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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광복80주년명문100선 32] "어머니…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등록 2025.02.09 17:15수정 2025.03.2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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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책 표지 1983년 전두환 5공 정권 시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저자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에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1991년 개정판을 낼 때 저자가 인권변호사 조영래였음을 밝혔다. 조영래 변호사는 개정판 발간을 앞두고 1990년 12월 폐암으로 작고했다. <전태일 평전>에 점심을 굶는 어린 여공들에게 버스차비로 풀빵을 사주는 청년 전태일의 따뜻한 인간애가 펼쳐저 나온다.
▲<전태일 평전> 책 표지 1983년 전두환 5공 정권 시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저자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에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1991년 개정판을 낼 때 저자가 인권변호사 조영래였음을 밝혔다. 조영래 변호사는 개정판 발간을 앞두고 1990년 12월 폐암으로 작고했다. <전태일 평전>에 점심을 굶는 어린 여공들에게 버스차비로 풀빵을 사주는 청년 전태일의 따뜻한 인간애가 펼쳐저 나온다. 하성환

한국의 1970년대는 1인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의 후유증으로 연대가 바뀌면서 암울한 상태로 개막되었다. 1971년의 유신쿠데타와 잇따른 긴급조치 등으로 '겨울공화국'이 된 것이다.

70년대의 서막은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30분경, 한 청년이 전신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절규하면서 쓰러졌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아무도 덤벼들어 불을 끄지 못하고, 전신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청년은 병원에 실려갔으나 끝내 회생하지 못한 채 산화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을 전후로 하여 갈린다. 이 사건 이전에는 노동운동이라 할 수 없을만큼 열악한 상태였다. 어용노조가 판치고 참여자도 소수여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새 장을 열게 되었다.

대학가, 종교계, 노동자들은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추도회와 각종 추모행사를 벌여 노동운동이 사회의 관심사로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1월 18일 노동단체장으로 장례식이 엄수되고 11월 27일 1970년대 최초의 민주노조인 '전국연합노조 청계회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전태일은 하루 14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독서와 일기 쓰기를 계속하였다. 그가 쓴 일기는 상당부분 남아있다. 그의 일기와 편지, 관계기관에 보낸 진정서 등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돌베개, 1988)"라는 책으로 정리되었으며, 일기와 주변 사람들의 구술 등을 기초로 그의 짧은 삶을 기록한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전집>(돌베개, 1983)이 간행되어 노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각성을 주었다. 1995년에는 그의 삶을 영화로 옮긴 〈아름다운청년 전태일〉(박광수 감독)이 국민모금 방식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조영래(1947~1990)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출감 후 장기간 수배중이던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했고 80년이 되자 사법고시 합격이 인정되어 변호사가 된다.
▲조영래(1947~1990)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출감 후 장기간 수배중이던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했고 80년이 되자 사법고시 합격이 인정되어 변호사가 된다. 조영래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이 사건의 개요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청계권의 봉홧불

1976년 11월 13일 서울 동부 지역에 있는 의류상가 지역인 평화시장에서 소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12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들의 직업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모인 직후 경찰과 시장 경비원이 달려와서 시위를 해산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이 시위자들은 평화시장 봉제공장 지역에서 일하는 12명의 젊은 재단사로 구성된 삼동회(三棟會)라는 작은 집단의 회원들이었다.


이 집단을 조직하고 또 시위를 조직한 사람은 스물 두 살의 젊은 재단사 전태일(全泰壹) 이었다.

시장 경비대와 경찰의 경비망이 평화시장 일대를 삼엄하게 에워싼 가운데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의 몸은 즉시 화염으로 휩싸였다. 놀란 구경꾼들은 전태일이 불꽃 속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사람들은 그가 근로기준법 책자를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책자는 전태일이 수년 전 중고 책방에서 발견하고 기피했던 책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노동관계법이 놀랍게도 양호한 노동조건과 노동자 임금을 규정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열심히 노동법 책을 읽었고 그 법에 희망을 걸었다.

정부당국이 고용주들로 하여금 근로기준법을 지키게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정부 당국이 여러 통의 편지를 썼으나 결국은 정부도 고용주도 이 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만을 깨달았다.

그의 동료들이 전태일의 몸에 붙은 불을 껐을 때 그의 몸은 이미 검게 타버렸다.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전태일은 동료들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 이소선(李小仙)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어머니…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며, 다시 어머니에게 "어머니……배가……고파요"라고 말했다. (주석 1)

주석
1> 조영래, <전태일 평전>, 20~21쪽, 돌베개, 1998.
덧붙이는 글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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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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