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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불꽃비가 우수수... 사람들 탄성 터져 나온 장면

바깥 사람들 불러 모은, 부여 수원2리 마을 특색 '낙화 놀이' 사연 소개합니다

등록 2025.02.12 11:26수정 2025.02.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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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는 순간을 표현한 '낙화'라는 말은 참으로 처연한 단어이다. 낙화를 결별이나 이별에 비유한 시들은 또 얼마나 사람을 처량하게 하는지. 부여 사람들에게 낙화라는 단어는 낙화암에 얽힌 스토리만으로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양가감정의 단어이다.


지난 가을 어느 날부터 '낙화 놀이'라는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낙화라는 단어에 '놀이'를 붙이니 반전처럼 뭔가 재미있는 일이 발생할 것 같은 어감으로 들렸다.

'하늘에서 꽃 내린다'는 낙화 놀이 아시나요

찾아보니 낙화 놀이는 뽕나무 숯가루, 사금파리 가루, 소금, 목화솜 등을 한지에 말아서 만든 낙화봉을 줄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불꽃이 탁탁 튀며 내리는 모양을 보고 즐기는 놀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전통 불꽃놀이에 해당한다.

낙화놀이 불꽃 지난 가을 부여군 양화면 수원2리 마을에서 시연했던 낙화놀이의 한 장면
낙화놀이 불꽃지난 가을 부여군 양화면 수원2리 마을에서 시연했던 낙화놀이의 한 장면오창경

이는 정월대보름 민속 행사로 마을에서 해오던 놀이로, 여러 지역에서 '낙화 내린다', '꽃 내린다'라고 하며 즐겼다고 한다.

부여군 양화면 수원 2리, 처음으로 부여에서 낙화놀이를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16일 오후 5시 30분. 약 30 가구 5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에서 낙화 놀이를 마을 사업으로 발굴해서 사람들 앞에 보인 것이었다.


"저출산 고령화를 피해 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우리 수원 2리 마을도 고령인구 비율이 70%에요. 남아있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관계 인구 유입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잖아요. 낙화 놀이를 통해 우리 마을을 알리고, 또 살려 내고 싶었어요."

송재수 추진 위원장은 낙화 놀이를 수원 2리 마을의 최적화된 사업으로 만들기로 마을 사람들과 마음을 모았다. 비어있는 육묘장은 선행사업 결과물을 전시할 공간으로 꾸미고, 육묘장 앞 빈터에 물을 가둬 낙화 놀이를 감상할 축제장으로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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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2월9일 부여 백마강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에서 시연한 낙화놀이 백마강 전망대의 화려한 불빛과 어울려 환상적인 낙화불꽃을 만들어낸 부여군 양화면 수원2리 마을의 낙화놀이 ⓒ 송재수


낙화 놀이는 우리 전통 민속놀이지만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지방의 몇몇 마을에서 명맥을 이어오고는 있기는 했다.

기록에 의하면 낙화 놀이는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겨루기를 하기도 했단다. 질병과 재액을 쫓고 경사를 부르는 액막이 성격의 놀이였다고 한다.

하늘에만 의지하며 농사를 지었던 농경시대에는 매사 조심스러웠고 수많은 신들의 분노가 영농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농사를 쉬는 시기에는 농사의 신들을 즐겁게 하고 사람들도 즐기는 놀이를 하며 지냈다. 즉, 낙화 놀이 역시 농사의 신들에게 감사하고 불로 잡신들을 정화하는 상징성을 담아 즐겼던 놀이였다.

매일 마을회관 모여 1천개 낙화봉 만든 주민들

수원 2리 마을 사람들은 거의 매일 마을회관에 모여 낙화 놀이를 위해 말린 쑥과 숯가루, 한지 등의 재료를 준비하고 97세의 어르신까지 함께 1천여 개의 낙화봉을 만들며 본격으로 낙화 놀이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다.

부여군 양화면수원2리 사람들이 함께 만든 낙화봉들 옹기종기 하냥살아가는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마을을 위해 97세 어르신의 손품까지 보태서 만든 낙화봉들
부여군 양화면수원2리 사람들이 함께 만든 낙화봉들옹기종기 하냥살아가는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마을을 위해 97세 어르신의 손품까지 보태서 만든 낙화봉들오창경

마을 축제 전야, 낙화봉을 줄에 매달던 마을 사람이 시험 삼아 대여섯 개의 낙화봉에 불을 붙였다, 초저녁 어스름에 낙화봉의 불꽃이 지는 꽃잎처럼 땅으로 쏟아졌다. 어두운 빈 들에 난데없이 꽃잎이 분분하게 지고 있었다.

꽃 피는 시기가 길지 않은 것처럼 낙화의 화려한 시간도 길지는 않았다. 낙화봉에 꽃이 피는 동시에 수면 위에도 꽃이 피었다가 작은 꽃잎들로 흩어져 점점이 흩날리는 것이 비쳤다.

흩날리는 불꽃비들이 숙명 같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가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쩌면 용접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것 같기도 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 불꽃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을 것 같다. 다만 축제마다 밤하늘에 화려한 불꽃을 쏘아대는 것을 보아 온 요즘 사람들의 눈높이는 만족시켜 주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웠다.

지난 가을 마을사업으로 마을에서 시연했던 낙화놀이 수원2리 마을 사람들이 하냥살이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1천여개의 낙화봉을 만들어 점화했던 낙화놀이의 불꽃들
지난 가을 마을사업으로 마을에서 시연했던 낙화놀이수원2리 마을 사람들이 하냥살이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1천여개의 낙화봉을 만들어 점화했던 낙화놀이의 불꽃들송재수

낙화 놀이 전야를 보고 돌아오는 길, 문득 머릿속에 쥐불놀이가 떠올랐다. 낙화 놀이를 보고나니, 어두운 공중에서 원을 그리고 허공으로 휙하니 날아오르다 사라지던 쥐불놀이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한국 전쟁으로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기 어려워지고 미군으로부터 흘러들어온 깡통이 거리에 굴러다닐 즈음 한국인의 창의력이 반짝였다.

