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1947~1990)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출감 후 장기간 수배중이던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했고 80년이 되자 사법고시 합격이 인정되어 변호사가 된다.
조영래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이 사건의 개요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청계권의 봉홧불
1976년 11월 13일 서울 동부 지역에 있는 의류상가 지역인 평화시장에서 소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12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들의 직업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모인 직후 경찰과 시장 경비원이 달려와서 시위를 해산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이 시위자들은 평화시장 봉제공장 지역에서 일하는 12명의 젊은 재단사로 구성된 삼동회(三棟會)라는 작은 집단의 회원들이었다.
이 집단을 조직하고 또 시위를 조직한 사람은 스물 두 살의 젊은 재단사 전태일(全泰壹) 이었다.
시장 경비대와 경찰의 경비망이 평화시장 일대를 삼엄하게 에워싼 가운데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의 몸은 즉시 화염으로 휩싸였다. 놀란 구경꾼들은 전태일이 불꽃 속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사람들은 그가 근로기준법 책자를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책자는 전태일이 수년 전 중고 책방에서 발견하고 기피했던 책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노동관계법이 놀랍게도 양호한 노동조건과 노동자 임금을 규정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열심히 노동법 책을 읽었고 그 법에 희망을 걸었다.
정부당국이 고용주들로 하여금 근로기준법을 지키게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정부 당국이 여러 통의 편지를 썼으나 결국은 정부도 고용주도 이 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만을 깨달았다.
그의 동료들이 전태일의 몸에 붙은 불을 껐을 때 그의 몸은 이미 검게 타버렸다.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전태일은 동료들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 이소선(李小仙)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어머니…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며, 다시 어머니에게 "어머니……배가……고파요"라고 말했다. (주석 1)
주석
1> 조영래, <전태일 평전>, 20~21쪽, 돌베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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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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