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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세상 떠난 다섯살 아들에 길동무 붙여준 부모

[한국의 유물유적] 경주 금령총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된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

등록 2025.02.11 11:53수정 2025.02.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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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라인들이 흙으로 빚어낸 토우와 국보로 지정된 ‘토우장식 항아리’와 ‘기마인물형 토기’를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1600여 년 전 신라인의 삶과 죽음, 성과 사랑 등 신라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면을 들여다봅니다.[기자말]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된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 마치 하인이 앞장서서 주인을 안내하는 모습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자료와 국립광주박물관 전시회에서 촬영).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된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 마치 하인이 앞장서서 주인을 안내하는 모습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자료와 국립광주박물관 전시회에서 촬영).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발굴현장이나 박물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흙으로 빚은 '토기(土器)'들이다. 토기는 시대와 지역과 국경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흔한 유물이다. 선사시대 때부터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했고 누구나 필요했던 기물이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고유하고 특색 있는 토기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서사를 풀어내는 일은 꽤나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박물관에도 다른 유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토기들이 전시 중이다.


그 많은 토기들 중에서 현재 단 3건(5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모두 다 5~6세기 초에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만들어진 토기들이다. 이 시기에 신라와 가야에서 빚어진 토기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신라와 가야의 토기들은 다른 지역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낸 '연질토기(軟質陶器)'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이 토기들은 1000℃이상의 고열로 구워낸 '경질토기(硬質土器)'이기 때문이다. 신라와 가야는 일찍이 기원전부터 제철기술이 발달하여 용광로에서 고열을 얻어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라 경질토기의 대표라 할 수 있고 전편에서 봤던 토우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토우장식 항아리와는 분위기가 다른 토기가 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형태를 본떠서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었기에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된 상형 토기 한쌍(2점)을 살펴보자.

어린 왕자 무덤에서 나온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

 주인상. 높이 23.4㎝, 길이 29.4㎝다. 주인상이 하인상 보다 약간 크다. 고깔 형태의 띠와 장식이 있는 삼각모를 쓰고 격자무늬 바지를 입고 있다
주인상. 높이 23.4㎝, 길이 29.4㎝다. 주인상이 하인상 보다 약간 크다. 고깔 형태의 띠와 장식이 있는 삼각모를 쓰고 격자무늬 바지를 입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되고 3년이 지난 1924년 경주 대릉원 북쪽 근처 노동리 고분군에서 또 다른 발굴이 시작됐다. 대릉원 지역 안에서 중소형 크기였던 이 무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일본인 학자들은 금관총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돌무지덧널무덤에서도 금빛 찬란한 금관이 출토되기를 기대했다.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얼마를 파내려 가자 휘황찬란한 금관과 금제 허리띠, 귀고리, 금팔찌 금방울 등 금제 장신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이름을 금방울이 많이 나왔다 해서 '금령총(金鈴塚)'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다른 무덤에서 나온 금관들과 달랐다. 비교적 간소한 형태였고 크기도 작았다. 화려한 곡옥 장식은 달려있지 않았다. 금관의 지름 역시 천마총이나 금관총, 서봉총에서 나온 것이 보통 20cm 전후인데 비해 금령총 금관은 16cm로 아주 작았다. 그만큼 피장자의 머리가 작았다는 뜻이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제 허리띠. 다른 신라 금관과는 다르게 국보가 아닌 보물로 지정됐다. 금관과 금제 허리띠가 작아서 무덤의 주인공을 5살 전후에 요절한 어린 왕자로 추정한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제 허리띠. 다른 신라 금관과는 다르게 국보가 아닌 보물로 지정됐다. 금관과 금제 허리띠가 작아서 무덤의 주인공을 5살 전후에 요절한 어린 왕자로 추정한다국가유산청

금제 허리띠의 길이 또한 74cm로 아주 짧았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허리띠는 125cm였다. 무엇보다 더 금관이 놓였던 머리에서 발찌가 놓여 있던 발목까지의 거리가 약 90cm 정도라는 점이다. 이는 곧 이 무덤의 피장자가 1m 정도 키를 가진 어린 아기였다는 것을 추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런 점을 종합해서 무덤의 주인공은 왕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요절한 5살 전후의 어린 왕자로 추정하고 있다. 금령총 금관과 금제 허리띠는 다른 금관과 달리 국보가 아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6세기초 마립간 시기에 조성된 어린 왕자의 무덤인 금령총의 대표 유물은 금관이 아니라 따로 있다. 이곳에서는 금관이나 금제 유물 외에도 동물이나 사물의 형태를 본뜬 상형토우들이 많이 출토됐다. 금령총에서 발견된 토우는 그릇의 뚜껑이나 몸체에 부착된 장식용 토우가 아닌 독립적 조형품으로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인상. 높이 21.3㎝, 길이 26.8㎝이다.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등에 짐을 메고 오른손에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다
하인상. 높이 21.3㎝, 길이 26.8㎝이다.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등에 짐을 메고 오른손에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두 점의 유물이 있다. 무덤 주인공이 누워 있던 머리 근처 부장품들 사이에 넘어진 채로 발견된 '기마인물형 토기'가 그것이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형상의 토기로 마치 누군가를 모델로 한 조각품처럼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경질토기다.

