무게 등을 꼼꼼히 기록하는 어부가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고, 그 내용을 '시민과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사례로 기사화했다. (관련 기사 : 쓰레기에 꽂힌 '이상한 어부'가 있습니다)

만 2년여가 지난 현재 그는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필자가 수행 중인 '전국 환경운동 현안 조사' 과제 수행 차 지난해 11월, 그리고 올해 2월 1일 그를 다시 만났다.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기도 했다. 김정판 어부가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조간대는 연안 습지에 해당한다. 기후위기 시대 연안 습지와 해양 쓰레기 문제는 따로 떼어 놓고 보기 어려운 과제다.

해안쓰레기를 살피는 김정판 어부 김정판 어부가 실안 앞바다 섬에 있는 쓰레기를 살피고 있다.
해안쓰레기를 살피는 김정판 어부김정판 어부가 실안 앞바다 섬에 있는 쓰레기를 살피고 있다.이철재

실안 부둣가 그의 작업장으로 갈 때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노을 품은 실안 바다' 안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김정판 어부는 부인과 한참 장어 손질에 바빴다.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믹스 커피를 내어놓은 그는 "(실안 바다는) 우리나라에서 낙조가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홍보되는 곳"이라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간의 얘기가 이어졌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를 치워야 해요"


우선 2022년 <오마이뉴스> 보도를 계기로 그의 활동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늘었다고 했다. 같은 해 연말 SBS 물환경대상 시민실천 부문 수상도 <오마이뉴스> 보도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내가 쓰레기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도 SBS 물환경대상을 받은 거만 알면 그냥 나를 인정해 주는 그런 분위기가 엄청 많았습니다"라고 말했다.

2023년엔 KBS '인간 극장' 출연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고, 지역 서경방송에서 그의 활동을 소개한 것을 계기로 전국 방송인 YTN에서도 다뤄졌다. 창원 KBS는 '세상 다반사' 프로그램 미니 다큐 형식으로 그의 활동을 보도했다. 몇몇 전국 온라인 매체에서도 그의 활동을 소상히 소개했다.


SBS 물환경대상을 수상한 김정판 어부 김정판 어부(우측에서부터 네 번째)는 2022년 해양 쓰레기 저감을 위해 앞장선 공로로 SBS 물환경대상 시민실천 부문 상을 수상했다.
SBS 물환경대상을 수상한 김정판 어부김정판 어부(우측에서부터 네 번째)는 2022년 해양 쓰레기 저감을 위해 앞장선 공로로 SBS 물환경대상 시민실천 부문 상을 수상했다.환경운동연합

이쯤 되면 목에 힘이 들어갈 만도 했지만, 그의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과 활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이 문제가 여전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해양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2년 부친의 낭장망을 이어갈 때부터였다. 2017년부터 죽방렴을 할 땐 한꺼번에 대량의 쓰레기가 들어와 낭패를 겪을 때가 많았다.

김정판 어부는 "(죽방렴에) 멸치하고 쓰레기하고 같이 혼합되면 멸치를 다 버려야 되거든요. 근본적으로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쓰레기를 치워야 해요"라고 말했다. 지금의 바다는 그가 유년기 부친을 따라다니며 봤던 넉넉하고 풍성했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바다가 쓰레기 때문에 끙끙 앓는 게 눈에 보였다.

예전 갯지렁이 풍성했던 연안 습지대는 이제 조개껍데기 밑에 페트병, 스티로폼, 알루미늄 캔 등 썩지 않은 쓰레기가 쌓여 있다. 매일 출항할 때마다 해안가에 쓰레기가 있었다. 부유 쓰레기는 물론 물속에 가라앉은 침적 쓰레기나 부유 쓰레기에 이물질이 묻어 물속 중간을 떠다니는 중성부력 쓰레기도 문제다.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바다를 걱정하는 어민이 늘었다. 지난해 여름 바다가 뜨거워 통발에 든 노래미가 모두 폐사하는 일이 흔했다. 사천 앞바다에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독가시치라는 아열대 어종이 잡히는 일도 벌어졌다. 11월이면 평소 해수 온도 15도 정도가 정상인데, 지난해는 19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원래 올라오던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예전 풍성했던 바다로 되돌리고 싶은 심정에 주변에서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아도 묵묵히 해양 쓰레기 수거 활동을 벌여왔고, 이러한 내용을 공책과 전지에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했다.

전지에 빼곡히 적은 쓰레기 수거량 김정판 어부는 해양 쓰레기 수거량 등을 꼼꼼히 기록해왔다.
전지에 빼곡히 적은 쓰레기 수거량김정판 어부는 해양 쓰레기 수거량 등을 꼼꼼히 기록해왔다.이철재

그의 기록엔 원칙이 있다. 평소 찾아뵈었던 스님 조언이 뼈가 됐다. 그는 "사람이 중간에 욕심이 나서 한 개 거짓말을 섞으면 나중에 세월이 가면 송두리째 모든 게 거짓말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자기 활동 성과를 부풀리고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10여 년 넘도록 '있는 그대로 기록'이라는 원칙을 지켜왔다.

