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자료사진)
연합뉴스
통치행위론은 대통령의 특정한 권한행사가 이른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므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진행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거나 자제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사실 통치행위론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서도 두 차례 등장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했을 때(헌재 1996. 2. 29. 93헌마186 결정),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이라크파병을 위한 국군파병권을 행사했을 때(헌재 2004. 4. 29. 2003헌마814 결정) 청구된 헌법소원심판 사건 관련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통치행위론을 거론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금융실명제에 대해서는 통치행위라고 하더라도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설시했고, 이라크파병에 대해서는 통치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법적 심사가 자제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든 국가권력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허용하는 헌법재판제도가 헌법에 인정됨으로써 헌법국가를 표방한 대한민국에서 통치행위론 자체를 거부하지 못한 원죄로 부담해야 할 무거운 질고는 헌법재판소가 자초한 것이다.
금융실명제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가 펼친 통치행위론은 이렇다.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은 국가긴급권의 일종으로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발동되는 행위이고 그 결단을 존중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이른바 통치행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다."
통치행위론을 인정한다고 해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사안'에서는 통치행위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편 헌법재판소가 이라크파병 관련 결정에서 거론한 통치행위론은 이렇다.
"외국에의 국군의 파견결정은 파견군인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지위와 역할, 동맹국과의 관계, 국가안보문제 등 궁극적으로 국민 내지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로서 국내 및 국제정치관계 등 제반상황을 고려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등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결정은 그 문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국민의 대의기관이 관계분야의 전문가들과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 헌법도 그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고 국민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그 권한행사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기 위해 국회로 하여금 파병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바, 현행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 통치구조 하에서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그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와 같은 '국민의 대의기관이 전문가들의 광범위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되었다면 통치행위론에 따라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가 자제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계엄, 사법적 심사 배제에 해당하지 않아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통치행위론을 주장하면 자신이 저지른 원죄 때문에 거기에 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내란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비상계엄 선포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통치행위론을 적용할까?
12·3비상계엄에 따라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이 발령한 특별조치(포고령)에 따르면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언론·출판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통제되며, 노동3권의 핵심인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집회의 자유가 금지될 뿐만 아니라 전공의에게 보장된 직업의 자유는 강제노동을 허용하는 수준으로 박탈당한다.
금융실명제 결정에서 설시된 것처럼 12·3비상계엄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으로 통치행위에 해당한다고 해도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 한편 계엄선포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면서 국회의 계엄해제요구권에 따른 사후적 통제만을 받는다.
대통령의 국군통수권(헌법 제74조 제1항)에 포함된 국군파병권이 국회의 동의권(헌법 제60조 제2항)에 의한 사전적 동의를 필수적으로 전제해야 하는 것과 달리 계엄선포권은 그러한 사전적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12·3비상계엄은 대통령이나 국회와 같은 국민의 대의기관이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 전문가들의 광범위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되지도 않았다. 12·3비상계엄 선포행위는 그것을 통치행위로 본다고 해도 사법적 심사가 배제되거나 자제되어야 할 권한행사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분명하게 확인해줘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이 열린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윤 대통령이 입장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가기관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기관의 설치와 그 권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헌법과 법률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헌법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과 함께 사법권을 담당하는 '사법기관'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국가기관이 헌법재판소다.
내란 목적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일부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헌법재판소를 섣불리 '정치적 사법기관'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사실 법원도 정치적 판결을 할 수 있고, 검찰도 정치적 기소를 할 수 있으며 감사원도 정치적 감사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법원이나 검찰, 감사원을 정치적 사법기관이나 준사법기관, 감찰기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국가기관에 붙는 수식어는 그 국기기관이 헌법과 법률로부터 부여받은 본질적 기능을 벗어났을 때 비판적 의미로 추가할 수는 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금융실명제나 이라크파병에 관한 결정은 물론 수도이전에 관한 결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이라는 수식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부여받은 본질적 기능은 법규범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기능'이다.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도 자신에게 부여된 본질적 기능으로서 사법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헌법이 다른 법규범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에 정치적 지향성이 개입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클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법기능의 본질적 특성인 엄밀한 논증을 피해갈 수는 없다. 12·3비상계엄에 관한 사법적 심사에서 통치행위론을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가 통치행위론을 거론한 원죄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피할 수는 없지만 엄밀한 논증을 통해서 12·3비상계엄에 관한 사법적 심사에서 통치행위론을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는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이 유신헌법의 제정을 위하여 선포된 비상계엄에 따라 선포된 포고령에 대해서 사법적 심사를 진행하면서 설시한 단호한 입장을 참고하여 혹여라도 12·3비상계엄에 대해서 통치행위론을 언급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경고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 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긴급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최소한도로 행사되어야 하고 국가긴급권을 규정한 헌법상 발동 요건과 한계에 부합하여야 한다. … 유신헌법 제54조 제1항, 구 계엄법 제4조 등에 비추어 볼 때, 구 계엄법 제13조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는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변으로 국가의 존립이나 헌법의 유지에 위해가 될 만큼 극도로 사회질서가 혼란해진 상태 등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여 경찰력만으로는 도저히 비상사태의 수습이 불가능하고 군병력을 동원하여 그러한 상황에 이른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 때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11. 19. 선고 2016도1478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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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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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 통치행위? 인권위 향한 헌재의 경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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