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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에 '대출금 십자가' 지우는 한국 교회, 이건 아니다

독실한 기독학생이었지만 '부동산에 물든 교회들' 민낯 씁쓸

등록 2025.02.11 20:20수정 2025.02.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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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대 중반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참 신앙인'이었다. 해외에 나가도 주일성수(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일요일에 교회에서 반드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름)를 할 정도였으니까. 일요일에는 해가 뜨는 시간쯤에 교회에 가서 해질녘 집으로 돌아왔다. 교회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의심 없이 가르치는 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착하고 독실한 기독학생이었다.


2008년 새로운 교회가 완공되었다. 촌놈 눈에는 그야말로 대형교회였다. 지상 4층, 지하 1층, 높이만 25.7m에 달한다. 연면적은 약 5000㎡, 1500평이 넘는다. 내가 살던 군청 연면적이 약 4200㎡임을 고려하면 군 단위에서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목회자는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선포했고, 대다수 성도는 이를 믿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필자와 또래 친구들은 체육관을 비롯한 새 교회의 혜택을 누렸다. 자연스레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믿었다. 교회 예산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건축 비용은 은행 대출로 융통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헌금 관련 내용의 설교가 자주 포함되었다. 성서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 성도들의 헌금 사례도 자주 등장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평신도가 큰 금액의 헌금을 내는 사례도 소개되었고 학생이 용돈을 모아 큰 금액의 헌금을 내는 사례도 소개되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무렵 학생이었던 내 귀에도 교회 재정이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게 되었다. 대출한 건축비 원금은커녕 대출 이자를 내기도 빡빡하다는 소식이었다. 아마도 교회 어른들은 신이 주신 깊은 뜻을 헤아리면서 돈을 마련할 궁리를 하고 있었을 테다.

천국으로 가기 위한 모의고사 성적표


자연스레 각종 이름의 헌금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 건축과 관련된 헌금도 있었다. 예를 들면 1구좌당 100만 원 1000구좌라는 목표를 둔 헌금이었다. 주보의 한 면은 각 헌금을 낸 명단을 작은 글씨로 빽빽이 채웠다.

돌이켜보니 이를 천국으로 가기 위한 모의고사 성적표처럼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인정 욕구와 경쟁심 때문이었을까, 순수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어쨌건 결국 주보 한 면에 이름을 채우기 위해 일천번제 헌금(성서의 사례를 본떠 일천번의 헌금을 내는 것)을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속에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주머니를 사수하기 위한 의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집까지 팔아가며 재산을 몽땅 바치는 게 정말 신이 원하는 일일까?

설교 내용대로 믿음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재산을 담보로 몇 억씩 대출을 받아 헌금을 낸 이도 있다고 들었다. 자식을 바친 아브라함도 울고 갈 믿음 아닌가. 대출을 받아 이웃을 도운 것도 아니고 번지르르한 예배당 벽돌을 쌓는 데 이바지한 것이다. 자의로 결정한 이들도 많을 테다. 하지만 설교를 비롯한 교회에 흐르는 분위기를 미루어볼 때, 순수한 자의로 결정된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필자가 다녔던 교회는 2008년 완공되었다. 2020년 기준 채권최고액 48억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다.
필자가 다녔던 교회는 2008년 완공되었다. 2020년 기준 채권최고액 48억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다.이현우

2014년에 개봉한 <쿼바디스>에 따르면 한국교회가 은행권에 대출받은 비용은 4조 4천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문을 닫는 교회가 허다하고 부동산중개소 매물을 가득 채운 것도 교회라고 한다.

10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내가 다녔던 교회는 대출금을 다 갚았을까. 등기부등본을 조회해 봤다. 정확한 대출액은 알 수 없지만, 2020년 기준 채권최고액이 48억 인 걸 감안하면 약 40억 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를 왜 그렇게 크고 화려하게 지었던 걸까. 어마어마한 대출금과 이자를 내기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헌금을 사용하는 게 참된 교회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거액의 보상금 요구, 부적절한 매입 시도... 논란이 된 이유

얼마 전 서울시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근방을 다녀온 적이 있다. 사랑제일교회 일대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장위10구역이다. 이른바 재개발 지역이다. 교회 주변은 4층 이하의 빌라가 대다수였다. 더 이상 사는 사람이 없는 빌라촌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교회가 있고 교회 입구에는 몇 명의 신도들이 있고 교회 내부에서는 찬양 소리가 들렸다.

 주변 빌라 건물은 텅텅 비었지만 사랑제일교회(오른쪽)에만 불이 켜져있고 사람이 왕래하고 있다.
주변 빌라 건물은 텅텅 비었지만 사랑제일교회(오른쪽)에만 불이 켜져있고 사람이 왕래하고 있다.이현우

교회는 사람들이 떠난 빌라촌에 남아 무엇을 하는 걸까. 여러 언론에서는 사랑제일교회가 '알박기'를 한다고 보도했다.