최근 들어 그는 외로움이 덜해졌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2023년 12월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라는 비영리민간단체를 등록했다. 마을 어민을 비롯해 사천시내에서 자영업 하는 사람, 지역 발전소 관계자 등 22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김정판 어부 방송을 보고 진주에서 찾아온 이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해양 쓰레기 수거를 월 1회 정기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시내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진재 사장(56)의 경우, 예전 수산업에 종사하면서 해양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 구성에 적극 참여했다. 해양 쓰레기 문제에 대해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요?"라며 "그 누군가가 본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민이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 단체는 순수 봉사 활동을 지향한다. 회원들이 자기 먹을 걸 싸 와서 큰돈 들지 않았다. 선박 운행은 김정판 어부와 회원 중 어선를 갖고 있는 이들이 해줬다. 자잘한 비용은 단체 대표를 맡은 김정판 어부가 사비로 처리했다. 해양 쓰레기 처리로 생긴 수익금 전액은 모두 사천시 복지 단체에 기부했다.

"해양 쓰레기 포집 특허는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써야"

지난해 지역 한전 노조원들이 해양 쓰레기 수거 활동에 참여했다. 한 번에 50여 명씩 4차례 활동하면서 쓰레기가 사라지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김정판 어부는 "혼자 했을 때는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냥 쓰레기를 주워 오는 거지 그게 현실적으로 표가 잘 안 납니다. 근데 사람을 좀 많이 구성을 해서 하면 그게 표가 나거든요"라고 말했다.

실안 앞바다 해양 쓰레기 수거 활동에 나선 한전노조원 김정판 어부의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 활동에 지역 한전 노조원들이 대거 참여해 섬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실안 앞바다 해양 쓰레기 수거 활동에 나선 한전노조원김정판 어부의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 활동에 지역 한전 노조원들이 대거 참여해 섬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김정판

마도, 늑도, 저도 등 실안 앞바다에서 대표적으로 해양 쓰레기가 쌓였던 섬들의 모습이 달라졌다. 2023~2024년 50리터짜리 폐기물포대 1200여 개를 수거했다. 이렇게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것만 같았지만, 불행히도 야속한 겨울 갈바람은 또다시 해양 쓰레기를 쌓이게 했다.

지난 1월 우리 바다 환경지킴이 회원들과 섬에 들어가 25포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했지만, 다 못할 정도였다. "아, 참 바다 쓰레기 많은 게 표가 납니다"라는 게 김정판 어부의 한숨 섞인 말이었다. 이런 해양 쓰레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으로 그가 고안한 게 죽방렴 원리를 활용한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다.

만조와 간조 수위와 계절별 풍향과 해변 지형 따라 해양 쓰레기가 쌓이는 지역과 다시 바다로 유입되는 지역을 포집 장치와 연결하는 내용으로, 만으로 유입되는 쓰레기, 해안가를 이동하는 쓰레기, 강·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쓰레기를 포집할 수 있는 시설을 구상했다. 지역의 생태 지식을 활용한 독창적 방식이자 실용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 아이디어 차원으로 끝내지 않았다. 김정판 어부는 2023년 12월 죽방렴 원리를 활용한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 기술 3개를 특허로 등록했다. 여기에 전문가인 안양대 유종성 교수와 (사)에코피스아시아 이태일 처장이 큰 도움이 됐다.

해양 쓰레기 저감 시설 특허증 김정판 어부는 죽방렴 원리를 활용한 해양 쓰레기 시설 포집 장치로 특허 3개를 등록했다.
해양 쓰레기 저감 시설 특허증김정판 어부는 죽방렴 원리를 활용한 해양 쓰레기 시설 포집 장치로 특허 3개를 등록했다.이철재

김정판 어부는 이 특허를 사익을 위해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그의 특허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2022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의 공언이었다. 그 사이 그를 부추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니 그 특허를 갖다가 왜 국가에 줍니까? 그거 돈이 될낀데 돈을 벌어야지"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경운기 같은 걸 특허 냈으면 내가 먹고 사는 걸 해야 되겠지예. 이거는 경운기가 아니고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필요한 건데 이걸 내가 가지면 되겠습니까? 안 되지. (특허에) 이름 하나만 올라간 것만 해도 뭐 자손 대대로 남을 일인데"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래야 되는 깁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관련 예산 반영과 함께 올해 경남도에서 그의 특허를 활용해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 시범 사업을 예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범사업의 성과 여부를 떠나서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에 나선 한 어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포집 장치 시범 사업 모니터링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쓰레기 김정판 어부가 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해양 쓰레기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쓰레기김정판 어부가 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해양 쓰레기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이철재

김정판 어부에게 향후 활동 계획을 물었다. 그는 "그냥 내 자리에서 (해양 쓰레기 수거하는) 이걸 쭉 하는 게 내 일입니다. 아마 변함없이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양 쓰레기를 신속히 치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이는 게 필요하고 말했다.

"정확하게 (쓰레기 발생량을) 줄일 수 있는 거는 시민 각자가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기 손에서 쓰레기가 안 떠나면 이 (해양) 쓰레기가 사실 없거든요"라는 게 끝으로 그가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해양쓰레기 #김정판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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