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신학대학원 장공기념관에 걸린 장공 김재준 목사의 글씨. '생명', '평화', '정의'.
신영수
어용으로 현실 부정왜곡 말도록
- 문학·예술인들에게 -
김재준 3선개헌 반대 범국민 투위위원장
근계(謹啓), 민족문화의 수립과 그 발전에 기여하시는 귀하에게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취송(就悚) 본인들이 범국민의 이름으로 국가만족 장래에 있어 일부 몰지각 정사자들이 집권과 세도를 기화로 영원할 조국에 감히 오점을 남기려 하고 있는 3선개헌의 소행을 분쇄하고자 함은 이미 현찰하고 계신 일입니다.
이제 우리가 외람되이 새삼 귀하들에게 최구(催求)하고자 하는 바 문학예술계에 종사하시는 여러분들로서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소위 '총동원제'를 빙자한 '문인보국'적인 사주라든지 공산주의자들 같이 선전적인 부대로 사용하는 일을 상기하여 주시기 바라는 일과 더 가까이는 이승만(李承晩)의 독재망상 때 이른바 '만송족'으로 낙인찍힌 전철에 관한 일들입니다.
민주국가에 있어서 문학·예술단체란 비록 정부의 재정적 원조를 받는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선의의 국가적 보조이지 어느 정권의 도구적인 구실을 하기 위한 '선심'이 아니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또는 개별적으로 그 어떠한 시혜(施惠)가 있을지라도 거기에는 공사의 혼동이 있을 수 없는 일 또한 소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득한 옛날에도 시(詩)가 부정의 선악을 알기 위한 수단으로 모집되었고, 그것이 제왕의 정치를 비판하고 일에 이바지되었지 익찬(翼贊)하는 송시찬가(頌詩贊歌)로 구실하지는 않았으며, 그것은 지난번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의 저항시인이나 문학·예술인 등이 국가위난에 구국의 정신적 원동력이 된 일 등으로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근간 규지할 수 있는 일은 정권연장의 선전동원상 문학·예술인들을 소위 건설지대 시찰이다. 전시건설의 확장 선전을 위하여 고속도로 등을 주제로 하고 노래를 짓게 하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작가·작곡인들에게 후사적(厚謝的) 고료를 미끼삼아 그 일에 놀아나는 일도 없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무릇 문학·예술인은 어느 정권의 '광대'가 아닐 것입니다. 또는 매문가(賣文家)도 아니고 사상 등 명성쯤에 현혹되어서는 더욱 아니 됩니다. 소위 '어용시인', '어용문필인'이란 언제나 그때 그때 세력에 편승하는 일종의 주구임을 모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일은 아예 귀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 줄로 믿으오며 신생 대한민국의 현세대를 살아가고 이끌어 가시는 빛나는 지조의 지성인으로서 문학·예술 본래의 사명과 국민의 일원으로서 자칫하면 국민주권이 유린되고 민족만대에 불미한 전레를 남기게 되는 바 소위 '3선개헌'의 후안무치한 박정권과 그 추종자들의 틈에서 우유부단하거나 음양으로 편드는 일에서 의연히 그리고 결연히 우리들의 범국민 투쟁 전선에 참여하심을 믿어마지 않습니다.
옛날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조 잃은 자의 서책은 모두 소각하라'는 일도 소연한 바이며 부일협력한 문학·예술인들의 말로도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차제에 이러한 일들을 상기할 필요를 느끼면서 귀하의 명예와 전승을 축원합니다.
1969년 7월 (주석 2)
주석
1> 김경재, <사랑의 공동체를 꿈꾼 진보 신학자>, 김경재 외, <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 69쪽, 삼인, 1998.
2> 김삼웅, <민족민주민중선언>, 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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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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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3선개헌 앞두고 '어용으로 현실 부정왜곡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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