알박기는 부동산 투기수법을 이르는 말인데, 사업자가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땅을 확보하려고 할 때 토지주가 매각하지 않고 버티는 것을 뜻한다. 재개발 이익을 노리고 미리 재개발지역의 땅을 사두는 부동산 전문 투자자들도 있다. 이걸 투자라고 해야 할까, 투기라고 해야 할까.

사랑제일교회는 1983년부터 해당 지역에서 교회를 꾸려왔다. 그럼 그때부터 미리 부동산 호재를 예상하고 땅을 산 걸까, 1970~80년대에 이미 강남 부동산의 상승을 예상한 사람들처럼? 그렇진 않았을 테다.

하지만 시기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제일교회 사태를 알박기라고 보는 이유는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면서 버티기 때문이다.

'교회를 지킨다'는 이유를 주장했지만,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건 아니었다. 기존의 감정평가액, 교회신축비, 대토보상비를 포함한 금액의 배가 넘는 거액의 보상금, 560억 원 대를 요구했다. 교회를 지키겠다는 주장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알박기라고 낙인 찍힌 이유다.

게다가 인근 장위8구역의 사우나 건물 매입을 추진한 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교회 건물로 부적합한 부동산 매입을 시도한 것이다. 사우나 건물이 위치한 곳은 장위8구역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재개발이 계획되어 있다.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고, 동시에 재개발 호재가 있는 건물 매입을 시도했다. 결국 이 일관성 있는 행보가 부동산 알박기 논란을 종식시켜 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이웃을 위해 주거 시설로 멋지게 변신한 교회도 있다

교회 부동산을 잘 활용하는 사례는 없을까.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센트럴 장로교회는 교회 부지를 활용하여 하층부는 교회 공간, 상층부는 임대주택을 2018년에 조성한 바 있다.

영국성공회는 총자산의 3%를 부동산 약자를 위해 사용하는 'Coming Hom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교회 토지를 내놓아 공동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미국 미니애폴리스 주에 위치한 칼바리 루터교회는 건물을 개조해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기도 했다.

 교회 부동산을 잘 활용하는 사례는 없을까. 해외에도 그렇지만 국내에도 좋은 사례들이 있다.(자료사진)
교회 부동산을 잘 활용하는 사례는 없을까. 해외에도 그렇지만 국내에도 좋은 사례들이 있다.(자료사진)amseaman on Unsplash

국내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2013년 경기 성남시 태평동에 위치한 주민교회는 38년간 사용한 교회 건물을 허물고 지하 2층, 지상 12층 규모의 복합건물을 건물을 새롭게 건립했다.

지하 공간과 찻집, 소모임을 위한 공간을 제외한 공간은 상업시설과 주거시설로 교인과 주민들에게 분양한 바 있다. 임대가 아니라 분양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진입장벽이 높았지만, 실험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용도로 지어진 공간을 일정 시간만 교회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고등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높은뜻푸른교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업공간인 카페와 같은 공간을 시간대별로 대여하는 교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1년 동안 공동체지도력훈련원에서 공부하며 알게 된 '밝은누리공동체'는 특정한 건물을 교회로 두지 않는다. 작은 규모로 모여 공동체 구성원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한 달에 한번 정도 정기적으로 다 같이 모여 전체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 건물로서 물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공간은 필요하지만, 건물만이 다는 아니다

과거 신앙생활을 할 때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죠'라는 한 CCM이 유명했었다. 당시에 즐겨 들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 댄스팀을 만들고 춤을 따라서 추면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곳에 대형교회가 건축되었다.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건 신이 아니라 은행이 하신(?) 일 아니었을까.

신약성서에서 '교회'로 번역되는 용어인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예수를 믿는 공동체와 모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비신자도 알겠지만, 교회는 건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모임과 공동체 활동을 위해서 건물은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는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라 음악, 체육 등 문화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기능을 갖춘 건물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교회 건축물을 지어서 성도들에게 '대출금 십자가'를 지워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목사를 비롯한 주요 의사 결정자들의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신을 향한 믿음인지 믿음을 빙자한 욕망인지, 사리분별이 필요하다.

 공간은 필요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교회 건축물을 지어서 성도들에게 '대출금 십자가'를 지워서는 안 될 것이다.
공간은 필요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교회 건축물을 지어서 성도들에게 '대출금 십자가'를 지워서는 안 될 것이다.dvbarrantes on Unsplash

대한민국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부동산 공화국 아닌가. 교회가 건축물을 넘어 이제는 대놓고 돈을 탐해 부동산 알박기까지 이르렀다. 부동산에 제대로 물들어버렸다. 교회가 '부동산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도 되는 것일까.

교계는 오래전부터 신도 수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속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의 신도 수가 줄어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한 사람으로서, 시대에 발맞춘 교회의 화려한 변신이 씁쓸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brunch.co.kr/@rulerstic에도 실립니다.
#교회와부동산 #성전건축 #교회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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