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한 손에 들려있는 블랙베리 스마트폰. 물리 키보드가 달린 클래식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반짝이는 화면과 묵직한 키보드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용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라내하
한동안 갤럭시 S23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스마트폰이 주는 편리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완전히 놓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늘 앱을 깔아두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십 개의 앱이 깔려 있지만 정작 쓰는 건 몇 개뿐. 그런데도 새로운 기능이 나오면 꼭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설치한 이유도 까먹은 채, 불필요한 것들을 계속 유지하며 살아간다.
블랙베리를 사용하면 그런 디지털 강박에서 자연스럽게 해방된다. 앱이 애초에 설치되지 않으니, 불필요한 선택을 할 필요조차 없다. 스마트폰을 덜 보게 되고, 결국 정말 필요한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왜 앱을 깔아두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
"정말 필요한 것과 단순히 있어야 할 것 같은 것의 차이는 뭘까?"
나는 그 답을 블랙베리를 통해 찾아가는 중이다. 블랙베리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물리 키보드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키감, 눌릴 때 들리는 작은 소리, 감각적인 디자인.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도 블랙베리를 보면 생각한다.
"삼성이 블랙베리 같은 폰을 만들어줬다면, 나는 당장 샀을 거야."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예뻐야 한다.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블랙베리의 키보드는 작아서 불편하다. 타이핑 속도는 느려지고, 답장도 짧아진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소통처럼 느껴진다.
블랙베리는 느리다. 최신폰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 가끔은 한 박자 쉬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느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다림이란, 바쁜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숨 돌리는 시간이다."
메시지가 늦게 도착해도, 앱이 천천히 열려도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세상에서, 이 작은 딜레이는 오히려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이제 나는 최신폰이 아니라, 내게 맞는 폰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이 선택이 현대 사회에서 일부 기능을 포기하는 일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연결되고 있다.
빠른 속도와 넘치는 정보가 전부가 아닌 삶, 블랙베리는 그걸 깨닫게 해주는 도구다.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예쁜 쓰레기'가 새로운 가능성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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