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릎 수술을 하신 엄마.
박정은
갓난쟁이를 업었던 엄마의 등은 어느새 압박골절로 인해 구부정했고, 딱딱한 플라스틱 보조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2년 전, 청천벽력같이 진단된 파킨슨병으로 인해 하루 세 번, 약을 챙겨 먹지 않으면 단순한 걸음도 쉽지 않은 몸이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위 선종 제거, 자궁 적출, 무릎 인공 치환술 등을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그 시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딸의 곤경을 돕기 위해 왔던 그녀는 이제 딸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이전과 같은 기세가 사라진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이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1949년생 내 엄마를 비껴가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인간사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아직은 정신도 온전하고, 화장실도 혼자 다니기에 돌봄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점차 증상이 심해지고 몸을 잘 가눌 수 없게 되면, 그때는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막을 길이 없다. 물론 나 혼자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가 코앞에 와 있고, 노인 돌봄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돌봄'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돌보는 대상의 주 보호자가 사회적 정의로서의 노인(65세 이상)일 경우, 이를 '노노(老老)돌봄'이라고 칭하게 된다. 어린아이 돌봄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가족과 이웃과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는 성장하고 독립하게 될 거라는 희망을 지닌 존재이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돌봄의 강도는 높아지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사회적 도움이 더욱 절실하다.
노인 돌봄은 대다수의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만큼, 우리 사회의 지대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노노돌봄 상황에 놓였던 시부모님을 보내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이제는 친정엄마의 돌봄을 위해 형제들과 논의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적으로 돌봄의 비극은 없어야

▲돌봄이 필요한 노인초고령화 사회, 노인 돌봄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픽사베이
최근 왕왕 접하게 되는 노인 돌봄 관련 뉴스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노노돌봄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 가족이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이웃과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더욱 확대되어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다.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노인의 건강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평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극한 돌봄의 상황이 없다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각 가정이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지니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 더불어 사는 시민으로서의 의식 또한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은 그런 일들을 위해 지혜롭게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초고령화 사회에서도 우리는 고통스럽기만 한 게 아닌, 안온한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엄마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애써 긍정의 손으로 먹먹한 가슴을 도닥여 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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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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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에 무릎 수술... 49년생 엄마가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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