두꺼운 직사각형의 판(板) 위에 두 인물이 각각 다리가 짧은 조랑말을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주인과 하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의복과 말갖춤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주인상은 높이 23.4㎝, 길이 29.4㎝이고 하인상은 높이 21.3㎝, 길이 26.8㎝로 주인상이 조금 더 크다.

주인은 머리에 고깔 형태의 삼각모(三角帽)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다. 하인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맸고 상투를 틀었다. 윗옷을 벗은 맨몸 상태로 등에는 봇짐을 메고 있고 오른손에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마치 하인이 주인을 안내하고 있는 모습이다.

 기마인물형 토기 발견 당시의 모습. 무덤 주인공의 머리맡에서 넘어져 있는 상태로 발견 됐다. 주인을 천상으로 안내하듯 하인상이 주인상 앞에 놓여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기마인물형 토기 발견 당시의 모습. 무덤 주인공의 머리맡에서 넘어져 있는 상태로 발견 됐다. 주인을 천상으로 안내하듯 하인상이 주인상 앞에 놓여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국립중앙박물관

말의 모양새도 조금 다르다. 주인의 말에는 두 귀 사이에 뿔 같은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고삐·안장·발걸이·다래·말띠드리개 등 각종 말갖춤새가 정교하게 표현돼 있다. 반면 하인의 말에는 장식이 그다지 많지 않고 정교함이 떨어진다.

이 토기는 두 개의 배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어린 나이에 요절한 왕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해 내세로 인도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 특별히 주문 제작해 무덤에 넣은 주술적 목적의 '명기(明器)'로 해석한다.

그런데 뱃머리에 앉아서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들의 모습이 매우 해학적이면서도 특이하다. 뱃사공 한 사람은 혀를 메롱하고 내밀고 커다란 성기를 내놓고 있다. 이처럼 성기를 강조하는 표현은 전통적인 신라 토우에서 자주 등장하는 양식이다.

 금령총 기마인물형 토기와 함께 발견된 배 모양의 토기
금령총 기마인물형 토기와 함께 발견된 배 모양의 토기국립중앙박물관

 뱃머리에 앉아 있는 뱃사공은 혀를 내밀고 성기를 내놓고 있다. 성기를 강조하는 표현은 전통적인 신라의 토우 양식이다
뱃머리에 앉아 있는 뱃사공은 혀를 내밀고 성기를 내놓고 있다. 성기를 강조하는 표현은 전통적인 신라의 토우 양식이다국립중앙박물관

주전자일까 등잔일까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 토기의 용도를 조사한 바 있다. 보존과학부의 CT촬영 결과 기마인물형 토기는 물이나 술을 담았던 주전자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말 몸통 내부에 약 240cc 정도의 술이나 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말 꽁무니 쪽에 달려있는 넓고 둥그런 주입구의 구멍으로 술이나 물을 담은 다음 말의 앞가슴에 달려 있는 대롱을 통해 따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 주전자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한편에서는 이 토기를 주전자로 보지 않고 어둠을 밝히는 데 사용한 등잔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21년 부산대학교에서 고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정수씨의 '신라 기마인물형 토기의 용도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그는 실제로 기마인물형 토기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했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의 CT촬영 결과 말의 몸통 내부에 약 240cc 물이나 술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이 토기의 용도를 주전자로 추정했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의 CT촬영 결과 말의 몸통 내부에 약 240cc 물이나 술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이 토기의 용도를 주전자로 추정했다국립중앙박물관

실험결과 주입구로 물을 넣으면 곧바로 출구로 물이 뿜어져 나와버리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주전자의 기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내부 공간이 너무 작아(240cc) 주전자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등잔으로 사용할 때는 안에 기름을 넣으면 심지를 넣는 주 출구 쪽으로 기름을 밀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실용적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모의 등잔 실험 후 모형품 표면에 생긴 등잔 사용 흔적과 똑같은 흔적을 실제 기마인물형 토기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실제로 등잔으로 사용했던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듣고 보니 꽤나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주전자로 사용했을까 아니면 등잔이었을까. 15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온갖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그 쓰임새가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주인(좌)과 하인(우)
주인(좌)과 하인(우)국립중앙박물관

이 토기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나이에 요절한 아들이 천상에서 부디 영생하길 바라는 부모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식의 무덤에 넣어준 '명기(明器)'임에는 틀림없다.

기마인물형 토기는 신라 5~6세기 마립간 시기의 마구 및 마장(馬將)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라의 시그니처 유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62년 일찌감치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매거진 <대동문화>147호(2025년 3, 4월)에도 실립니다.
#국보기마인물형토기 #금령총발굴토기 #주인상 #하인상 #신라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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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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