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잼'인 지역 탄핵집회에 나가는 이유

재밌는 깃발도, 공연도 없지만... "우리가 없으면 서울도 외로울 걸?"

등록 2025.02.07 09:14수정 2025.02.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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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밤, 국회 앞에 모였던 시민들은 그날 이후에도 여의도에서 집회를 가지고, 또 탄핵 가결이 된 이후에는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겨 집회에 모였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지방 곳곳에서도 대통령 탄핵 집회가 개최되었다. 충북 청주에 살고 있는 나는 서울 집회보다는 우리 지역의 집회에 주로 참석한다.

어느 날 집회에 참석하려고 트위터(현X)에서 집회 정보를 찾다가 이런 트윗을 발견했다. 청주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으로 보였는데, '매번 서울 올라가는 차비만 생각해도 만만치 않은데 집회에 청년 남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 억울하다. 그 돈을 후원하는 게 낫지 않나?'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람은 청주에서 집회가 있다는 걸 모르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있는 걸 알아도 청주 집회에 참석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청주 집회에 간다고 2030 남성이 정치참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역 집회는 서울의 집회에 비해 관심도 주목도도 떨어지니까.

처음 집회에 나갔을 때 사람도 제법 많고 그날이 탄핵 가결이 나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고, 일방향 도로만을 사용하던 집회는 차선을 넓혀 6차선 도로를 가득 채웠다. 주최 측은 최대 일만 명이 모였다고 했다. 가결이 된 직후 절반의 인원이 빠졌지만 그래도 시내를 돌며 행진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행진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 하나씩 드는 재밌는 깃발도 하나쯤 볼 수 있었다. 나는 뒤에 있어서 못 봤는데, 모교 교수님들이 돈을 댄 어묵차도 와 있었다. 그 날은 마치 '서울 집회' 못지 않은 분위기였다.

12월 14일 청주, 충북도민 총궐기대회 충북도민 총궐기대회에서 받은 피켓과 매직으로 쓴 경광봉. 인기가 많았다.
12월 14일 청주, 충북도민 총궐기대회충북도민 총궐기대회에서 받은 피켓과 매직으로 쓴 경광봉. 인기가 많았다.허나경
12월 14일 청주 충북도민 총궐기대회, 충북대 교수들이 지원한 푸드트럭 필자의 모교 교수님들이 지원한 푸드트럭. 어묵은 안 먹었지만 동문의 이름이 걸려 있는 것에 큰 힘을 받았다.
12월 14일 청주 충북도민 총궐기대회, 충북대 교수들이 지원한 푸드트럭필자의 모교 교수님들이 지원한 푸드트럭. 어묵은 안 먹었지만 동문의 이름이 걸려 있는 것에 큰 힘을 받았다.허나경

그 다음 집회는 그 많던 사람들이 어 디갔나 싶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천 명은 되었을까? 그래도 사람들의 열기는 죽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했다. 하지만 탄핵 가결이 있던 그날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이진 않았다. 정작 서울의 집회 규모는 점차 커져가는데도.

"솔직히 좀 노잼이죠."

구경할 만한 재밌는 깃발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선결제 매장이나 푸드트럭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체에서 사비를 털어 만든 어묵통 하나 정도, 어쩌다 선결제 커피,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지역 축제 정도의 규모다. 집회에 함께 나가는 지인과도 '언젠가 서울이라는 메인 스트림에 나가봐야 하지 않나'라는 말을 하곤 한다. 재밌는 깃발을 들고 싶지만 지역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나를 대표하는 그 어떤 것을 들든 특정이 너무 쉽다.


재밌는 깃발이 수없이 많으면 시선이 분산되고 재밌는 깃발들이 되어 익명 속에 숨을 수 있지만(몇몇 눈에 띄는 일명 '올출러' 네임드 깃발들은 예외지만) 이곳에선 너무나 눈에 띈다. 결국 소심하게 작은 미니 깃발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이도 몇 번이나 사진을 요청 받았고 몇 번은 애써 얼굴을 가려야 했다. 깃발을 든 것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좁은 동네에서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12월 28일, 청주 충북도민 시국대회 소심하게 만든 미니 깃발. 웹소설 작가, 게이머, 고양이 집사 등 특정될 수 있는 내용은 다 기각하고 무난한 내용으로 만들었다.
12월 28일, 청주 충북도민 시국대회소심하게 만든 미니 깃발. 웹소설 작가, 게이머, 고양이 집사 등 특정될 수 있는 내용은 다 기각하고 무난한 내용으로 만들었다. 이린아
12월 28일, 청주 충북도민 시국대회 함께 한 지인이 제작한 미니깃발. 아직도 그 책의 결말은 읽지 못했다고.
12월 28일, 청주 충북도민 시국대회함께 한 지인이 제작한 미니깃발. 아직도 그 책의 결말은 읽지 못했다고.허나경

진지하고 심각한, 내란 우두머리 파면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재미를 찾는 게 좀 철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서울 집회가 화제가 되고 참가자가 더 늘어나고 있는 데는 그런 동력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결의를 가지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도 있다. 집회에 나가기 위해 10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면, 나의 결의가 1정도 부족할 때 '재미'가 나머지 1을 보태준다면 칼바람이 부는 광장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집회가 처음 열릴 당시에도, 광장이 여러 사람에게 열려있고 모두가 부담 없이 참석할 수 있는 광장임을 강조했고, 지금 그 결과가 모두에게 보이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지역 집회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이 동네, 청주는 제법 큰 지방도시 중에서도 영 그렇다. 부울경, 강원도처럼 보수 색채가 짙어서 찬성집회 참가 자체에 주목도가 쏠리는 것도 아니고(이 분들의 참가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갈등은 시선을 끈다는 얘기일 뿐이다) 광주와 전라도, 제주처럼 민주화와 탄압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 기치를 높게 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말이 다가오고 좋아하는 가수가 탄핵 집회에서 공연을 한다는 얘기나 기수 행진 같은 행사가 있다는 말이 들리면 역시 서울로, 그 역사의 현장 속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돈과 체력, 시간을 써도 서울로 가는게 낫지 않나? 서울 왕복 차비가 3만 원, 왕복 3시간이면 못 갈 거리도 아닌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러면 지방 집회는 없어도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지방에 집회를 열고 그곳에 모이는 걸까?

돈과 체력, 시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할만하니까? 아니면 조금 더 숭고하게 '여기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라는 마음이 있어서?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크게 소리침으로서 안전한 연결감을 느끼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또 만약에, 청주처럼 화제가 되지 못하는 곳의 집회가 없다고 치면, 청주보다 더 작은 진천, 옥천 같은 곳에서 집회를 하는 분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또 서울은 얼마나 외로울까? 이 대한민국에 크게 소리쳐 외치는 곳이 서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서울공화국이라 말하지만 이 나라가 정말 서울만으로 이루어진 곳은 아니니까.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전국 지방 집회의 참가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나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이 극에 달해서 토요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하지만 저 말을 들으니 이번 주에는 집회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도청 앞에서 열리는 지역 집회의 정보를 찾아본다. 지난 한 달간 광장을 지켰을 사람들의 곁을 다시 채우러 간다. 우리 모두 외롭지 않은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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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방집회 #충북도민시국대회 #탄핵집회 #윤석열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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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태어났으나 청주살이 20년에 청주 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노잼도시라 자조하지만 노잼이 그렇게 나쁜가 싶기도 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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