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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질락의 논설, '조국은 금치산자'

[광복80주년명문100선 31] <청맥>의 창간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폭압에 짓눌려 있던 1960년대 참신한 청량감을 던져주었다

등록 2025.02.08 15:51수정 2025.03.2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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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고 학생들의 한일회담반대운동 관련 신문 기사(경향신문, 1964. 3. 27) 1964년 3월 27일 900여 명의 영등포고 학생들은 중앙청 앞까지 진출하여 박정희 군사정권의 굴욕적 한일회담 추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영등포고 학생들의 한일회담반대운동 관련 신문 기사(경향신문, 1964. 3. 27) 1964년 3월 27일 900여 명의 영등포고 학생들은 중앙청 앞까지 진출하여 박정희 군사정권의 굴욕적 한일회담 추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향신문사

진보적인 소장 지식인들이 1964년 8월 월간 <청맥(靑脈)>을 창간했다. 발행인은 김진환이고 김질락과 이문규가 주도하였다. <청맥>의 주간으로 이 잡지를 창간한 김질락은 193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 문리대를 졸업, <경남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내고 삼촌 김종태를 만나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문규는 신의주 출신으로 6.25 당시 대구로 피난하여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를 졸업하고 김종태를 중심으로 <청맥> 창간에 참여했다. 이 잡지는 창간사에서 "민족사적 제과제 해결에 견결한 인소(因素)며 과정일 수밖에 없는 창조·투쟁·발전을 절규하며 유린된 사회정의를 바로 잡고 민족의 올바른 진로를 제고하며 불패의 정의편에 서서 민족대의를 고창하고 주권국민의 긍지를 유지하여 대중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생명력을 평이하게 다루어 겨레의 욕구를 발표하고 지표를 제시하는 중임을 맡아 보려 한다."고 선언했다.

<청맥>의 창간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폭압에 짓눌려 있던 1960년대 중기 지성계에 참신한 청량감을 던져주었다. 여타의 잡지에 비해 비교적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동시에 매우 비판적이고 참신한 글을 실어서 청년 엘리트들의 인기를 모았다. 잡지사에는 젊은 대학강사, 대학원생, 기자들의 토론장이 되었다.

김질락은 이들을 중심으로 '새문화연구회'라는 학술단체를 만들어 고정 필자의 풀(Pool)로서 활용하고자 하였다. 정부는 이 조직을 불온시하고 김질락의 권두언을 문제삼아 소환 조사하고,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통혁당사건으로 이들을 엮어 50여 명을 구속했다.

<청맥>은 사건 발표와 함께 폐간되고, 핵심멤버인 김질락과 이문규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처형되고, 신영복·오병철·이재학은 각 20여 년의 옥고를 치른 끝에 석방되었다. 당국이 <청맥>에서 문제로 삼은 김질락의 논설은 <조국은 금치산자>(1964년 12월호), <저무는 갑진년에 부친다>(1964년 12월호 권두언), <4.19여 생동하는가>(1966년 4월호) 등이다.

김질락의 생명을 앗아간 논설 <조국은 금치산자> 의 앞 부문이다.

조국은 금치산자
해답 없는 수식


우리는 최후적이며 가장 매력적인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즉 역사상 존속하는 것이 무엇이며 없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또 혼란과 변천으로 충만된 잡다한 기록 중에서 영속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수한 정복과 유린을 넘어서 제국의 몰락과 고대 교리의 점차적인 소멸을 초월하여 존속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처음부터 각 시대의 과정을 밟아 오면서 끝까지 살아 남은 것은 무엇일까?
거짓 없는 역사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곧 민족임을 알 수가 있다.


민족이란 언제나 혈통과 환경에서 형성되며 조건과 경험에 따라서 변형되는 사회적 생명체다. 생명의 계속성은 고식적인 교리나 사장된 제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유동 발전한다. 따라서 민족은 가정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쇄신되고 계속성을 갖는다.

민족의 관념은 사회적 통일의 개념보다도 더욱 보편적이며 더욱 현실적인 내용을 갖는 동시에 국가 그 자체와도 같이 포괄성을 갖는다.

시민권이 국가권력에 의하여 부여된 개인의 권리 의무임을 반하여 민족은 관습과 환경에서 싹튼 자연적 발생이다. 때문에 민족을 만드는 어떠한 권력도 없으며 이를 파괴할 권력은 더욱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열강의 최근사는 제한된 범위 내의 침략으로서는 만족할 수 없는 실력과잉의 현저한 기록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과학적인 전략과 교묘한 심리작전 및 기만적인 외교전술로써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혈안이 되어 왔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끈덕진 '부의 공세' 앞에 빈곤한 약소국가들은 무조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낡은 제국주의의 시대는 가도 새로운 제국주의의 가능성은 완전히 봉쇄되지 못했다. 우리도 이러한 열강의 세력팽창에 희생된 민족이었다.

민족해방을 위한 해내외의 피어린 투쟁이 우리 혁명투사들에 의해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패전국의 경우와도 같은 수모를 면치 못했다. 해방 직후 전국에 걸쳐 일어났던 외병(外兵)에 의한 린치, 폭행, 부녀강간, 약탈 등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며, 구한말의 정정(政情)이 그러했듯이 태풍처럼 들이닥친 방대한 외세의 열풍에 휘몰려 우리는 '이것의 앞잡이'가 아니면 '저것의 충복'으로 끌려 다녔다. 말하자면 우리들의 조국은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을 송두리쨰 상실한 금치산자였다. 모든 문제는 우리들의 밖에서 일어나서 우리들의 밖에서 요리되었고 우리들의 의사표시와 모든 행위는 숨은 대리인에 의하여 임의로 처리되었다. 우리에겐 혈투의 권리주장마저 거부되었고, 우리는 타인의 의사에 맹종하며 생존하는 기구로서 '호츠 푸로그'처럼 고향을 상실하고 말았다. 양심의 제재가 행위를 지배하지 못하고 타율적 세력이 '양심의 체제'를 파괴했다.

역사에 역류하는 저들의 제국관에 도전하여 새로운 민족자결의 운기(運機)는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고, 무거운 냉전의 짙은 안개 속에서도 민족의 등불을 밝히는 보헤미안의 행렬은 휴식이 없었다. 문명이 외면했던 암흑대륙에도 민족의 횃불이 크게 타오르고 '내 나라'를 외치는 절규는 오대양과 육대주에 메아리쳤다.

악과 비극의 남북한 20년을 낭비하면서 우리도 한결같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목마르게 외쳤고, 끊임없이 내 나라 내 겨레의 유일한 주인임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해답 없는 수식처럼 우리는 시행착오만을 거듭해야만 했고 조국의 통일문제는 언제나 어느 한계선에서 되돌아서지 않으면 안 되는 터부가 되어 왔었다. (주석 1)

주석
1> 김질락, <조국은 금치산자>, <청맥>, 1964년 12월호.
덧붙이는 글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광복80주년명문80선 #명문80선 #광복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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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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