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궁과의 대화에서 깨우치다

[활 배웁니다 22]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등록 2025.02.08 14:31수정 2025.02.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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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뭐가 됐든 일단 목표한 바만 이루면 성공 아닌가. 활쏘기로 치면 자세야 어떻든, 잘 맞히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말이다.


활을 배우면서 '잘 맞히는 것'보다 '올바른 자세로 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화살이 잘 안 맞으면 슬며시 조바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맞히는 데에만 연연하여 나의 자세보다는 145m 너머의 과녁에만 집중하기 일쑤였다.

최근 들어 나의 궁체(자세)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예전에도 활을 배우다 나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자체 교정을 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3개월 가까이 평소에 쓰던 강한 활을 내려놓은 채, 이제 갓 입문한 초심자들이 쓰는 아주 약한 활을 들고서 자세 교정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자세를 고쳤건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또 나쁜 버릇이 든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 슬슬 시수(성적)가 오르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자세를 고친답시고 또 다시 과거의 그 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한편으로 활쏘기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지 벌써 5년차가 된 시점에, 자세를 또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눈 내리는 활터에서 (2025.2.6 / 서울 공항정)
눈 내리는 활터에서 (2025.2.6 / 서울 공항정) 김경준

명궁과의 대화에서 깨닫다

며칠 전 활터에서 5단 승단에 성공한 접장님과 대화를 할 일이 있었다. 대한궁도협회 규정에 따르면 5단이 되려면 45발을 쏴서 31발 이상을 맞혀야 한다. 5단 승단에 성공하면 심사를 거쳐 '명궁'의 호칭을 부여한다. 명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5단 정도 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엿한 명궁의 반열에 오른 그 접장님도 요즘 들어 자신의 자세를 다시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토로하는 것이 아닌가. 사대에 나란히 서게 되자 여러가지 자세를 시험해보면서 내게도 자세를 봐달라고 요청해왔다.

의아해진 내가 물었다.


"이제 명궁이신데 그냥 기존에 쏘던 대로 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괜히 자세 바꿔봐야 시수만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접장님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잘 맞는다고 결과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어서도 안정적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올바른 자세로 교정해 나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내게도 "김 접장은 아직 젊으니깐 나처럼 고생하지 말고 초장에 나쁜 버릇을 고치라"는 조언을 들었다.

사실 활터에서 주변 어른들이 자세에 대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때론 꼰대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지금 충분히 잘 쏘고 있는데 '왜 굳이?' 싶었다.

그러나 5단 명궁조차도 끊임 없이 자신의 자세를 돌아보며 초심자의 마음으로 도전하는 것을 보면서 뒷통수를 맞은 듯했다. 지금까지 다져왔던 명성과 실력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용기가 놀랍고 멋있게 느껴졌다.

아직 1단도 따지 못한 내가 '벌써 5년차나 됐는데 내 자세에 뭔 문제가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아집이고 자만이고 허세였다. 쥐뿔도 없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쥐구멍으로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과녁 (2025.1.12 / 서울 공항정)
과녁 (2025.1.12 / 서울 공항정) 김경준

2025년에도 "활 배웁니다"

새삼 사대에 설 때마다 입버릇처럼 반복하던 "활 배웁니다"라는 말의 무게를 느낀다. 입으로는 늘 활을 배운다고 하지만, 기실 나는 으레 하는 인사치레 정도로만 치부해왔지, 그 말의 깊은 의미를 어느새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부터는 그 말의 무게를 조금 무겁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늘 새롭게 배우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활쏘기를 통해 요령과 요행만 바라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장땡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태한 나의 습관을 고쳐 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그래서 2025년 을사년 새해에도 힘차게 외쳐본다.

"활 배웁니다!"
#활쏘기 #국궁 #한산 #호무선궁 #공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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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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