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쉬겠다'고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 없도록

[우리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 ⑤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김혜진 공동대표 인터뷰

등록 2025.02.12 13:39수정 2025.02.1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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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웹툰 작가다. 마감에 쫓기고 자의로 휴재도 할 수 없어서 얼마 전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우울증과 불면증 약까지 먹고 있다. A는 산재보험법 상 노무제공자도 아니어서 산재 신청도 쉽지 않고, 쉬더라도 그대로 소득이 사라지기 때문에 꾸역꾸역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쉴 수 없는 것이 대다수의 현실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면, 질병이나 후유장해는 더욱 악화한다. 이 때문에 코로나 이후 상병수당과 유급병가가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하에서 다른 나라에 다들 있다는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정책은 진척이 없었다.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김혜진 공동대표와 서면으로 만났다.

 원주역 역사에 걸린 상병수당 시범사업 광고
원주역 역사에 걸린 상병수당 시범사업 광고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아프면 쉴 권리를 외쳐야 하는 사회

근로기준법에는 병가 또는 질병 휴직에 관한 규정이 없다. 어떤 회사는 병가와 질병 휴직 제도를 촘촘하게 마련해 두었지만, 어떤 회사는 병가와 질병 휴직을 규정할 취업규칙도 없다. 제도가 없는 회사에서 병가와 질병 휴직은 사용자의 재량이다. 그래서 취업규칙도 없는 영세한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아파서 쉬는 것이 아니라 퇴사를 택한다. 권고사직이나 해고당하기까지 한다.

"방송노동자들은 쉬고 돌아가면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학교급식 조리사나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의 경우 회사가 대체인력을 구해놓지 않아서 노동자들이 자기가 직접 대체인력을 구해놓고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병수당 제도의 부재와 시범 사업의 한계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아파서 쉬게 되면 소득 상실분을 현금 급여로 지급하는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고 법정 병가와 상병수당 둘 다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정부는 2022년 6개 지역을 시작으로 2025년 현재 14개 지역에서 상병수당 시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이 정책을 확대하기보다 축소하려 한다.


김혜진 활동가는 본 사업 시행은 2027년으로 연기되었고 시범 사업 지역도 줄고 있어 본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지 우려를 표했다.

그렇다고 시범 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우선 지원 대상 관련 가장 큰 문제는 65세 이상의 고령자와 이주노동자가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파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병수당마저 지급되지 않으면 건강이 오히려 악화할 수밖에 없다. 2단계 시범 사업에서는 소득 하위 50% 이하 취업자도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가 없게 되었다.

"상병수당은 누구나 아프면 쉴 수 있도록 하는 보편성을 가진 제도가 되어야 하는데 소득을 기준으로 대상을 정하면, 내가 해당자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절차도 복잡해집니다."

상병수당 지급액도 문제다. 시범사업에서 상병수당은 최저임금의 60%만 보장한다. 상병수당이 기존의 소득을 보전하지 못하면 결국 아프더라도 다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정책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상병수당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이 아니라 종전 소득을 기준으로 합니다. 최소 종전 소득의 50% 이상을 보장하고 대부분은 종전 소득의 60~70%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인터뷰한 분들은 적어도 이전 임금의 90%는 받아야 쉴 수 있겠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현재 시범 사업은 쉴 기간을 최대 90~150일 정도로만 보장하고 있고, 일하지 못한 기간이 8일 이상은 되어야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신청 후 대기 기간과 지급 기간에도 문제가 많다. 불안정 노동자들은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고, 소득도 적기 때문에 저축도 어려워 며칠이라도 소득이 없으면 버티기가 힘든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대기 기간이 길면 그 기간을 기다렸다가 상병수당을 신청하기보다는 아파도 그냥 나가서 일하기를 택하게 됩니다."

상병수당 제도는 아프면 쉴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토대

아프다고 말하면 도태되기 쉬운 조직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아프니까 쉬겠다'라고 말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상병수당뿐만 아니라 유급병가가 법정화되더라도, 아플 때 쉴 수 없는 문화가 공고하다면 제도는 허울로만 남을 것이다. 아플 때 당당하게 쉴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일터의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

[기획] 우리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

① 내란 이전에도 이미 계엄이었다
https://omn.kr/2c5ka
"과로사 부추기는 장시간·야간노동, 기업 규제와 감시 절실"
https://omn.kr/2c5ku
일터의 차별에 함께 맞서는 경험을 축적해 나가길
https://omn.kr/2c6pw
"윤석열 탄핵에 꽃다발 들고 온 친구... 미얀마의 상황 떠올린 거죠"
https://omn.kr/2c6q6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2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곽진경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상병수당 #아프면쉴권리 #유급병가 #산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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