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지키는 이 마을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 충남 당진시 면천면

등록 2025.02.05 10:55수정 2025.02.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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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품은 지역으로, 과거 당진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백제 시대에는 '혜군(兮郡)', 통일 신라 경덕왕 때는 '혜성군(兮城郡)'으로 불렸으며, 고려 충렬왕 19년(1293)에는 면천 출신 복규(卜奎)가 합단병(哈丹兵)을 격퇴한 공을 세우자 '지면주사(知沔主事)'로 승격되었다.

지면주사의 '면'에서 '면천(沔川)'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이는 중국 시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넘쳐흐르는 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네(면피류수沔彼流誰, 조종우해朝宗于海)"에서 면천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한편, 면천 안내판이나 당진시 홈페이지에서는 합단병을 원나라 혹은 거란군이라고 설명한다. 충렬왕 13년(1287), 칭기즈칸의 막냇동생 옷치긴 후손이자 요동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던 내안(乃顔, 나얀)이 쿠빌라이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이후 합단은 충렬왕 16년(1290)에 요동에서 몽골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두만강을 건너 고려를 침범하였다.

고려와 조선, 해상 교통의 요충지

이곳 면천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군사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충청도 조운(漕運)의 중심지로 전국에서 운반된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경(면피류수, 조종우해) 면천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시경에 나오는 시
시경(면피류수, 조종우해)면천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시경에 나오는 시이병록

그러나 성종 8년(1477년), 창고가 범근내에서 공세곶으로 이전되면서 조운 중심지 역할은 다소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면천은 해산물과 소금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해안가 지역은 궁방과 권세가들에게 강제로 빼앗기기도 했다.

면천에 읍성과 향교가 있듯이, 당진과는 별도의 행정구역이었다. 한때는 당진군과 동격인 군(郡)으로 22개 면을 관할 했다. 그러나 1914년 4월 1일, 면천군이 당진군에 편입되면서 '마암면'이 되었고, 1917년 '면천면'으로 개칭되면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인근 합덕은 본래 '부곡(部曲)'이었다. 고려의 향·소·부곡은 노비와 양인 사이의 피차별 계층을 의미한다. 고려 충렬왕 24년(1298), 고을 사람 황석량이 원나라에서 공을 세운 덕분에 '합덕현'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고종 32년(1895) 면천군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읍(邑)으로 승격되면서 현재 면천면과 비교되는 지역이 되었다.

면천 읍성과 1100년 된 은행나무


면천 읍성은 낙안읍성처럼 완벽하게 보존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성벽 사이로 도로가 나 있어 옛 모습이 일부 훼손되었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로 남아 있다.

면천읍성 성 사이로 길이 뚫려있다.
면천읍성성 사이로 길이 뚫려있다.이병록

여기 들렀던 1월 말 이른 저녁, 식사를 하는데 식당 주인이 눈이 와서 문을 일찍 닫는다고 했다. 시간이 넉넉해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 입구에는 300년 된 느릅나무 보호수가 우뚝 서 있다. 당진에서는 이처럼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을 '아름다운 나무'라고 부른다.

읍성 안에는 선비들이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던 '풍악루(風樂樓)'가 복원되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바로 옆에는 '조종관(朝宗館)'이라 불리는 객사가 자리하고 있다. 한때 면천 초등학교로 사용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되었지만, 원형을 살려 복원해둔 모습이었다.

특히, 이곳에는 1,100년이 넘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디며 굳건히 서 있다. 이 나무들은 면천두견주와 함께 면천을 대표하는 명물로,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이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1100년 된 은행나무 객사 옆에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1100년 된 은행나무객사 옆에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이병록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장군이 고향 면천으로 돌아와 병을 앓게 되자, 그의 딸이 아미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때 신령이 나타나 "아미산 진달래꽃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장군께 드리고, 집 앞에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다하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그렇게 빚어진 술이 바로 면천두견주이며, 그때 심은 은행나무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2016년 천연기념물 551호로 지정되었다고. 장군 사당과 무덤은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다.

향교 앞에는 '골정지'라는 큰 연못이 있고, 객사 동쪽 은행나무 아래에도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연못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고 그 위에 팔각정을 세워 '군자정(君子亭)'이라 불렀다.

연못에는 연꽃이 심어졌는데, "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는다."라는 뜻에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군자정으로 건너는 돌다리는 자연석 네 개를 이어 만든 것으로, 1803년에 축조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군자정 고려 말에 지군사 곽충령이 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1803년 면천군수 유한재가 8각정을 짓고 군자정이라 이름 붙였다.
군자정고려 말에 지군사 곽충령이 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1803년 면천군수 유한재가 8각정을 짓고 군자정이라 이름 붙였다.이병록

100년 된 옛 우체국 건물은 '100년 된 우체국 카페가 되다'라는 설명과 함께 '미인 상회'의 감성적인 카페로 탈바꿈했다.

이전된 우체국 자리는 '면천 읍성안 그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읍성 내에는 지금은 문을 닫은 전파사, 미나래 떡집 등이 남아 있어 마치 수십 년 전 고향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설날 연휴 동안엔 서해랑 64-5길을 걸었다. 서해랑길은 내포 문화 숲길에서 합덕으로 이어진다. 인근에는 솔뫼성지, 합덕성당, 그리고 고려 시대 이전에 축조된 조선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합덕제가 자리하고 있다.

면천 카페와 미술관 우체국 건물을 카페와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면천 카페와 미술관우체국 건물을 카페와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이병록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신문과 브레이크뉴스에도 실립니다.
#면천 #복지겸 #1100년은행나무 #면천읍성 #합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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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전)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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