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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2.14 13:48수정 2025.02.14 14:1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찔레꽃 열매다. 붉은 열매이긴 하지만 새들이 먹는 것은 못 보았다. 먹을 수 있는 것이면 겨우내 조금이라도 식량 걱정이 덜텐데 아쉽다.
김은아
겨울 마당에서 만난 작은 새
아직 눈이 다 녹진 않았지만, 햇살이 포근한 것이 봄기운이 돈다. 들판에는 곡식 대신 마시멜로처럼 하얀 포장에 싸인 볏짚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나무엔 열매 하나 없고, 마당에도 줄 것이 없는데, 아침이면 작은 새들이 어김없이 몰려들어 가지마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열매라고 생긴 것은 찔레꽃 열매뿐인데도 매일 오는 작은 새들.
부리는 짤막한데 끝이 날카롭고, 몸에 비해 조금 넓어 보인다. 날개와 꽁지에는 세련된 검은 줄무늬가 있는 조끼를 입은 듯하다. 가슴은 보송보송한 잿빛과 갈색빛 털로 뒤덮여 있고, 반짝이는 까만 눈은 마치 작은 보석 같다.
손가락으로 툭 치면 굴러갈 것만 같은 게 살이 아주 통통하게 쪄서 귀엽다. 겨울에 먹을 것도 없었을 텐데 무엇을 먹고 살이 쪘나 궁금도 하다. 덩치 큰 비둘기나 까치는 금세 알아보는데, 도대체 이 작은 새 이름은 뭘까.

▲들깨를 쪼아먹는 참새 무리들길바닥에 참새 떼가 열심히 무언가를 쪼아먹고 있다. 가서 보니 작년 가을 들깨 타작을 하고 남은 들깻대에서 남은 알곡들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즐거운 가보다.
김은아
참새를 처음 마주한 순간
매일 보던 그 새가 눈더미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주워 먹고 있다. 무언고 보니 들깨 타작을 하고 남은 들깻대에서 알곡들을 찾아 먹는 것 같다. 얼마나 맛있는지 날갯짓하며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것처럼 보인다. 교대를 하는지 배를 채운 한 녀석이 덤불로 날아가면 다른 녀석이 와서 또 열심히 쪼아먹는다. 나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먹이 삼매경에 빠진 것을 보면, 사람과는 꽤 가까운 짐승(?)인가 보다. 이런, 이것들이 참새란다.
너무도 당연한 존재라서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 했나 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참새가 복어 배 마냥 몸이 불룩한 것은, 겨울 털갈이를 하면서 깃털 사이에 공간이 생겨서란다. 사람으로 말하면 일종의 내복이자 건물의 단열재인 셈이다. 한 벌 털옷으로 사계절을 참 알뜰하게도 산다. 신비하다.
"엄마, 참새가 어떻게 생겼어?"
"참새가 밤에는 눈이 어두워. 처마에 손을 넣으면 쏙 잡히지. 낮에는 소쿠리에 쌀을 뿌려두고 기다리면 돼. 그걸 먹으러 들어오면 소쿠리를 확 잡아채는 거야. 그걸 불에 구워 먹으면 정말 고소해. 담백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생겼냐고."
"참새가 참새같이 생겼지."
이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엄마의 기억 속에 참새는 그저 '고소하고 맛있는 고기'였다. 그도 그러할 것이 80년대에 포장마차 인기메뉴가 참새구이였고, 한때는 참새가 부족해 병아리도 참새구이로 둔갑했다고 한다. 통구이로 잡혀가고, 도시화로 인해 살 곳이 없어지니 도심에서 참새 보기 어려운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이제는 운전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참새를 만나면 한참을 바라본다. 무엇을 하는지, 뭘 먹는지, 왜 거기에 있는지 말이다. 조그만 게 정말 귀엽다. 이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참새들의 먹이를 품고 있는 덤불가으내 쑥부쟁이들과 쑥, 각종 풀들이 자라던 곳이다. 땅에 떨어진 씨앗을 주워 먹는다. 큰말똥까리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면 이 작은 새들을 주시하기도 한다.
김은아
마을 어귀 덤불을 참새들이 주거래 식당으로 애용하는 것 같다. 가으내 흩뿌려진 쑥부쟁이나 쑥 같은 풀의 씨앗을 주워 먹는 것이다. 그 위로 큰말똥가리가 입맛을 다시며 날아다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연의 순리인 것을.
큰말똥가리가 호시탐탐 노리지만 참새는 날카로운 수리의 눈을 피해 열심히 일하고 먹고, 또 짹짹거린다. 포식자만 의식하고 살면 아마 참새들이 심장마비로 진즉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참새를 보니 그런 것 같다. 지나치게 신경 쓰고 살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며, 자신있게 순리대로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유치원 때부터 줄곧 배운 '참새 짹짹'인데, 왜 보고도 몰랐을까? 전깃줄에 앉은 참새 이야기만도 넘쳐나는데. 세상에 바보는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참새 사진을 몇 사람에게 보내고 "이 새가 무슨 새지?"라고 묻는 말에 자신 있게 참새라고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또 다른 바보는 원앙이라고 답을 하기도 했다. 아이코.
참새는 늘 우리 곁에 있었는데…. 참새가 도시를 떠나지도 모르고... 참 무심도 했다. 미래에는 참새가 아예 멸종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릴 적 집 처마 밑에는 새집이 있었다. 제비든 참새든, 우리와 같이 살았다. 하지만 고층 건물이 늘어나면서, 둥지를 틀 곳도 사라졌다.
화려한 불빛 속에서 잠을 자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먹을 만한 곤충도 없으니 스트레스에 찌든 참새가 결국 도시를 떠나버린 것이다. 제비도 마찬가지다. 강남 갔다 온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제비는 오지 않았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살았던 참새도 제비도 모두 떠나가고, 그 자리엔 비둘기가 남아있다.
작은 이웃에게 인사를

▲출근 도장찍는 참새들오늘도 어김없이 왔다. 창 너머로 작은 이웃들에게 눈 인사를 해 본다.
김은아
'방앗간 참새'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듯이, 얌통맞게 곡식을 콩새같이도 쪼아먹어 때로는 밉살맞기도 했던 참새.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 들어 언제나 같이 살았던 그 참새를 이제 보기가 쉽지 않다. 참새가 없는 도시. 그것은 단순한 생태계 변화만은 아닐 테다. '참새는 어디로 갔을까?' 옆에 있을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사라졌을 때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오늘도 내일도 전깃줄에 앉아 있겠지 했던 새. 우리네 삶도 쉽지만은 않은데 참새들도 고단하기는 매한가지 같다. 세를 구할 수도 없고,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도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들이 정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집 난간에 작은 새 모이통을 놓아두거나, 마당 한쪽에 작은 쉼터를 만들어 놓으면 다시 우리 곁으로 올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데…. 아무리 바빠도 카톡 알림처럼 '짹' 소리가 들리면 창밖을 한 번 바라보는 건 어떨까. 매일 아침, 이 작은 이웃과 나누는 인사가 팍팍한 도시살이의 소박한 낭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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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공간구성을 위해 어떠한 경험과 감성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저의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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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 알아?" 늘 곁에 있는데 잘 모른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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