겨울의 한복판 빈 들에 서서 인간 욕망의 화신 같은 불꽃을 빈 깡통에 담아 어깨에 힘을 실어 한껏 돌리는 놀이야말로 얼마나 역동적이며 아름다운가. 마을의 겨울 빈 논에는 밤마다 쥐불을 담은 깡통들이 날아다녔다. 그 놀이를 보고 반하지 않은 아이는 없었으리라.

정월대보름 민속놀이의 대명사가 된 쥐불놀이는 낙화 놀이가 개인화된 놀이는 아닐까? 역동성이 부족한 낙화 놀이의 단점을 보완해 진화된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화 놀이가 다른 민속놀이처럼 마을 곳곳에 전승되지 않은 이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 땀 한 땀 낙화봉을 만들어 줄에 매다는 품과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비해 불꽃은 너무 소박했다. 가성비가 맞지 않았고 볼거리가 적었다.

'놀이'란 역동성과 승부욕의 산물이다. 영화 오징어게임은 그 점을 정확하게 노렸고 적중했다. 낙화놀이는 역동성이 결여되었고 함께 즐기는 공동체의 욕구도 모호했다.

놀이에 집중하면서 농사 노동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인간의 본능에 감춰진 싸움과 전쟁의 욕구도 해소하는 것이 민속놀이의 욕망이다. 낙화 놀이는 그 욕망까지는 채워주지 못할 것 같았다.

공동체 회복하는 놀이... "느려도 즐겁게 가기로 했어요"

"제가 볼 때 낙화놀이는 아름답기는 한데요, 옛 선비들이 정자에서 가야금 뜯고 시를 읊으며 즐긴 것처럼 너무 고고하던데요.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역동적인 요소는 좀 부족한데요. "

"저희도 그 점이 고민이라, 마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많이 했어요. 우리 마을에서는 손품이 많이 드는 낙화봉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며 '하냥살이'(함께 살기를 뜻하는 부여 지역의 언어)부터 실현하려고요. 공동체란 말은 결국 '하냥살이'가 아니겠어요? 공동체를 복원하면서, 느려도 즐겁게 가기로 했어요."

부여군 양화면 수원2리 마을사람들 지난 9일 백마강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에서 낙화놀이를 위해 낙화봉을 매달며 수고한 마을 사람들.
부여군 양화면 수원2리 마을사람들지난 9일 백마강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에서 낙화놀이를 위해 낙화봉을 매달며 수고한 마을 사람들.송재수

지난 가을, 수원 2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연한 낙화 놀이를 감상하며 송재수 위원장과 이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수원 2리 마을 사업을 위해서 1인 다역을 해내며 분주한 송재수 위원장의 열정이, 낙화 불꽃보다도 뜨거워 보였다.

"저는 어린 시절 논 한가운데서 불장난하면서 놀던 추억이 떠오르는데요."
"와, 우리 전통 놀이 중에도 이렇게 멋있는 불꽃놀이가 있었네요."

다행히 수원 2리 마을 축제의 날에는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을 비롯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까지 낙화봉처럼 줄줄이 마을로 찾아와 낙화 놀이를 즐겼다. 부여군 전역에 붙인 현수막과 SNS, 동영상 플랫폼 등에 낙화 놀이를 콘텐츠로 마을 소개를 했던 송재수 위원장의 노고는 헛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열린 1회 낙화놀이 축제, 시골 작은 마을의 축제치고는 제법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소박하지만 제 몸을 태워 빛과 소리를 내주고 스러지는 낙화 불꽃에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낸 축제라는 게 신선했고 함께 즐기고 함께 이루어내서 찬란했다.

1천여 개의 낙화봉에 불을 붙이자 때로는 잔잔하게, 줄을 흔들면서 격하게 불꽃을 떨어뜨리며 낙화봉은 사람들 오감을 만족시키는 낙화를 쏟아냈다. 낙화불꽃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냈다.

부여군 양화면 수원 2리 마을의 낙화놀이는 '하냥살이', '함께 해냄'이라는 마을 공동체의 복원을 위한 소박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일찍이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라고 일갈했던 전우익 농사꾼과 최재천 교수 같은 사람들의 '함께 살기, 하냥살이'를 놀이로 구현하고자 했다.

해가 바뀌고 수원 2리 낙화놀이는, 지난 2월 8일~9일까지 이틀간 백마강 테마파크 일원에서 펼쳐진 '부여군 백마강 정월대보름 달맞이축제 행사'에도 초대 받아 부여군민들 앞에 정식으로 시연하게 되었다.

늦추위가 몰고 온 백마강 강바람이 시린 날이었다. 수원 2리 송재수 위원장과 마을 사람들은 낙화봉을 줄에 매다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둠이 내리자 '하냥살이' 낙화 불꽃이 부여 전망탑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고고한 불꽃을 내려주었다.

부여의 낙화놀이는 수원 2리 마을에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실현하기 위해 시동을 건 마을 사업이었다. '하양살이', '함께 해냄'의 염원을 담은 낙화놀이의 불꽃이 우리나라 온 마을에 낙화처럼 분분하게 퍼져나가 따뜻한 온기로 남는 그날을 고대한다.
#낙화놀이 #낙화봉 #부여군 #부여군양화면수원2리 #하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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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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